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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딜레마, 혹은 쇼펜하우어의 지옥

<에반기리온> 'AT 필드/인류보완계획' 속 '의지'와 '고통'의 철학

by JUNSE

관점 프리즘 No.06

고슴도치의 딜레마, 혹은 쇼펜하우어의 지옥

<에반게리온>의 AT 필드와 인류보완계획에서 만나는 '의지'와 '고통'의 철학


출처 : imdb.com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로봇(에바)에 탑승한 소년(신지)이 미지의 적(사도)과 싸우는, 전형적인 메카물 애니메이션의 외피를 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경험한 수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화려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겪는 지독하리만치 처절한 '마음의 고통'입니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 위해 다가가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고 맙니다. 그렇다고 멀어지면 다시 추위에 떨어야 하죠.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이 딜레마.


이는 <에반게리온> 속 인물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신지, 아스카, 미사토, 레이... 그들은 모두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갈망하지만, 그 갈망이 강할수록 오히려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입히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저는 이 '고슴도치의 딜레마'야말로,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묘사했던 '인간 존재의 비극'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고통이다: 쇼펜하우어의 '의지(Will)'와 에반게리온의 인물들

출처 : 위키백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철학의 출발점은 암울합니다. 그는 이 세계의 본질이 이성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살려는 맹목적인 의지(Wille zum Leben)'라고 보았습니다. 이 '의지'는 모든 생명체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욕망하고, 갈애(渴愛)하게 만드는 비이성적인 힘입니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참고)


그리고 쇼펜하우어에게, 이 '의지'는 모든 '고통(Suffering)'의 근원입니다. 왜냐하면 '의지'의 본질은 '결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고(결핍), 그것을 얻으면 잠시 만족하지만, 그 만족은 금세 사라지고 곧바로 새로운 권태나 또 다른 결핍(욕망)이 찾아옵니다. 즉, 쇼펜하우어에게 "산다는 것"은 이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고통의 시계추 운동과 같습니다.



<에반게리온>의 인물들은 이 쇼펜하우어적 고통을 그대로 체화하고 있습니다.


이카리 신지: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지' 때문에 에바에 탑승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 할수록, 그는 거부당하고, 상처받고, 더 큰 고통에 빠집니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그녀의 과장된 활기참과 '최고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는, 사실 '타인에게 잊히지 않겠다'는 처절한 욕망의 발현입니다. 하지만 그 의지가 강할수록 타인과 충돌하고,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무너져 내립니다.


그들은 모두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노예'입니다. '살고 싶어서', '연결되고 싶어서' 발버둥 치지만, 그 발버둥 자체가 그들을 고통의 지옥으로 밀어 넣습니다.



AT 필드: '개체화'라는 이름의 원죄(原罪)

출처 : discover.hubpages.com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이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구현한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AT 필드(A.T. Field, Absolute Terror Field)'입니다.


AT 필드는 모든 생명체(사도와 인간)가 가진 '마음의 벽'이자, 타인이 자신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절대적인 방어막입니다. 이 필드 때문에 인간은 '나'와 '너'를 구분하는 개별적인 존재(자아)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분리' 때문에, 인간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근원적인 '고독'과 '소외'를 겪게 됩니다. 사도들이 인류를 찾아오는 이유도, 어쩌면 이 '분리'를 끝내고 하나가 되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AT 필드'가, 쇼펜하우어가 동양 철학에서 차용한 '마야의 베일(Veil of Maya)' 혹은 '개체화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의 완벽한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나'와 '너'가 분리된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 자체가 사실은 '마야의 베일'이라는 거대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베일 뒤의 진실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사실은 '하나의' 맹목적인 '의지'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AT 필드'는 바로 이 환상의 '베일'을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는 개체를 성립시키는 '껍질'인 동시에, 그 껍질 때문에 타인과 영원히 분리되어 고통받게 만드는 '원죄(原罪)'의 상징입니다.



인류보완계획: '의지의 부정'이라는 이름의 끔찍한 구원

© Studio Khara. All Rights Reserved. 신세기 에반게리온 중 장면 캡처


자, '의지' 때문에 고통받고, 'AT 필드' 때문에 고독하다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쇼펜하우어는 두 가지 길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예술을 통한 '의지'의 일시적인 '관조'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소멸시키는, '의지의 부정(Denial of the Will to Live)'입니다. 이는 모든 욕망과 갈애를 끊어내고, '개체'로서의 존재를 포기하며, 불교의 '열반(Nirvana)'이나 '무(無)'의 경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에반게리온>의 배후 조직 '제레(SEELE)'와 '겐도'가 추진한 '인류보완계획(Human Instrumentality Project)'은, 제가 보기에 이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구원'을, 과학 기술을 통해 가장 끔찍하고도 문자 그대로 실현하려는 시도입니다.


'인류보완계획'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의 'AT 필드'를 강제로 중화시켜, 개별적인 육체와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영혼을 'LCL'이라는 하나의 액체(태초의 수프)로 되돌려, 고통도, 슬픔도, 오해도 없는 '완전한 하나'의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을 기술적으로 집행한 것입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딜레마의 주체인 '개별적인 고슴도치' 자체를 없애버리는 방식입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개체'로 사느니, 고통 없는 '전체(無)'가 되는 길을 택한, 가장 극단적인 쇼펜하우어적 염세주의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 돌아오다

출처 : 위키피디아 'Personaggi di Neon Genesis Evangelion'


<에반게리온>의 진정한 울림은 이 끔찍한 '구원'의 순간에 있지 않습니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신지는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LCL의 바다 속에서, 즉 쇼펜하우어적 '열반'의 상태에서, 궁극의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완벽한' 구원을 거부합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가 자신에게 상처만 줄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며, 다시 'AT 필드'가 존재하는 세계, 즉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있는 고통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선택합니다.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한 안노 히데아키의 가장 강력한 '대답'처럼 느껴졌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의 해결책으로 '의지의 부정(죽음, 無)'을 제시했지만, 신지는 그 '무(無)'의 편안함을 거부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의지(삶)'를 다시 한번 껴안는 길을 택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이란 본질적으로 고통'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대전제를 인정한 뒤에,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고통 속에서 타인을 원하겠다"고 선언하는,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실존적 결단입니다.


<에반게리온>은 저에게, 삶이 고통이라는 진실을 뼈아프게 직시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만 발견할 수 있는 '연결의 가능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되묻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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