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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광선검은 왜 낡은 영사기 소리를 낼까?

낡은 소음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법

by JUNSE

Sound Essay No.54

스타워즈의 광선검은 왜 낡은 영사기 소리를 낼까?

벤 버트(Ben Burtt)와 구체 음악(Musique Concrète): 낡은 소음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법

Star-Wars-1977-Poster.jpg 출처 : www.studioremarkable.com

미래의 소리는 어디서 오는가


1977년,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이 개봉했을 때,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우주 전쟁의 스펙터클 못지않게 귀를 파고드는 낯선 소리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주선이 굉음을 내며 스쳐 지나가고, 레이저 총이 빗발치며, 웅웅 거리는 광선검이 부딪히는 소리. 그것은 인류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미래의 소리'였습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SF 영화들은 '미래적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최신 전자 악기인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기계적이고 차가운 전자음이야말로 미래를 대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타워즈>의 사운드 디자이너 벤 버트(Ben Burtt)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최첨단 스튜디오가 아닌, 무거운 녹음기를 어깨에 메고 낡은 기계실과 동물원, 그리고 고속도로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영화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사운드인 '광선검(Lightsaber)' 소리는 신시사이저가 아닌, 낡은 영화 영사기의 모터 소음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글은 벤 버트가 보여준 이 놀라운 창작의 역설, 즉 "가장 미래적인 소리를 만들기 위해 가장 과거의 소리를 채집한다"는 철학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이 방식이 194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전위적인 음악 사조, '구체 음악(Musique Concrète)'과 어떻게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지 분석해 보려 합니다.



구체 음악: 소음을 악기로 해방시키다

maxresdefault.jpg 출처 : www.ism.org

벤 버트의 작업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체 음악(Musique Concrète)'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948년, 프랑스의 작곡가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는 악보에 그려진 추상적인 음표 대신,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소리(기차 소리, 냄비 두드리는 소리, 사람의 기침 소리 등)를 녹음하고 변형하여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라고 선언하며, 녹음테이프를 자르고(Cutting), 속도를 바꾸고, 거꾸로 재생하며 소리 자체의 질감에 집중했습니다.


벤 버트는 바로 이 구체 음악의 작법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가장 완벽하게 적용한 인물입니다. 그는 조지 루카스가 원했던 '사용된 미래(Used Future)', 즉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우주가 아니라, 녹슬고 기름때 묻은 현실적인 우주를 표현하기 위해 전자음 대신 현실의 '소음'을 선택했습니다.



광선검: 영사기와 TV가 빚어낸 웅장함

star-wars-sounds-header.png 출처 : flypaper.soundfly.com

스타워즈의 상징인 광선검 소리의 탄생 비화는 '우연한 발견(Serendipity)'과 '치밀한 설계'의 완벽한 조화입니다. 벤 버트는 어느 날 영사실에서 낡은 영사기가 돌아갈 때 나는 '웅웅'거리는 아이들링(Idling) 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소리에는 기계적이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한 에너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여기에 텔레비전 브라운관 뒤쪽에서 나는 고주파의 '지잉-' 하는 전파 간섭 노이즈를 섞었습니다(Layering). 영사기의 묵직한 중저음과 TV의 날카로운 고음이 합쳐지자, 비로소 강력한 에너지가 진동하는 듯한 광선검의 기본 톤(Hum)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벤 버트는 이 녹음된 소리를 스피커로 재생해 놓고, 마이크를 손에 쥔 채 스피커 앞을 이리저리 휘저었습니다. 마이크가 스피커에 가까워지면 소리가 커지고(피치 상승), 멀어지면 작아지는(피치 하강)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를 물리적으로 연출한 것입니다. 그 결과, 광선검을 휘두를 때 나는 특유의 "부웅- 윙-" 하는 역동적인 소리가 탄생했습니다. 이것은 디지털 이펙터로 만든 가짜 움직임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실제로 발생한 물리적인 파동이었습니다.



타이 파이터와 다스 베이더 : 동물의 비명과 스쿠버 장비

TIE_Fighter_SWGTCG 복사본.jpg 출처 : www.ign.com

제국군의 전투기 '타이 파이터(TIE Fighter)'가 스쳐 지나갈 때 나는 찢어지는 듯한 굉음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놀랍게도 그 소리의 원천은 '코끼리'였습니다. 벤 버트는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뒤, 그 속도를 늦추고(Slow down), 비 오는 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타이어의 마찰음을 섞었습니다. 코끼리의 생물학적 비명 소리가 가진 불규칙한 파형은, 밋밋한 우주선 소리에 생명체가 느끼는 공포와 속도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악당 다스 베이더의 그 소름 끼치는 숨소리는 또 어떨까요? 벤 버트는 억지로 거친 숨을 쉬거나 기계음을 합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스쿠버 다이빙용 호흡기(Regulator)를 입에 물고, 그 안에 달린 아주 작은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숨소리를 녹음했습니다. 그 좁은 관을 통과하며 발생하는 공기의 저항음과 기계적인 밸브 소리는, 다스 베이더가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기계인간이라는 설정을 단숨에 청각적으로 납득시켰습니다. 이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비로 가장 미래적인 캐릭터의 정체성을 완성한 사례입니다.



블래스터와 츄바카 : 일상 속 낯선 소리의 재발견

5e94826f7d7499000120d564-image_f9b9d30e.jpeg 출처 : www.starwars.com

한 솔로의 레이저 총(블래스터) 소리는 송전탑의 케이블을 렌치로 때렸을 때 나는 금속성의 타격음을 녹음한 것입니다. 털북숭이 외계인 츄바카의 목소리는 곰, 바다표범, 오소리, 사자 등 여러 동물의 울음소리를 조각조각 잘라내어 감정별로 분류한 뒤, 높낮이를 조절해(Pitch Shift) 인간의 언어처럼 들리도록 재조합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피에르 셰페르가 기차 소리를 녹음해 음악을 만들었던 구체 음악의 방법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벤 버트에게 세상은 거대한 악기였고, 마이크는 그 악기를 연주하는 채였습니다.



가장 미래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에서 온다

Ben_Burtt 복사본.jpg 출처 : www.wired.com

<스타워즈>의 사운드 디자인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소리들이 컴퓨터가 만들어낸 매끈한 가짜가 아니라, 거칠고 불완전한 현실 세계의 소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소리의 복잡한 질감(Texture)과 불규칙성(Randomness)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벤 버트는 낡은 기계와 동물의 소리에서 이 '현실의 DNA'를 채취하여 가상의 우주선과 무기에 이식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선검을 보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웅웅 거리며 내 눈앞에서 타고 있다고 믿게(Suspension of Disbelief) 되는 것입니다.


벤 버트의 작업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줍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반드시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독창적인 미래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가장 평범하고 낡은 소리들을 낯선 시선으로 다시 듣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혁신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과 재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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