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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Feb 04. 2023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든 정월 대보름 찰밥과 나물

세상에는 정말이지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다.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고, 내 집 주방에서 세계의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먹는 방송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다 못해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 방송을 보면 음식 만들어서 먹는 일로 방송을 이끌어간다. 먹는 것이 이제는 일이 되고 돈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툭하면 체를 했다. 멀미도 심하게 해서 버스를 탈 때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할 정도였다. 비위가 약해 향이 강한 음식 앞에서는 헛구역질도 자주 하곤 했다. 설날이 다가오면 식혜를 만들기 위해 가마솥에 엿기름을 넣어 삶는 그 단 냄새도 내게는 견디기 힘든 냄새였다. 식구들은 밥알이 둥둥 뜬 식혜를 한 그릇씩 맛있게 먹을 때도 냄새가 나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겨울이 되면 자주 먹던 팥죽도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단 냄새가 싫어서 차갑게 식은 다음에 마치 푸딩처럼 굳은 팥죽이 신기해 몇 번 떠먹고 나면 속이 쓰리고 아파서 밤새 배앓이를 하곤 했다. 


성인 된 후로도 먹는 건 늘 조심스러웠다. 

직원들과 함께 점심으로 중식당의 기름진 음식을 먹고 오면 오후 내내 생트림이 올라오고, 회식할 때 삼겹살을 먹으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에서 신호가 오곤 했다. 어떤 음식이 내 몸에 맞는지 또는 맞지 않는지 모른 채로 몇십 년을 살아왔다. 


코로나 확진이 되고 2주쯤부터 시작된 장염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되기 시작하고 난 후 병원을 찾았다. 죽만 먹어도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내시경을 해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약으로도 듣지 않던 그때부터 내 몸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체질과 맞는 음식, 고포드맵이니 저포드맵이니 하는 생소한 용어까지 배워가며 어떤 음식을 섭취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되도록 기름진 음식은 피했고, 밀가루 음식 등등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너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도시락을 싸가지도 다녔기에 내게 맞는 반찬을 위주로 만들어서 먹다 보니 한약을 먹어서 효과를 본 건지 음식 조절을 잘해서 효과를 본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는 차츰 회복이 되었다. 나물과 국 그리고 생선 위주로 먹으면 아무 탈이 없었다. 내 몸은 결국 한식이 맞는 체질이었다.

간혹,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외식을 하곤 하는데 스테이크나 파스타 같은 음식이 그날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먹고 나면 여지없이 내 몸은 신호를 보낸다. 한 번은 모임에서 소고기를 먹으러 간 날 혹시라도 또 탈이 날까 봐 나는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다 보니 남들보다 먹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멤버 한 사람이 왜 그리 못 먹냐고 안타까워하면서 내 앞으로 수북이 고기를 쌓아 줬지만 절반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인 이후부터는 배앓이는 하지 않게 됐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란다. 그래서인지 마트 진열대에 나물과 찰밥에 들어가는 곡식들이 눈에 띄었다. 

찹쌀 1kg와 몇 가지 콩을 샀다. 찹쌀과 조, 수수를 4시간 이상 불려서 찜기에 면포를 깐 후 30분 정도 찌고 난 후 울콩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콩을 더 넣고 추가로 30분을 더 찐다. 가지나물, 고사리, 호박나물, 시래기 같은 나물은 시어머니가 주신 것으로 물에 불려서 들기름을 넣고 물을 조금 넣은 후 볶다가 들깨가루를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하면 맛있다. 나물은 불려서 볶으면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간단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봄이 오면 산에서 꺾어다 말려야 한다. 말린 호박은 깨끗하게 말리기가 어렵다. 혹시라도 장맛비라도 맞으면 색깔이 검게 변하기도 한다. 고사리는 새순을 꺾어다 한번 삶아서 쇠꼬챙이처럼 말려야 한다. 물에 불리고 또 한 번 삶아서 볶아놓으면 쫄깃거리기까지 한 맛이 고기맛이 난다. 이 모든 나물들은 눈이 녹은 봄에 준비해 다음 해 정월 대보름이 오면 해 먹는 것이다. 그러니 봄부터 준비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식이다. 


가족들이 해달라고 요구한것도 아닌데 나는 찰밥을 찌고 나물을 볶기 시작했다...


게으르지 않게, 사복거리며 정성을 다하는 것. 먹는 것이 고된 노동이 아닌 즐거움이 되는 것. 내 몸을 위해서 나와 맞는 음식을 준비하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것이 감사한 일이 되는 것. 음식의 모든 것이 삶이 되는 일.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먹기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먹는것도 즐겁고 음식 하는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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