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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Feb 06. 2023

별명으로 글쓰기

사각사각 글쓰기 모임

작정하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책상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갔다.

간혹, 어쩌다 특별한 일이 생겨 그 일을 빗대어 글을 써보기도 하는데 몇 시간 끙끙대며 곤욕을 치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한두 번 포기하다 보니 몇 달째 글쓰기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글을 쓰는 문우들과 글감을 얻고 그날 쓴 글을 인증하는 거다. 스스로 알아서, 매일 일기처럼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거였다.

누군가 시켜야만 하는 못된 습관에 젖은 탓도 있다.

돈이 걸리면 오기도 살짝 작동하는 게 사람 심리 아니겠는가.

커피값 정도의 보증금을 내는 거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글쓰기 루틴을 위해서 빠지지 않고 써보자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날짜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날 올려준 글감으로 글을 써서 인증하면 돌려받긴 하는데, 사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함께 글을 쓰는 동역자들과 서로의 글을 읽고 단소리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글을 써야만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른 아침 경쾌한 소리와 함께 글쓰기 알람이 울린다.

                    

                          오늘의 글감은“별명”이다.


전철을 타고 가는 시간 내내 별명이라는 글감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에 빠진다.

어릴 때 나는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었나. 내게 별명이 없었다면 내 친구들은 어떤 별명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도통 떠오르는 게 없다.

튀지 않는 외모, 모나지 않은 성격, 내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하루를 조용히 보내는 아이. 집에서도 늘 내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어른들 눈 밖에 나는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말 잘 듣는 아이였다. 그러니 특별한 별명이 있을 리 만무하다. 굳이 꼽으라면 말 잘 듣는 순둥이 정도 아닐까.

서울 사는 고모가 왔을 때 우리 4남매 중에서 서울행을 택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유는 착하고 말을 잘 들어서.


별명 없이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성격도 달라졌는지 꽤 활달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내 특기는 사람의 특정 행동이나 말투를 잘 흉내 낸다는 것이다. 특히나 회식 자리에서 성대모사나 행동을 흉내를 내곤 했는데 술이 한 잔씩 들어간 자리는 조금 오버를 해도 이해가 되는 암묵적이 룰 같은 게 있어서였을까. 사람들은 회식 때만 되면 오늘은 어떤 성대모사를 할 건지 기대했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 누군가의 특정 포인트를 낚아내서 여지없이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한술 더 떠 조금 변형된 모사를 섞어서 만들어내면 회식 자리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지면서 서로가 자신의 특징은 어떤 거냐며 본인들 것도 흉내를 내달라고 졸라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도 위험수위가 있다.

상대가 수치심을 느끼거나 모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선을 넘으면 안 된다. 되도록 그 사람의 특징은 긍정의 효과를 나타내게끔 해야 하는데 디테일한 면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가령 모사의 대상이 어이없는 얘기를 했을 때 속으로는 욕을 하지만 겉으로는 그 사람의 특이한 목소리나 평소 버릇처럼 쓰는 말투를 흉내 내서 되받아치면 웃어넘길 수 있다.


오래전, 워킹맘으로 힘든 직장생활을 할 때 그 속에서 삶의 괴로움을 해학으로 흘려보냈던 것들이 이렇게 우리에게 글감이 되어주니 잠시나마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오늘 내 삶의 일부가 먼 훗날 글감이 되기를 바라며 순간순간 정성을 다해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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