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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Oct 06. 2019

페미니즘의 본질성

희곡 '인형의집'으로 본 페미니즘의 본질

진정한 페미니즘은 무엇일까?

                            

 1970년대 강간을 한 남성에게 여성을 책임지라는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여성을 첫 손님으로 태우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에 승차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참정권을 얻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동등한 인간이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했던 것을 바꾼 것은 분명 페미니스트들이었고 속도의 문제는 논외하고 그들의 방향성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편해하고 부정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성과 여성이 싸우는 것이 페미니즘인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모든 우파가 일베가 아니고 모든 페미니스트는 메갈리언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다.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고 평가되며 여성해방운동에 큰 기여를 한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짧은 희곡에서 페미니즘의 본질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남편에게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여성이 노라가 남편이 자신을 인형으로 취급하는, 주체성이 결여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누군가의 인형으로 살지 않겠다며 가정과 자식들을 두고 집을 나간다는 내용이다.  노라의 남편인 헬메르는 노라를 무척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장난감,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소유물, 홀로 설수 없고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존재로 본다. 자신의 삶과 결혼생활이 그런 거짓된 것임을 깨달은 노라의 대사다.



                        

노라: 과연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 응석을 받아 주셨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놀이터에 지나지 않아요. 저는 친정집에서 아버지의 인형 딸이었던 것처럼, 당신에게 시집와서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아이들이 제 인형이 되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제가 상대를 해서 놀아 주면 기뻐하듯이, 당신이 저와 놀아 주면 기뻐했던 거예요. 헬메르,, 이게 우리의 결혼생활이었던 거예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노라가 집을 나가려 하자 남편과 나누는 대화다.


                                          

가정도, 남편도, 아이들까지도 뿌리치고 가는 것은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헬메르가 말하자 노라는 이렇게 말한다.


노라: 헬메르, 제게는 그 외에도 마찬가지로 신성한 의무가 있어요.

헬메르: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대체 어떤 의무야?

노라: 저 자신에 대한 의무에요

헬메르: 당신은 우선 첫째로 아내이기도 하고, 또 아이들의 어머니란 말이야.

노라: 그런 것은 이제 믿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첫째로 저는 하나의 인간이에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인간이기를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800년대 여성은 그저 남편에게 돈이 많이 드는 애완동물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 노라의 행동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동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입센이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을 파괴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확실히 노라의 행동은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집을 나간 어머니 때문에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는 모른다. 주체성과 책임감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강조되는 가치이다. 노라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을 세습하지 않기 위해 더욱이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의 주체성을 키워주는 교육자이자 부모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라 본다. 


여성인권 운동뿐 아니라 흑인, 장애인, 노동자 등 모든 인권 운동은 피해 의식을 기반으로 뭉친다. 다수의 힘이 필요한 민주주의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 의식을 기반으로 운동을 진행한다면 포퓰리즘이 되기 싶다. 그리고 지지를 얻어야 할 직접적 이해관계자가 아닌 이들에게서는 악감점이 생기기 쉽다. 마틴 루터 킹이나 간디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비폭력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도 피해 의식으로 뭉쳤을지언정 피해 의식을 앞세워 나아간다면 같은 성과를 낸다 해도 더 힘든 길이 되리라.


어쩌면 인형의 집에서 보여주었듯 페미니즘의 본질은 여성의 주체성에 관한 건 아닐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의 삶과 나의 가치가 정말로 자신에게서 온 것인지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페미니즘이 긍정적이고 지지 받기 위해서는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방법론이 필요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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