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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Apr 11. 2022

육바라밀

없어선 안될 존재


2주 전이었을까? 둘째 아들이 코로나 확진되고 온 가족이 자가격리 후 격리 해제 마지막 금요일. 몇 달 아니 몇 해 전부터 혀가 아프시다던 엄마를 몰아세워 서울대 출신 수술하는 이비인후과로 올려 보냈던 날. 2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자 수화기 밖에서 나오는 한숨과 어찌할 바 모르는 그 무언의 중압감.


전화를 끊자마자 패닉이었다. 귀에서 이명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방 한편에서 목놓아 울어대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온 아내는 말없이 흐느끼며 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엄마의 설암 소식. 정신이 혼미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하루 종일 밤새가며 설암에 대한 소식을 찾았다. 온갖 암 관련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주변에 수소문하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수술도 빠르고 대응도 빠르다고 했다.


그간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일 년에 한두 번 탈까 말까 한 KTX를 타고 몇 번을 서울을 오갔다. 첫 진료 날. 중언부언하며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 안 나지만 무작정 충혈된 눈으로 고윤우 교수님을 간곡히 바라봤다. 제발 우리 엄마 수술 좀 빨리 해주시길. 제가 아직 말만 하고 못다 한 것들이 너무 많고 만들어가야 할 추억이 너무 많다고.


가족들도 하나같이 도왔다. 매제는 아시는 의대 교수님을 방방곡곡 수소문했고 동생과 아버지는 엄마를 돌봤다. 와이프는 엄마가 드실만한 음식들을 마련했고 절친한 주변 친구들과 이모들은 마음 깊이 응원해줬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수술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잡혔다. 4월 14일. 고윤우 교수님은 내겐 신과 같았다. 가족들의 도움과 진심이 통한 것인지 일정을 서둘러주신 덕분에 수술이 빨라졌다. 진심으로 하늘에게 감사했다.


엄마를 모시고 영평사도 다녀왔다. 아들놈이 도가 부족해서 마음에 성난 갈고리가 있어서. 엄마가 아픈 건가 싶었다. 타인에게 단 한 번도 싫은 소리와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온 당신이 아프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원망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간 어린애들을 맡겨서 엄마가 병이 커진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결국은 내 탓이다. 내 잘못이다. 내업보다.


부처님께 50배를 올렸다. 제 업보가 모자라고 아직 제가 자식 된 도리를 할 기회가 없으니 제발 엄마 수술이 잘되게 해 달라고. 건강하게 회복하셔서 그동안 악착같이 돈에만 연연했던 나 자신도 반성하고 없어선 안될 존재가.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라는 것을 뼛속 깊게 새길 것이라고. 육바라밀로 다스려 진리와 번뇌를 깨우칠 수 있는 참된 보살이 되겠다고 절을 하며 흐느껴 울었다. 헛된 약속이 아닌 참선의 진실이라 되내었다.


산 넘어 산. 아리랑 고개를 넘듯 오늘까지 왔다.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서는 입원 수속을 위해 엄마 PCR 검사 결과를 제출 요청했고 오늘 9:30분에 엄마는 근처 거점병원에 들러 아버지와 함께 PCR 검사를 했다. 3시간이 지나고 아버지는 음성 판정이 나왔으나 엄마는 깜깜무소식.


초조하고 피가 마르듯 입술이 타들어갔다. 부랴부랴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병원에서는 양성과 음성 중간 결과가 나옴에 따라 재검이 들어갔으며 저녁 6시 이후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이 나오면 울 엄마는 수술 못하면 어쩌나.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엄마에게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으나 엄마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떨린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오후 16시. 병원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다는 엄마 문자메시지가 떴다. 문자를 읽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들 엄마 수술받을 수 있어 엄마 음성이래. 무서웠어.’ 흐느껴 말하는 엄마의 목소릴 듣자마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너무 고맙게도 회사도 직속 상사도 어머니를 잘 모시라며 응원해주셨다. 당분간은 바쁜 일은 없으니 회사일보다 마음 편히 어머니 간호를 하라는 실장님의 진심 어린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더없이 감사했다. 이 모든 게 남들한테 당하면서 바보처럼 살았으나 덕을 많이 쌓은 엄마 덕분이다.


바보 천치 같다고. 당하고만 살지 말라고 엄마를 몰아세웠던 바보 같은 내가 떠올랐다. 더 사려 깊고 더 배려하고 더 고민하고 더 신중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번에 또 배운다.


이제 다 왔다.

하나같이 모든 게 순탄하진 않았으나

이제라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한다.


입보리 행론에서는 행복의 원인은 가끔 생기고 고통의 원인은 아주 많다고 한다. 그러나 고통 없이는 초월도 없다고 했다. 그러니 마음은 강인하고 용감해야 한다.


없어선 안될 존재. 가족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진심과 전심. 존재에 대한 감사함. 하루와 한 시간의 행복. 찰나의 집중. 기약 보다는 행동. 앞으로 더 배우고 수련해가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일상으로 회귀하고 모든걸 다 원상 복귀할 것이다. 최선과 모든 정성을 다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견딜 것이다. 견뎌내는 것도 내겐 기쁨이고 그 고통으로 인해 새로운 행복과 배움이 있다면. 엄마가 잘 회복되고 건강하게 20년만 더 내 곁에 머물러주신다면 이보다 더한 지옥이라도 견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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