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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May 07. 2023

글쓰기를 좋아한다면서 쓰지 못한 나날들

흰 종이에 검은 글자를 수놓는 일

3월 12일, 브런치에 가장 최근에 글을 쓴 날이다. 주 2회는 써야지 하다가 주 1회라도 꾸준히 쓰자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글을 발행하는 텀이 2주, 3주로 늘어나더니 어느덧 한 달을 넘어 두 달 가까이 새로운 글을 쓰지 못했다. 핑계를 대보자면 많아진 업무량, 한 단계 더 떨어진 것만 같은 체력, 만성피로로 몸에서 보내는 이상신호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글을 쓰고 싶고 써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의지력이 부족했던 탓일 수도 있고 피곤한 상태 말고 몸과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써야 잘 써진다는 합리화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험상 물리적인 시간이 많아진다고 그에 비례해서 내가 생산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똑같이 늘어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때 가서 갑자기 없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고 의지력이 샘솟지 않기에 또 며칠, 길면 몇 주가 순식간에 흘간다는 것도 말이다.




지금 당장 을 쓴다고 나의 환경이 갑자기 크게 달라지거나 눈에 보이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듯이 오늘 이 글을 쓰지 않는다고 내 삶에 먹구름이 끼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글을 쓰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한편으론 일상의 우선순위에서 너무나도 쉽게 밀려날 수 있다. 나 역시도 이왕 쓰는 거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로 인해 글쓰기가 부담스럽지는 않은 것을 보면,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과는 달리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느라 우선순위에서 미뤄놓은 것일 테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지금 하고 안 하고 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글을 쓰는 대신 잠을 택했을 때 그 순간 몸은 편하지만 마음속엔 불편함이 겹겹이 쌓이고 몸의 편안함도 찰나일 뿐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고 잘하려는 마음이 과하다 보니 스스로 성에 차지 않는 글을 쓰니 미루기를 택하고, 그 여파로 하지 못한, 아니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그냥 모른 척 지나가다 보니 두 달이란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글감을 떠올리며, 메모장에 떠오른 생각을 짧게 기록해 둔 채 저장 버튼을 누르기만 반복할 뿐 첫 문장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루틴으로 만들고 습관을 들이는 과정은 지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어렵게 만 루틴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건 너무나도 쉽고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불편하게 노력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출퇴근길 지하철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책을 읽고, 출근 전에 조금 여유 있게 일어나거나 아이를 재우고 나서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을 참고 조금이라도 글을 쓰거나 책 몇 장이라도 읽던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루틴이 무너진 나날을 보냈다.


북스타그램을 하고 조금씩이지만 글쓰기를 하다 보니 온라인상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분들을 알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다독가에, 글도 쓰시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셨다. 심지어 본업이 따로 있는데도 인스타그램 피드도 매일 같이 꾸준히 올리시는 분, 육아를 하시면서도 새벽기상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들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다가도 가끔은 나는 그만큼의 의지와 열의가 없는 걸까. 간절함이 덜 한 것일까 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무렵 즈음, 몇 기수 째 계속해오던 글쓰기모임을 다시 연장하는 것도 고민했다. 주 1회 이상 글을 쓰고 공유하는 것이 모임의 취지인데 그러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이번 기수도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며칠 동안 이랬다 저랬다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계속 이어가기로 한 건 혼자서는 아예 놓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초를 아껴가며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그때의 나도 나고, 떨어진 체력에 허덕이다 잠시 쉬어가는 지금의 나도 나라는 것을 말이다. 곧 다시 또 즐겁게 읽고 쓰며 나누는 나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또 지금이 '그땐 그랬지'처럼 추억이 될 거라고.




알고리즘의 선택으로 보게 된 어느 영상에서 스트레스는 무언가를 해서 생기기보다 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쌓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러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나 하지 못할 때, 해야 하는 일인데 하지 않았을 때, 두 가지 경우 모두 어떻게든 해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서 무엇을 이루기 위한 글쓰기보다는 우선 그냥 써보기로 했다.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려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그 과정을 즐기기보다는 결과물에 신경을 쓰게 되어 완벽할 수 없는 일에 완벽을 바라게 되기에. 오늘의 이 글이 잠시 쉼표였던 글쓰기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흰 종이에 검은 글자를 수놓는 일은 때로는 번거롭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쉬고 싶은 뇌를 피곤하게 하지만 엉성하게나마 수놓고 나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쓰기 전에는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삐뚤빼뚤할지라도 줄을 서서 자기 자리에 서 있는 기분도 들고 다음에도 또 써야지! 란 마음이 생긴다. 그렇기에 글쓰기를 이어가기 위한 방법은 우선 글을 쓰는 것, 그것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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