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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Aug 15. 2024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영화 원더풀 데이즈를 보고


자극을 쫓으며 살아왔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도파민에 절여져 새롭고 도전적인 것을 추구한다.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여행, 사업, 복권, 음주 뭐든 새로운 것에 판타지를 가지며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면 맨날 일, 집, 일, 집의 반복이라며 심심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도 그렇다. 연애도 사업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은 반복되면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다. 흥미가 떨어지고 지친다. 새로운 만남도 잠시 뿐이다.


가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삶을 사는 듯한 이들이 있다. 술도 연애도 하지 않고 운동하고 일을 하고 집을 가고 가끔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보고,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자극을 쫏기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한다. 혼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팝업 스토어나 공연을 갔다 온다. 그리고 이 지인은 놀랍게도 25살의 청년이었다.


한참 어린 이 동생에게 물어본다.


“넌 그 나이에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수도승처럼 사는 것 같아 “


“하하 그런가요? 근데 전 이렇게 사는 게 제일 좋아요”


반복된 자극이 지루해질 때쯤 그래도 내 일상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생각이 많던 중 이 영화를 접했다.



영화를 보며 내내 카뮈의 말이 생각났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평소에 일상이 지루해져서 바보짓을 할 것만 같을 때 외우는 주문 같은 말이었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2020년대를 살지만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필름 카메라를 쓰고 책을 읽으며 아날로그하게 살아간다. 똑같은 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또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춤추는 나뭇잎 천장을 매일 찍어 모으며 하루하루 기록한다.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저렇게 행복해 보일 수 있구나.


반복되는 일상은 어떤 의미도 부여되기 어렵지만 뭐든 가까이 관찰당하다 보니 서사가 생기고 동감이 생긴다. 그렇게 히라야마(주인공)의 세계로 빠지는가 싶더니 ‘좋은 영화’가 되었다. 서점 주인과의 대화에 웃고, 우연히 잘 나온 사진에 웃고, 하루가 잘 마무리되고 잘 시작되었을 때 또 웃는다. 이런 사소한 것에 웃는다. 나는 다소 염세적이고 화를 품고 하루하루를 보냈던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히라야마의 평온한 일상에도 여러 가지 이벤트가 생긴다. 우리는 참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기쁘며 슬프고, 낙관하면서도 비관하고, 들뜨면서 가라앉는다. 마지막에 운전을 하며 웃는지 우는지 화났는지 모를 표정과 소리 없는 비명은 그런 다채로운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인간은 모순된 감정을 느끼면서 그중 더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해 표출한다. 그 답답함을 누구나 품고 살지 않을까. 이 엄청난 연기에 아쿠지 쇼(히라야마 역)는 칸에서 남자 연기상을 받았다. 정말 마지막 연기는 본인 연기 인생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올드 팝을 또 그렇게 찰떡으로 입혔다. 왠지 나도 운전을 하며 큰 소리로 이런 노래를 튼다면 평범한 도로 풍경이 좋아질 것만 같은 기분.


평소에 음악을 잘 듣지 않았지만 또 그게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장 예술적인 음악의 힘이 아닐까. 일을 하며 운전을 하며 항상 음악을 듣는 친구가 떠올랐다. BGM이 깔리는 순간 나의 에너지와 영감과 행복의 풍경이 달라지는 느낌을 어릴 적부터 알았던 것이 아닐까


벌써 800편가량의 영화를 봤다. 오랜만에 만점을 준 영화였다.


연출 음악 모든 게 완벽에 가까웠고 내 평범한 일상을 위로해 주는 시퀀스와 연기는  눈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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