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에서 월급사장으로
넓은 등으로 나에게 귀감이 되었던 사람, 회사들이 있다.
감사하게도 그 '존경'과 깊은 관계를 맺을 기회들이 있었다.
말로, 행동으로 그저 따랐던 적도 있지만
때로는 그(들)에게 화를 낸 적도 있고,
소리치며 위기감을 조직 전체에 조성한 적도 있다.생각해보면 억지도 많이 피웠고, 무리한 요구나 불필요한 행동도 많이 했다.
그(들)의 반응에 감사하고, 더 존경의 마음이 생기게 된 때에도 있었지만
고백하자면,
넓은 등판이 한없이 쪼그라들어 보일 때도 있었다.
그중 일부는 직접 나에게 '존경을 표해달라'라는 식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만 시끄럽게 해 달라는 얘기다. (흔한 찍어 누르기.)
함께 미래를 꾸려가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은 어떻게 하는 걸까?
먼지 쌓인 책 속 정의는 뒤뜰에 묻어버리자.
1) 초가삼간이 다 타들어 갈 듯해도 "허허 괜찮아요"하며 웃고 따르면 될까?
2) 이미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첨언은 불필요하다' 생각하면 되는 걸까?
둘 다 틀렸다.
1)은 기망이다.
- 대책이 있든 없든 말이나 표현은 해줘야 한다.
상대방이 나보다 똑똑하건 경험이 많건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아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매우 불안해하는구나'라는 인상은 심어줘야 한다.
'경종'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 언제나 믿고 바라봐 줘야 할 혈연이나 사제 관계가 아니니까.
- 결국 내 상상이 부족할지라도 이야기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안전하다'는 자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대방, 조직 전체를 속이는 것과 다름없다.
2)는 직무유기다.
- 설령 확률적으로라도 - 내 의견이 틀렸다 하더라도 - 이야기해야 한다.
여러 의견을 통해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은
모든 사건은 서로 간섭되지 않는 작은 독립 시행이고, 그런 독립 시행이 많아질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진다는 소위 [확률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거라면 직업 자체에 대한 직무 유기다.
그럼 비평적 사고는 어떨까?
- 어느새부턴가 버릇없는 태도와 솔직한 태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평적 사고도 다름없다.
비평적 사고와 장애물이 되는 사고는 분명히 다르다.
('일'은 근본적으로 0에서 1을 만들어야만 가치가 있다. 그래서 모든 '일'은 어렵고, 모든 '일'은 '원래 되지 않았던 것을 되게 만드는' 행위이자, '장애물을 극복'하는 행위다.)
비평적인 사고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고민의 깊이와 그 깊이에서 만들어진 시각, 논리, 감정, 사례들을 동반한다.
무척이나 어렵고 추상적이지만, 비평은 일의 진행방향(목적)과 같기에 누구나 차이를 구분해낼 수 있다.
- 비평적 사고를 제대로 할 줄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부정당하거나 허점을 노출하는 데에 극도로 방어적이고 기분 나빠한다.
자신을 바라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적에 쿨하고, 매번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논리적으로는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넘겨버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기분 나빠하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서로 불편해지고 멀어진다.
존경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과의 관계인데,
눈 밖에 나버리면 존경은커녕 이런 고민은 또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래퍼들, 영화 기생충 속 대사로부터
RESPECT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이제는 생활 속 일부가 됐다.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존경/존중한다는 의미다.
그 사람과 함께 해보지 않았어도 상대방을 RESPECT 한다는 이야기를 쓰곤 한다.
그래서 SHOUT-OUT 받은 사람은, 상대방을 몰랐다가도
RESPECT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며 서로 관계가 쌓이기도 한다.
이미 죽은 위인들이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관계를 쌓아나갈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ROLE-MODEL이라는 이름으로
개인들의 뇌 세포 속에 살아 움직이며 관계를 맺는다.
부끄럽지만, 나는 작은 경험 끝에
(내가 계속 존경할 수 있는 상태로) 발전하도록 돕는 행위라고 결론지었다.
함께 한다면, 발전하도록 도와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지도록.
그저 배우는 사제관계라도
스승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제자의 관점에서 도와야 한다.
학생이 교단으로 나가 '내가 더 낫소' 하며 가르치면 관계가 깨지니 존경이 아니다.
학생이 스승의 틀린 말을 모두 외우면 그건 속임이고, 학생 스스로도 복습을 덜 한 셈이다.
학생은 스승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스승이 계속 스승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스승도 부족한 점을 채우게 되고, 학생도 스승을 계속 존경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녀도 서로 존경한다면 관계를 깨트리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비행은 부모에게 부모 역할을 빼앗는다.
지나친 간섭은 자녀 역할을 부모가 대신하는 셈이다.
연인관계도 그렇다.
상사와 후임 관계도 그렇다.
오너와 월급사장 관계도 그렇다.
심지어 나 자신과의 관계도 그렇다.
서로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뭔가 철학적으로 마무리된 기분이 있어 찜찜하다.
하지만, 이 글이
어떤 관계에 놓인 사람이던
태도를 결정하는 데에 꽤나 명쾌한 해답을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
[오너에서 월급사장으로]를 정의 내려봤다.
나에게는
내일에 바치는 備忘錄이자
다음 고비에 바치는 非忘錄.
하지만, 누군가가 읽기에는
'리얼타임 비즈니스 에세이'가 아닐까.
다른 독자에게는 실시간 난중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기업에 소속된 분들에게는 기업 비밀이자, 치부일 수 있다.
조심하며 쓰긴 하겠지만, 때로는 뼈 아픈 말도 있겠지.
대신, 그 누가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非亡錄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