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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듣는 스포츠 경기소리는 '가짜'일지도 모른다?

현장음과 효과음으로 재창조된 '스포츠 중계'의 하이퍼 리얼리티

by JUNSE

Sound Essay No.53

당신이 듣는 스포츠 경기소리는 '가짜'일지도 모른다?

현장음과 효과음으로 재창조된 '스포츠 중계'의 하이퍼 리얼리티

GgfDXY6q0wduhIaaegRsuMfRCxL90KhBBnWMi3RkcY9WJGdh_L2lUScpgdYAQpOzi0K0xo72v3opLwVeIxRcmw 복사본.jpg 출처 : 나무위키 '미시간 스타디움'

직관보다 더 짜릿한 '집관'의 비밀


축구, 야구, 골프...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직관'의 매력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기의 세밀한 디테일과 타격감은 현장보다 TV 중계로 볼 때 훨씬 더 선명하고 짜릿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팡!" 소리, 골프채가 공을 때리는 경쾌한 타격음, 축구 선수의 거친 숨소리까지.


우리는 이 소리들이 현장에 있는 마이크를 통해 그대로 전달된 '순수한 자연음'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TV를 통해 듣는 그 소리는 '가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진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방송사의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수십 개의 마이크와 믹싱 기술, 때로는 미리 준비된 효과음을 통해 현장의 소리를 '재조립'하고 '증강(Augment)'시킨 결과물입니다.


이 글은 스포츠 중계 뒤에 숨겨진 사운드 디자인의 세계를 탐구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난잡한 현장의 소음 속에서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소리만을 골라내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를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마이크의 군대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를 낚다

MICsb.jpeg 출처 : spectrumnews1.com

스포츠 중계는 전쟁과 같습니다. 소리를 낚기 위한 전쟁이죠. 넓은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결정적인 소리를 잡기 위해, 방송사는 엄청난 수의 마이크를 동원합니다.


파라볼릭 마이크 (Parabolic Mic): 미식축구난 축구 중계석을 보면, 사이드라인에서 커다란 접시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멀리 있는 특정 지점의 소리만 망원렌즈처럼 당겨서 잡는 '파라볼릭 마이크'입니다. 이 마이크 덕분에 우리는 선수들이 부딪히는 소리나 거친 숨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땅속에도 있다 : 야구 중계의 백미는 타자가 공을 칠 때 나는 "딱!" 소리와 포구음입니다. 이를 위해 방송사는 포수 뒤쪽 백네트는 물론, 심지어 베이스 근처 땅속에 마이크를 매립하기도 합니다. 골프 중계에서는 홀컵 안에 마이크를 설치하여 공이 "땡그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극대화합니다.


실시간 믹싱의 예술 : 수십 개의 마이크에서 들어오는 소리는 중계차에 있는 오디오 감독에게 전달됩니다. 감독은 공의 위치와 카메라 앵글에 맞춰 실시간으로 마이크의 볼륨을 올리고 내립니다(Fader riding).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추면 함성 소리를 키우고, 그라운드를 비추면 선수들의 기합 소리를 키웁니다. 즉, 우리가 듣는 소리는 자연스러운 현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되고 편집된 '연출된 현장'입니다.



없는 소리도 만든다 : '스위트닝(Sweetening)'의 기술

0FfPXmT0-DZFhNS3q-main_67-1.jpg 출처 : www.videomaker.com

더 놀라운 사실은, 때로는 현장에 없는 소리를 인위적으로 더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방송 업계에서는 이를 '스위트닝(Sweetening, 감미료 더하기)'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의 '무관중 경기' 중계였습니다. 텅 빈 관중석에서 경기가 진행되자, 선수들의 거친 욕설이나 밋밋한 타격음만이 들려왔고 시청자들은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이에 방송사들은 과거 경기에서 녹음한 관중 함성 샘플을 사용하여 '가짜 관중 소리(Crowd Noise)'를 입혔습니다. 홈팀이 골을 넣으면 환호성을, 반칙을 당하면 야유를 보내는 소리를 사운드 엔지니어가 DJ처럼 실시간으로 연주한 것이죠.


이는 비단 특수한 상황만이 아닙니다. 일부 방송사는 야구 배트의 타격음을 더 시원하게 만들기 위해 미세한 효과음을 섞거나, 농구 골대의 그물 소리('철썩')를 강조하기 위해 특정 주파수를 부스트(Boost) 하기도 합니다. 이는 '조작'이라기보다, 시청자가 기대하는 '장르적 쾌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엔터테인먼트적 허용에 가깝습니다.



현실보다 더 리얼한 '소리의 판타지'

mixer-hand-1.jpg 출처 : www.travsonic.com

우리는 스포츠 중계를 보며 '리얼함'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리얼함'입니다. 잡음 없이 깨끗한 타격음, 적절한 타이밍에 터지는 함성, 선수들의 생생한 호흡.


스포츠 사운드 디자인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그들은 현장의 무질서한 소음을 정제하고, 중요한 소리는 과장하며, 감정적인 소리를 덧입혀 시청자를 경기장 한가운데로 순간 이동시킵니다.


결국 스포츠 중계의 사운드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액션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TV 앞에서 손에 땀을 쥐는 이유는, 선수들의 플레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심장 박동을 조율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들의 치열한 연출 덕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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