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
내 이름은 김지은이다. 金志銀. 쇠 금, 뜻 지, 은 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께 왜 내 이름만 이러느냐고 여쭤보았던 기억이 있다. 내 위로 두 친척 언니들의 이름은 지영, 지혜였는데 나만 빼고 다 지혜 지(智)를 썼기 때문에 왜 나만 다르냐고 물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모른다고 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의 은 자는 은혜 은(恩)이 많았다. 은혜 은도 아니고 은 은(銀)이 뭐야?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은 별 뜻 없이 대충 지으신 게 아닌가 하고 학창 시절 내내 섭섭해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할아버지가 내게 금도끼 은도끼를 다 주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금도끼, 은도끼 앞에서 욕심 없이 정직할 수 있는 마음을 주고 싶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할아버지께 여쭤봤어야 했는데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럴 기회는 없었다.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그 이름을 따라 금과 은을 세공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장신구가 좋았고, 그걸 내가 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문방구에서 작은 은반지를 골라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조금 더 커서는 동대문 종합상가에서 부자재를 사다가 귀걸이를 만들어 엄마와 담임 선생님께 선물하곤 했다. 반짝이는 게 좋고 만드는 행위가 좋았던 나는, 그 길을 따라 금속공예를 전공하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며 공방에서 기술들을 배우기 시작했던 때, 공방 선생님께서 공방 친구들과 함께 창업해 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셨다.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용돈벌이 하면 좋잖아~” 하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처음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창업에 임했다.
그때 우린 다섯 명이었는데, 각자 분담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책임의 무게도 그만큼 가벼웠던 것 같다. 해를 거듭하며 진지하게 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5명 중 한 명이 빠져 4명이 되면서, 좀 더 사업적으로 다가가 보기로 했다. 홈페이지 판매를 활성화시키려 온라인상에 마케팅도 열심히 해보고, 마켓에 참여하고, 온/오프라인 입점처를 늘려갔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우리는 여러 일들을 거치며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혼자가 되니 방향성이 사라졌다. 방향성이 사라지니 앞으로 사업을 어떻게 이어갈지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정립하겠다는 핑계로 방황하던 때, 하루는 거실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뉴스에서 윤종신 님이 나와 인터뷰하는 걸 보게 되었고,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월간 윤종신. 열곡 남짓 꽉 찬 앨범보다 곡 하나가 주목받는 디지털 음원 시대가 되어 버렸기에 이에 맞추어 매달 새로운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던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매달 새로운 작품을 낸다는 것에 꽂혔다. 좋아, 그럼 나는 월간지은으로 하자.
月間志銀(달 월, 사이 간, 뜻 지, 은 은). 뜻이 담긴 은제품을 매달 만들기. 그렇게 브랜드 이름과 사업 방향성이 정해졌다. 그럼 이제 어떤 뜻을 담아 만들 것인가? 고민하던 때,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모습을 담아보자 하여 고양이 모티브 주얼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하고 재밌는 일을 하다 보니 신이 나서 일을 했고, 몇몇 행사에 참가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해나가고 싶은 욕심에 쇼룸 겸 공방을 얻어 몇 해를 보냈다. 그러다 쇼룸 임대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와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아야 했고, 공교롭게도 이때 코로나가 시작됐다.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사태를 지켜보며 결국 새로운 공방을 얻지 않기로 결정하고, 집에서 작업하기로 했다. 월세가 나가지 않으니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비거니즘을 따르겠다고 결심한 시기와도 겹쳤다.
코로나 때문에 행사들 (주로 박람회들)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재개되더라도 관람객은 일회용 장갑, 마스크를 사용하기에 주얼리를 여유롭게 둘러보거나 구매하기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그동안 참여했던 행사를 나가지 않게 되니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참가했던 박람회들은 ‘질러라!’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워 소비를 부추기는 행사였다. 항상 이 행사들을 판매자로서, 관람객으로서 큰 고민 없이 즐겨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더 많이 소비하지 못하면 내 반려동물에게 더 해줘야 할 것을 못 해주는 것만 같은 패배감을 느끼기도 했다. 생활필수품이 아닌 주얼리들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에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주얼리를 만들고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하지만, 장신구란 최후의 사치품이라고 생각한다. 먹고, 자고, 쓰고, 입는 것 중 맨 마지막. 제일 안 필요한 것.
