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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l 18. 2023

신당역 사건, 다음날 역으로 향하다

나는 기자였다 - 05

첫 위기, 신당역 사건 취재


신당역 사건. 2022년 9월 14일, 한 남성이 여성을 오랫동안 스토킹하다 신당역 화장실에서 살해한 사건이다.


사회부 기자였던 내가 취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 신당역으로 향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나는 신당역으로 향했다.


당시 신당역에는 추모공간도 제대로 조성되기 전이었다. 그만큼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막 테이블이 설치되고 피해자와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추모의 묵념을 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도 상황상 사진기자님이 동행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미션은 세 가지였다. 신당역 사건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것, 신당역 사건 현장의 사진을 찍을 것, 신당역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인터뷰를 딸 것.


그러나 한 명의 여성으로서, 신당역에 가있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누군가가 생명을 잃은 장소, 특히나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한 장소를 기웃거리면서 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누군가는 슬픔에 잠겨 추모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모습을 찍어야 했다. 그게 나였다.


신당역 사건의 여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의 빈소가 마련된 곳을 알게 된 데스크에서 빈소에 방문해 유가족들과 컨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누구보다도 슬픔에 잠겨있을 이들에게 다가가 유가족의 입장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 이런 고민을 데스크와도 나눴지만, 사실 별다른 수는 없었다. 다녀오는 것 만이 유일한 경우의 수였다.


빈소 아래 1층 휴게실에서 한, 두 시간 정도를 고민하다가 빈소로 올라가 유가족들에게 회사를 대표해 왔다고 말씀드리고 빈소를 방문했다. 유가족의 입장이 듣고 싶다는 말도 삐걱삐걱 로봇처럼 했다. 유가족은 입장을 말하는 자리가 따로 있을 거라고 했고,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빠져나왔던 것 같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서.


나는 그날 이후로 한동안은 유가족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품고 다녔다.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내가 했던 일이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니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합리화에 실패했고 오랜 시간을 괴로워했다.


그때의 데스크는 나에게 유가족들이 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게 기자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은 그들에게 입장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었고, 이는 결국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었을까. 나는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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