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소리'의 비밀: ASMR을 넘어선 푸드 사운드 디자인
Sound Essay No.43
"바사삭!"
갓 튀겨낸 치킨을 한 입 베어 물 때의 그 강렬한 파열음.
"치이익-"
뜨겁게 달궈진 불판 위에 두툼한 스테이크가 올라갈 때의 경쾌한 마찰음.
"꼴꼴꼴..."
얼음이 담긴 유리잔에 시원한 탄산음료가 채워지는 청량한 소리.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지 않나요? 우리는 흔히 맛을 미각(혀)과 후각(코)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음식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시각과 청각 정보를 먼저 처리하여 그 음식의 맛을 '예측'합니다. 특히 '소리'는 음식의 신선도, 질감, 온도를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식품 업계와 광고계는 이 비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침샘을 자극하기 위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치밀하게 계산된 '맛있는 소리'를 디자인합니다. 이 글은 우리의 식욕을 해킹하는 '푸드 사운드 디자인'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심리학을 탐구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한 가장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옥스퍼드 대학의 실험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 교수의 '소닉 칩(Sonic Chip)' 실험입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감자칩을 먹게 하면서, 헤드폰을 통해 그들이 씹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조작해서 들려주었습니다.
A 그룹: 씹는 소리의 고음역대(High frequency)를 증폭하고 볼륨을 키워서 들려주었습니다.
B 그룹: 씹는 소리의 고음역대를 깎고 볼륨을 줄여서 들려주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똑같은 감자칩임에도 불구하고, A 그룹의 사람들은 감자칩이 "훨씬 더 바삭하고 신선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B 그룹은 감자칩이 "눅눅하고 오래된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 실험은 '바삭함(Crispness)'이라는 감각이 혀의 촉각이 아니라, 사실은 고막을 때리는 '청각 정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리의 뇌는 씹을 때 나는 '고주파의 파열음'을 '신선함'의 신호로 해석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로 찰스 스펜스는 2008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원리는 식품 광고의 핵심 전략이 됩니다. TV 광고 속 모델이 치킨이나 과자를 씹는 소리는 실제 소리보다 훨씬 더 과장되고, 고음역대가 강조되어 믹싱됩니다. 그래야만 시청자의 뇌가 "저건 정말 바삭하고 신선해!"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전설적인 마케터 엘머 휠러는 "스테이크를 팔지 말고, 시즐(Sizzle, 지글거리는 소리)을 팔아라"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왜 고기 덩어리보다 고기 굽는 소리가 더 잘 팔릴까요?
소리는 '사전 기대감(Anticipation)'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불판 위의 "치이익-" 소리는 우리에게 '고기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마이야르 반응)'는 정보와 함께, 곧 맛보게 될 육즙의 풍미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탄산음료 캔을 딸 때의 "치이- 탁!" 하는 소리와 기포가 올라오는 "타닥타닥" 소리는, 마시기도 전에 이미 목을 긁는 듯한 '청량감'을 뇌에 전달합니다.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리를 '조각'합니다.
탄산음료 광고: 실제 탄산 소리는 너무 작아서 마이크에 잘 담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운드 디자이너들은 발포 비타민이 물에 녹는 소리나, 튀김을 튀기는 소리를 섞어(Layering)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가짜 탄산 소리'를 만듭니다.
맥주 광고: 맥주를 따르는 소리("꼴꼴꼴")의 리듬감과 피치를 조절하여, 맥주의 농도와 시원함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광고 속 소리는 현실의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맛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소리를 구현한 '초현실적(Hyper-real)' 사운드입니다.
영화에 폴리 아티스트가 있다면, 식품 광고에는 '푸드 폴리'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식재료의 질감을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상상 초월의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신선한 야채를 베어 무는 소리: 실제 야채는 의외로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더 아삭한 소리를 내기 위해 젖은 신문지를 찢거나, 샐러리 줄기를 마이크 바로 앞에서 비틀어 끊는 소리를 섞습니다.
걸쭉한 소스 소리: 로션이나 샴푸를 섞어 끈적한 소리를 만들거나, 젖은 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려 묵직한 질감을 표현합니다.
아이스크림 광고: 실제 아이스크림은 녹아서 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대신 으깬 감자(Mashed potato)를 스쿱으로 뜨는 소리를 사용하여 묵직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연출합니다.
이들의 작업은 단순히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화면 너머의 음식을 '귀로 씹고 맛보게' 만드는 공감각적 연출입니다. 우리가 광고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것은, 이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소리의 덫에 뇌가 기분 좋게 걸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압니다. '맛있는 음식'의 기준은 혀끝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요. 바삭한 튀김의 파열음, 보글거리는 찌개의 리듬, 얼음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는 음식의 맛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입니다.
사운드 디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요리는 '화학'인 동시에 '음향학'입니다. 셰프가 재료를 다듬듯, 사운드 디자이너는 소리의 주파수와 질감을 다듬어 우리의 식욕을 지휘합니다.
오늘 식사 시간에는 이어폰을 빼고, 당신 앞의 음식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씹을 때 턱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과 소리가 맛을 어떻게 바꾸는지 느껴보세요. 어쩌면 당신이 느끼는 그 맛의 절반은, 당신의 귀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