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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의 거실 통유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Panopticon)'으로 다시 읽는 <기생충>

by JUNSE

관점 프리즘 No.07

박 사장의 거실 통유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Panopticon)'으로 다시 읽는 <기생충>

출처 : SBS뉴스 "기생충 '박사장네 정원뷰 위해 '8m 통유리' 특수제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폭우가 쏟아지던 날 기택 가족의 처절한 도주, 혹은 지하실의 기괴한 풍경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 내내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스크린을 지배했던 또 하나의 주인공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바로 박 사장의 저택, 그중에서도 정원을 향해 시원하게 뚫린 '거실 통유리'입니다.


이 거대한 유리는 햇살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부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곱씹을수록, 이 투명한 유리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 집안의 권력 구조를 작동시키는 가장 섬뜩한 감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했던 감옥의 구조, '파놉티콘(Panopticon, 원형 감옥)'의 개념을 빌려와 이 저택을 다시 들여다보려 합니다. 박 사장의 저택은 단순히 비싼 집이 아니라, '시선'이라는 권력이 어떻게 하류층을 규율하고 통제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판 파놉티콘이기 때문입니다.



파놉티콘 : 보이지 않는 시선의 권력

출처 : 파놉티콘 - 위키백과


먼저 미셸 푸코가 말한 '파놉티콘'이 무엇인지 잠시 살펴볼까요? 18세기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이 원형 감옥은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조: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있고, 그 주변을 둥그렇게 감방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핵심 원리: 감시탑은 어둡게 처리되어 죄수들은 간수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 감방은 밝게 비추어져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드러납니다.


효과: 죄수들은 언제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간수가 없을 때조차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하게 됩니다. 즉, '시선의 비대칭성(나는 볼 수 없지만, 상대는 나를 볼 수 있다)'이 곧 막강한 권력이 되어, 물리적인 폭력 없이도 사람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푸코는 이 구조가 감옥을 넘어 학교, 병원, 공장 등 현대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규율 권력의 모델이라고 통찰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봉준호 감독은 이 차가운 감시의 원리를 <기생충> 속 가장 우아한 공간인 박 사장의 거실에 고스란히 옮겨놓았습니다.



박 사장의 거실 : 투명함이라는 이름의 감시탑

출처 : Villiv.co.kr '기생충의 반지하와 대저택 사이 어딘가 있을 나의 집'


이제 박 사장의 저택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 집의 구조는 파놉티콘의 원리를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감시탑의 위치: 소파 위의 박 사장 파놉티콘의 감시탑은 중앙에 높이 솟아 있습니다. 이 집에서 그 위치는 어디일까요? 바로 거실의 소파입니다. 박 사장이나 연교는 주로 이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업무를 봅니다. 이 위치는 집안의 중심이자, 거실 통유리를 통해 정원과 대문, 그리고 집안 곳곳을 조망할 수 있는 '권력의 정점'입니다. 그들은 여기서 편안하게 앉아, 집안에서 일하는 고용인들(기택, 충숙, 기우, 기정)의 노동을 지켜봅니다.


감방의 위치: 끊임없이 노출되는 노동의 공간 반면 기택 가족이 일하는 공간들(운전석, 주방, 거실 바닥)은 파놉티콘의 감방처럼 훤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특히 거실 통유리는 안에서 밖을 보는 창이기도 하지만, 빛을 가득 받아들이며 내부를 환하게 밝히는 조명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투명함 때문에 기택 가족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운전 중인 기택은 뒷좌석의 박 사장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가정부 충숙은 거실 어디에 있든 연교의 시야 안에 들어옵니다. 그들은 '보이는 존재'로서, 고용주의 시선에 맞게 자신의 행동과 말투, 심지어 냄새까지 검열하고 연기해야 합니다.