결국에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앞으로도 계속한다면 비거니즘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어떻게 그만둘 것인가’, ‘어떤 다른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극단적인 면이 있어서,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어도 손바닥 뒤집듯 그만둬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비건이 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이런 성향은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뒷생각 없이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끙끙 앓기만 하다 이런 고민들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왜 꼭 그만두어야만 해? 나는 무얼 구매하려고 할 때, 그걸 만든 사람을 봐. 나는 그럼 결국 언니같이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만든 제품을 선택하고 싶은데? 근데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했을 때, 언니가 그만두면 그 사람들은 어떤 차선책을 골라야 해?”라고 했다.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이었고, 친구들의 말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비거니즘을 최대한 따르려 노력하는 주얼리 디자이너로 남아있자.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필요한 만큼만 만들자.’ 그렇게 나는 작게 존재하면서 일련의 노력들을 하고 있다.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버려지는 부분 최소화하기.
재료로 쓰는 금속, 화학약품들은 많은 공해와 노동착취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아주 조금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거치는 공정에서 버려지는 부분이 최대한 덜 나오게 한다.
제품을 만들 때 몰드를 떠서 같은 제품을 여러 개 만드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여러 제품이 나올 때 다듬어지는 부분을 최소화하면 버려지는 금속 가루를 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몰드에 들어갈 원본을 제작할 때 최대한 깔끔하게 작업한다. 제작 과정에서 나온 금속 가루(은, 금)들은 모아두었다가 일정량 이상이 되면 녹여서 다시 사용한다.
동물성 재료(진주, 산호, 자개 등), 플라스틱 부자재 사용하지 않기.
아직도 예전에 대량으로 구매했던 재료들이 남아 있어서, 있는 걸 모두 소진할 때까지는 쓰고 있다.
화학약품 최소로 쓰고 잘 처리하기.
약품 처리에 대해 전문 기관에 문의하여 얻은 답을 토대로 최대한 오폐수가 덜 나오도록 하고 있다.
수리가 가능한 제품들은 최대한 수리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가끔 손님들이나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주얼리들에 고칠 부분이 생겼다거나 리폼하고 싶다고 문의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 주얼리들이 버려지지 않고 다시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다.
포장 줄이기.
특별히 포장을 원하는 경우가 아니면 무포장으로 배송한다. 포장을 하는 경우에도 최대한 코팅이 되지 않은 종이 포장재를 사용하려 한다. 배송 상자는 택배 상자들을 잘 모아두었다가 재사용한다. 주얼리는 부피가 작아서, 작은 상자에 배송하기 때문에 친구들도 작은 택배 상자들만 따로 모아두었다가 나에게 전달해 준다. 손님들이 포장재를 모아두었다가 쓰라고 주실 때도 있다.
소비 위주의 행사 나가지 않기.
과소비를 조장하는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주문받는 만큼만 만들기.
새로운 제품의 샘플을 만들 때를 제외하고는 주문이 들어온 만큼만 만든다.
이렇게 하려니까 생계를 겨우 이어갈 만큼의 매출만 나온다. 그러니 자연히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쓴다. 이런 삶, 지금의 생활에 불만족하지는 않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에 다른 경제활동을 겸하려 찾고 있다. 요즘 N잡러가 대세라던데, 난 어떤 N잡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금지은을 작게 남겨두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 떠나보기로 한다. 金에는 ‘단단한’, 志에는 ‘마음’, 銀에는 ‘예리함’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예리하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자로서, 나는 이제 어디로 가볼까?
지금부터 가는 길은 동물을 해치지 않고,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고, 환경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좋겠다.
*이 글은 <청년 비건의 시선 작품집>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