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Apr 29. 2023

컨베이어 벨트

두 개의 컨베이어 벨트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나의 컨베이어 벨트에는 인간 동물들이 올라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 서비스의 공장화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각자 필요한 의료 행위를 받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주저함이 보이지 않는다. 이 컨베이어 벨트는 삶을 향하므로.


또 다른 컨베이어 벨트는 죽음을 향한다. 비인간 동물들이 올라있다. 그들은 죽임 당해 인간의 먹이가 되어야 하기에 효율 좋은 죽임기계에 올라 팔과 다리가, 목과 머리가 잘려나가고 있다. 두렵지만 뒷걸음질 칠 수 조차 없다.


그들을 향한 서슬 퍼런 흉기들.

뾰족한 바늘, 날 선 칼. 차가운 금속이 컨베이어 벨트 위의 존재들을 스친다.

치료용이냐 도살용이냐, 도구로 쓸 것인가 흉기로 쓸 것인가, 용도가 다를 뿐.


나는 첫 번째 컨베이어 벨트에 올랐다.

대학병원이라 불리는 공장에 도착해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 키오스크를 통해 번호표를 뽑는다.

병원에서 마주한 키오스크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훨씬 더 익숙해 보였다.


이 공장에서는 인간 동물들의 고유한 이름은 바코드(환자번호)로, 고유한 아픔들은 질병코드로 분류한다.

모두 번호가 뜨는 전광판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빠르게 바뀌는 순번에 내 번호가 불리면 컨베이어벨트에 척척 알아서들 오른다.

번호표를 보여주고 팔을 내민다. 고무줄을 감는다. 피를 뽑는다.

소변검사를 하러 바로 옆으로 향하라는 안내를 받는다.

배급받은 컵에 소변을 받아서 화장실 구석에 뚫려있는 칸에 얹어 놓는다.

x-ray실로 이동해 흉부 사진을 찍는다.


다음은 심장검사실이다.

또 키오스크로 가서 바코드를 찍고 번호표를 들고 대기한다.

순번이 되면 검사실로 들어가 심전도 검사를 받는다.

기기들을 부착하고 잠시 기다리면 끝이 난다.

심전도가 끝나고 24시간 활동성 심전도 검사 기계를 가슴에 부착했다.

24시간 동안 평소처럼 생활하면서 심전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기록하는 장치이다.

기계들을 주렁주렁 달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다시 병원 공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키오스크들을 만나고 시키는 대로 차례를 기다렸다.

24시간 붙이고 있었던 심전도 기계를 떼고,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나와 심폐운동부하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기다린다.

번호가 뜨고 이름이 불리면 검사실로 들어간다.

다른 환자와 혼동이 있으면 안 되므로 검사실의 직원은 바코드로 나를 식별한다.

또 무언가 설명을 들으며 심장 검사를 위한 기계들을 주렁주렁 몸에 달았다. 이번엔 폐도 함께 검사하는 항목이라 호흡 마스크도 얼굴에 꽉 매달았다.

그 채로 러닝머신 위에 올라 단계마다 점점 높아지는 경사로와 속도에 맞추어 걷다가 뛰었다.


일주일 뒤 검진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 공장을 다시 찾았다.

바코드를 찍고, 번호표를 뽑고, 30분 정도 대기하여 의사를 만났다.

심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증상만 있을 뿐.

코로나19 후에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다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각자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코로나19 2차 백신을 맞은 후로 이 증상이 시작됐다.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무언가 조금의 운동성이 있는 활동을 하면 심박수가 마구 올라가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간 진행해 온 과정들이 무색하게 결과를 전해 듣는 시간은 1-2분 정도로 끝이 났다.


내가 병증의 치료를 위해 첫 번째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있을 때, 두 번째 컨베이어 벨트 위 비인간 동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여느 때와 같이 소, 닭, 돼지, 어류 등 고유의 존재는 지워지고 고기라는 바코드를 부여받아 죽음을 향해 무참히 끌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살이 불려지고, 옴짝달싹 못해지고, 속박과 구속을 견디다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첫 번째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온 나는 죽음으로 향하는 이 두 번째 컨베이어 벨트를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군가 계속해서 아파야만 지속될 수 있는 이 거대한 공장식 산업 시스템 안에서 첫 번째 컨베이어벨트 또한 ‘삶’을 향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두 번째 컨베이어 벨트의 작동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결국 파멸이란 종착지로 향하게 될 것임을.


작가의 이전글 부엉이 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