선(Line) 넘지 마: 시선으로 긋는 보이지 않는 감옥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사 중 하나는 박 사장의 "선을 넘지 마라"는 경고입니다. 여기서 '선'은 물리적인 경계가 아니라, 파놉티콘의 감방과 감시탑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경계입니다. 박 사장은 직접적으로 화를 내거나 체벌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봄'으로써, 혹은 '냄새를 맡는 행위(감각적 감시)'를 통해 기택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합니다. 기택이 선을 넘으려 할 때 박 사장이 룸미러를 통해 던지는 그 싸늘한 눈빛. 그것은 "너는 감시받는 대상(죄수)이고, 나는 감시하는 주체(간수)"라는 권력 관계를 확인시키는 가장 강력한 행위입니다. 기택은 그 시선 앞에서 스스로 움츠러들고, 자신의 냄새를 부끄러워하며, '하류층'이라는 감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푸코가 말한 '규율의 내면화'입니다.



역전된 파놉티콘 : 거실 테이블 밑의 공포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일상이야기'님


영화의 중반부, 기택 가족이 박 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간 사이 거실을 차지하고 술판을 벌이는 장면은, 이 견고한 감시 체제에 대한 일시적인 '반란'입니다. 그들은 감시탑(소파)을 점거하고, 주인 행세를 하며 해방감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박 사장 가족이 예고 없이 돌아왔을 때,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됩니다. 기택, 기우, 기정은 황급히 거실 테이블 밑으로 숨어듭니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제공하는데, 저는 이 장면이야말로 파놉티콘의 공포가 극대화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테이블 밑은 파놉티콘의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독방과 같습니다. 바로 위 소파(감시탑)에는 박 사장 부부가 누워 있고, 그들은 테이블 아래의 기택 가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은밀한 행위를 하거나 기택의 냄새에 대해 험담을 합니다.


여기서 기택 가족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듣는' 존재가 됩니다. 얼핏 보면 그들이 박 사장 부부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들키면 끝장이라는 공포 속에서 숨죽인 채, 자신들에 대한 모멸적인 평가를 강제로 들어야만 합니다. 박 사장의 시선은 부재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청각적 시선)은 테이블 아래의 기택을 난도질합니다. 이 좁고 어두운 테이블 밑 공간은, 단순히 몸을 숨기는 곳이 아니라, 그들의 비참한 계급적 처지가 물리적으로 구현된 감옥입니다. 화려한 거실의 통유리 밖으로 번개가 칠 때마다 번쩍이며 드러나는 그들의 초라한 실루엣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하류층의 굴레를 시각적으로 잔인하게 보여줍니다.



지하실 : 감시조차 허락되지 않는 잉여의 공간

출처 : 티스토리 '<기생충>의 정교한 설계를 검토하며'

파놉티콘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공간은 바로 '지하실'입니다. 이곳은 근세(문광의 남편)가 숨어 살던 곳이자, 영화 마지막에 기택이 스스로를 가두는 곳입니다.


지하실은 파놉티콘의 감시 체계조차 닿지 않는, 시스템 밖의 공간입니다.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감시받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회 시스템 안에 존재한다(관리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하실은 빛도, 시선도 닿지 않습니다. 이곳에 있는 존재들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잊힌, 투명 인간들입니다.


기택이 마지막에 지하실로 들어간 것은, 박 사장의 시선(감시)을 견디지 못해 저항(살인)을 저지른 후, 결국 그 대가로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완벽한 고립'을 선택한 것입니다. 파놉티콘의 감방(반지하/운전석)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감시조차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죽은 공간이었습니다.



시선이 만든 비극

출처 : 기생충 공식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단순히 빈부격차를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시선'이 어떻게 권력이 되고,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를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탁월한 사회학적 보고서입니다.


박 사장의 거실 통유리는 밖의 풍경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투명함은 타인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구획 짓는 감시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에 갇혀 '냄새'라는 낙인이 찍힌 기택은, 결국 그 시선의 주인을 파괴하고 자신은 영원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는 비극적인 선택을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시선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지위나 편견으로 타인을 감시하고 평가하며, 그들을 보이지 않는 감방 안에 가두고 있지는 않을까요?


푸코가 파놉티콘을 통해 근대 사회의 규율 권력을 경고했듯, 봉준호 감독은 박 사장의 저택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계급적 시선이 낳은 비극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시선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서늘한 진실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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