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이직하면서 그전보다 훨씬 줄어든 월급이었지만 매달 꼬박꼬박 적금을 하기 시작했다.
이재(理財)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개미처럼 일해서 번 티끌같은 돈을 잘 굴리거나 투자를 해서 고소득을 올리는 것과는 거리가 꽤 멀다. 투자할만한 돈이 없다는 생각이기도 하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보니 초등학생도 한다는 주식은 엄두도 못 낸다.
꼬박꼬박 저축한 적금이 올 3월에 만기가 되었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든든했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자녀들이 있기에 혹시라도 무언가를 한다고 하면 보태줄 계획이었다.
로또도 아닌데 그걸로 무얼 할까 싶어 밤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다 부수다 하길 몇 차례.
하와이 마우이섬 해변에서 훌라춤을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 남편이 일차적으로 내 상상을 깼다. 통장을 둔 것도 아닌데 귀신같은 남편이 목돈이 있냐는 것이다. 시치미를 뗐지만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나는 취약한 약점이 있는 나는 거짓말을 못하고 이실직고를 하고 말았다. 남편은 급한 건 아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얼마간 금액을 불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달라고 했다. 불릴 수 있는 기회마저 내게 허락지 않게 바쁜 날. 남편에게 송금도 못하고 바쁜 업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울리는 전화 벨소리가 싸한 느낌이 드는 건 그전에 내 돈을 몇 천만 원을 빌려간 동생이었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을 운영했는데 3년을 힘들게 끌다가 결국 접게 됐다고 한다. 정리하는 단계에서 몇 가지 처리해야 할 금전문제로 인해 내게 또 요구를 한 것이다. 염치도 정말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이건 선을 넘은 거다. 파산을 하든 길거리에 나 앉든 나는 몰라라고 독한 말을 할 줄 아는 누나였다면 전화도 안 했겠지. 남편이 얼마간 푼돈이라도 불릴 기회가 있다고 할 때 줄걸, 그러면 어버이날 용돈이라도 마련했을 텐데...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결국 그 돈은 남동생의 빚잔치에 고스란히 보태고 말았다.
점심을 급히 먹고 은행을 다녀왔다. 두통에 시달릴 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었지만 막상 해줘야 하는 일에는 또 발 빠르게 처리해 주는 게 내 성격이다, (정말 싫다) 송금을 해주고 나니 마그네틱 스티커가 떼어진 너덜거리는 통장이 마치 내 마음 같아 보여 한참을 책상 위에 두고 바라보고 있었다. 통장을 본 직원이 지나가며 한마디 한다. 어머 적금 만기되셨나 봐요? 목돈이실 텐데 뭐 하실 거예요? 너무 부럽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 말이 나에게만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것일까.
살면서 누군가에게 크게 빚을 진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다. 부모님이 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려울 때부터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살기 위해서였다. 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내 앞날의 편안한 삶을 위해. 삼십 년이 지난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건네야 할 목돈이 남아 있을까?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여유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초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내가 벌어 내가 써야 내 삶이 더 행복해진다고 믿는 나에게는 많이 속상한 일이다. 나를 위해 써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삶은 뒤가 아니라 앞이라고 어느 작가님이 써놓은 글을 읽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과 앞으로의 일들에 더 집중하라는 뜻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추억하는 삶도 중요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중년이 된 나이에 내가 지나온 삶은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내 삶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맞다.
힘들어도 버티고 견뎠다면 이제는 나를 위로해 주고 나를 쓰다듬어주면서 용기를 줘야겠다.
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