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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TikTok)과 릴스(Reels), 소리가 먼저!

비주얼 시대종말 '오디오 밈(Audio Meme)'과 숏폼의 청각심리학

by JUNSE

Sound Essay No.51

틱톡(TikTok)과 릴스(Reels), 소리가 먼저!

비주얼 시대종말 '오디오 밈(Audio Meme)'과 숏폼의 청각심리학

Attention-economy-basics-768x432.jpg.jpeg 출처 : www.techdetoxbox.com

눈보다 빠른 귀,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0.1초의 승부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십시오. 그들의 엄지손가락은 무서운 속도로 화면을 쓸어 올립니다. 1초, 아니 0.5초도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영상들이 가차 없이 버려집니다. 이 치열한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전쟁터에서, 사용자의 엄지손가락을 멈추게 만드는 결정적인 무기는 무엇일까요? 화려한 썸네일? 잘생긴 인플루언서의 얼굴? 아닙니다. 바로 찰나의 순간 고막을 때리는 '소리'입니다.


과거의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가 '시각 중심(Thumbnail First)'이었다면, 틱톡과 릴스로 대표되는 숏폼 플랫폼은 철저하게 '청각 중심(Audio First)'입니다. 앱을 켜는 순간 소리가 먼저 재생되고, 소리가 마음에 들면 영상을 봅니다. 심지어 화면을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 넘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리는 지금 미디어의 거대한 지각 변동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영상이 주인이 되고 음악이 배경이 되었던 지난 100년의 역사가 뒤집혀, 음악이 주인이 되고 영상이 그에 종속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 글은 숏폼 콘텐츠가 어떻게 소리를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았는지, 그리고 '오디오 밈'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우리의 뇌와 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탐구합니다.



오디오 밈(Audio Meme): 소리는 콘텐츠의 '설계도'다


틱톡이나 릴스에서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악(BGM)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상의 내용을 규정하는 '구조(Structure)'이자 '대본(Script)'입니다.


행동을 지시하는 소리: 특정 비트가 떨어지는 순간(Drop) 옷을 갈아입거나, 특정 가사가 나오는 순간 표정을 바꾸는 챌린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여기서 음악은 출연자에게 "지금 움직여!", "지금 웃어!"라고 지시하는 연출가 역할을 합니다. 크리에이터들은 영상을 기획할 때 "무엇을 찍을까?"를 먼저 고민하지 않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리가 뭐지?"를 먼저 찾습니다. 소리가 정해지면, 영상의 내용은 그 소리의 리듬과 분위기에 맞춰 자동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소리는 콘텐츠를 찍어내는 '거푸집(Template)'이 되었습니다.


밈(Meme)의 청각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문화 전달의 단위)'은 이제 텍스트나 이미지가 아닌 '소리'의 형태로 가장 빠르게 전파됩니다. 웃긴 대사 한마디, 중독성 있는 멜로디 한 소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되어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전파됩니다. 사람들은 원본 영상의 맥락은 몰라도, 그 소리가 주는 '느낌'과 '타이밍'을 공유하며 거대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소리가 만국 공통의 '놀이 규칙'이 된 셈입니다.



'스피드 업(Sped-up)' 현상: 도파민을 쫓는 뇌의 적응


최근 숏폼 사운드 트렌드 중 가장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현상은 바로 '스피드 업(Sped-up)'입니다. 기존의 노래를 1.5배, 혹은 2배로 빠르게 재생하고 피치(음정)를 높여 마치 헬륨가스를 마신 다람쥐 목소리(Chipmunk style)처럼 변조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멀쩡한 원곡을 놔두고 이 왜곡된 소리에 열광할까요?


정보 밀도와 도파민: 숏폼 세대의 뇌는 15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자극과 정보를 원합니다. 노래를 빠르게 돌리면 지루한 빌드업(Build-up) 과정이 생략되고, 가장 자극적인 후렴구와 리듬만이 압축되어 전달됩니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를 더 빠르고 강하게 자극하여 도파민을 분출시킵니다.


새로운 미학의 탄생: 기성세대에게는 이 변조된 목소리가 소음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Z세대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힙(Hip)한 질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가볍고, 빠르고, 장난스러운 이 소리는 무겁고 진지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세대의 욕망을 대변합니다. 이제는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낼 때 아예 공식적으로 'Sped-up 버전'을 함께 발매하는 것이 필수 전략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의 'Cupid'가 글로벌 히트를 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 역시 틱톡에서 유행한 스피드 업 버전 덕분이었습니다.



음악 산업의 재편 : 3분의 미학에서 15초의 승부로

ShortFormVideo_Graphic.png 출처 : www.listenfirstmedia.com 'What Short Form Video Platform Should Your Brand Be Using?'

이러한 청취 환경의 변화는 음악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습니다. 과거의 작곡가들이 '기-승-전-결'이 있는 3분짜리 드라마를 썼다면, 숏폼 시대의 작곡가들은 '첫 5초 안에 승부를 보는' 15초짜리 광고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전주(Intro): 10초 이상의 긴 전주는 이제 사치입니다. 노래는 시작하자마자 바로 보컬이 나오거나, 가장 강력한 훅(Hook)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청취자가 '스킵'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댄스 챌린지를 위한 작곡: 작곡 단계에서부터 '이 부분에서는 손을 이렇게 흔드는 춤을 추겠지?'를 염두에 두고 비트를 만듭니다. 가사 역시 춤 동작으로 표현하기 쉬운 직관적인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음악이 감상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참여를 위한 도구'로 변화한 것입니다.


구작(Oldies)의 부활: 이 현상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은 잊혔던 명곡들의 재발견입니다.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Dreams'나 케이트 부시(Kate Bush)의 'Running Up That Hill'이 수십 년 만에 차트 역주행을 한 것은, 그 곡들이 가진 짧은 구간의 분위기가 숏폼 영상의 감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숏폼은 음악의 '발매 시기'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오직 '지금 통하는 소리인가'만을 따지는 평등한 기회의 장을 열었습니다.



'본다'는 것에서 '참여한다'는 것으로

short-form-videos.png 출처 : blog.adrianalacyconsulting.com/short-form-video-trends-marketing/

결국 틱톡과 릴스가 소리를 중심으로 설계된 근본적인 이유는, 이 플랫폼들이 '보는(Watch)' 미디어가 아니라 '참여하는(Join)' 미디어이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서 우리는 타인이 만든 영상을 봅니다. 하지만 숏폼에서 우리는 타인이 쓴 소리(Audio)를 가져와(Use this sound), 나의 몸짓과 표정을 입혀 '나만의 버전'을 만듭니다. 여기서 소리는 나를 거대한 유행의 흐름에 합류시켜 주는 '입장권'이자 '연결고리'입니다.


우리는 같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보이지 않는 연대감을 느낍니다. 텍스트로 소통하던 시대가 가고, 이제 인류는 '공통의 리듬'과 '공통의 바이브'를 공유하며 소통하는 새로운 부족 사회로 진입했습니다.


당신이 숏폼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브랜딩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떤 영상을 보여줄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소리를 가지고 놀게 만들까?"라고 말입니다. 시각은 사람을 머무르게 하지만, 청각은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숏폼의 시대, 권력은 카메라가 아닌 마이크를 쥔 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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