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구체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 중이다.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구체적인 표현과 구체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람 말이다.
고3 수험생 시절 한 대학의 1차 서류에 합격해 면접을 준비할 때 처음 나의 '추상적인 표현을 쓰는' 버릇을 알아냈다. "그런, 그러한, 어떠한, 무언가...?" 같은 문장에 추상성을 더해주는 추임새와 "흥미로운? 혁신적인?"처럼 확신 없는 물음표형 문장들을 많이 쓰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랑 연습할 때 선생님이 지적해주셔서 처음 알게 된 나의 버릇인데, 지금도 많이 남아 있던 걸 요즘 다시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요즘 취업 준비로 각종 기업 서포터즈 활동에 많이 지원해보고 있는데, 1차 서류에서부터 쓰디쓴 불합격을 많이 경험하고 나니 갈 곳 잃은 어린양이 된 거 마냥 불안에 떨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나, 해도 안 되는 데 어떡하지, 이번 학기 아무런 활동도 못하고 보내버리면 너무 후회될 거 같은데, 제발 하나만 붙어라...처럼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 계획대로라면 대학교 3학년 때의 나는 서포터즈 활동을 해야 했으니까.
그러던 중 기적적으로 한 대기업의 서포터즈 1차 서류에 처음으로 합격했고, 스카이프로 1:1 화상 면접을 봤다. 면접관님이 정말 -_- 이런 표정으로 눈썹, 눈, 코, 입 모두 미동도 없는 정색의 얼굴로 나의 노트북 화면에 가득 차니 갑자기 심장이 너무나도 빨리 뛰었다. 그뿐이겠는가, 목소리도 염소처럼 음메헤 떨고 준비한 말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에 답변도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게 되었다.
면접관이 싫어하는 면접자 1위! '묻지도 않은 거까지 말하는 면접자' ...하하 그게 바로 나였다니...
첫 대외활동 면접이라 정말 많이 떨렸고, 어려운 돌발 질문에도 나름 잘 답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최종 탈락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그 수많은 서류 탈락 경험을 돌이켜 보았을 때 면접까지 간 것만 해도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 다독였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솔직히 속으로 그 브랜드 불매운동 결심했다 약간 ㅎㅎㅎㅎㅎㅏ.....ㅠ)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또 다른 곳들에 지원했고, 또 떨어졌고, 또 면접을 보기도 했다. 사실 난 면접을 보는 기회만으로도 감사했다. 면접을 보면서 취준 전에 미리 면접 연습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면접을 준비하면서 유튜브로 각종 면접왕 유튜버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면접에 임하는 태도, 표정, 어투, 답변 내용 구성 등 많은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답변을 할 때도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수치나 성과를 들어 신뢰도 있는 말들로 답변을 구성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추상적인 추임새를 넣어 말하는 버릇이 완벽히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2n 년을 그런 언어습관으로 살아왔으니 앞으로 2n년간 더 신경 쓰고 노력하면 고쳐지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다. (헐 '그런' 이란 표현여기서 또 썼네..)
고치려고 노력도 하고 있고, 내가 왜 추상적으로 말하는 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도 던져보고 있다. 계속된 셀프 물음 끝에 내가 얻어낸 결론은 '귀찮음'이었다. 어른이 되고 알아차린 사실인데, 난 정말 귀차니즘이 심한 '생각 게으름뱅이' 다. 생각을 깊게 하는 걸 귀찮아하니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겉핥기 식으로 살아지고 있었고, 겉만 핥으니 그 깊이 또한 얕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한 가지를 깊게 파고들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가볍게 알아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깊이'가 부족해졌다. (일례로, 난 어린 시절부터 진득하게 앉아 책 읽는 것보다 신문을 읽으며 각종 뉴스를 수집하는 걸 더 좋아했다.)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분야들의 얕고 추상적인 생각이 참 많이도 가득 차게 되니까 참 다양하게 아는데 '과연 제대로, 깊게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 대한 불확신은 '물음표형 문장'을 구사하는 습관으로 까지 이어졌다.
물론 내가 다 밝혀낼 수 없는 내 안의 복합적인 것들이 뭉치고 얽혀 나라는 추상적인 한 사람을 만들어낸 것이니 아마 내가 추상적인 이유는 죽을 때까지 명백히 밝힐 수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이기 위해 추상적이려 한다.
가끔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파고드는 과정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한 가지를 깊게 파고들면 그 원인을 밝힐 수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나는 성격이 급해서 해결책부터 찾는다. 나는 나의 이런 급한 성격이 싫으면서도 좋다.
급한 성격 때문에 자주 조급해지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 때, 여러 관계 속에서 나의 성급함이 나의 약점으로 작용해 보일 때, 때때로 싫다.
그래도 말보다 행동이라고, 문제가 생기면 일단 그 원인을 탐색하느라 힘 빼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내니까, 좋다. 또, 해결책을 찾다 보면 내 나름대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에.
막상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추상적인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추상적으로 많은 것을 다양하게 알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확신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이라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내 생각에 대한 책임감'만 있다면 되지 않을까. 뭐든 다 잘 알고, 다 잘하는 척척박사가 되는 건 불가능하니까! 선택과 집중!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무언가를 깊게 파고들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그것이 일이든 사람이든 뭐든. 내 생각과 말에 부여되는 그 '책임감'만 놓치지 않는다면 나는 충분히 구체적일 수 있다.
내 생각 하나, 말 하나가 내 안에서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안에 양질의 정보들이 얼마나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 있는지 잘 살피고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내가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것에 책임지고 깊게 공부하는 태도라면 충분히 내가 잘하는 것, 잘 아는 것, 즉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게 생겼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이 더 선명해지고 구체적으로 새로워지고 있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