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커다란 은행나무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마당 있는 집 한편에 뿌리내린 은행나무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마당이 없고, 마당 없는 우리 집에도 은행나무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집 나무는 아니고, 앞집 건물 옆에 살고 있는 나무다.
이 은행나무에는 까치 가족이 산다. 까치 둘이서 1월 말부터 매일 열심히 집을 짓더니 어느 날 아기 까치를 낳았다. 까치들은 매년 새 둥지를 만들어 쓴다는데, 그럼 내년에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려나? 아니면 집을 부수고 다시 지으려나?
아무튼 둥지를 어찌나 꼼꼼하게 지었는지, 집을 다 짓고 나서는 안쪽이 통 보이질 않았다.
철통보안인 이 까치집에 아기 까치가 있는 걸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은행나무 밑 차도에서 “끼약-깍-까가가가각!” 하며 다급하게 울부짖고 있는 조그마한 까치를 보게 된 날. ‘얘가 저 위 둥지에서 떨어졌구나.’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 날지 못하던 아기 까치가 차에 치이거나 다치지 않게 다시 나무 위로 올려주고 싶었다.
여기서 ‘우리’로 등장하는 인간 동물들을 잠깐 소개하자면 나, 친구, 1층 할머님. 이렇게 셋이다.
친구의 이름은 오성준이고 15년 지기 내 애인이다. 우리는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겨서 누군가에게 서로를 소개할 때면 친구라고 소개한다.
1층 할머님은 우리 동네 터줏대감이시다. 주민들이 쓰레기 배출 요일과 시간을 지키게 하는 일,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못하게 하는 일, 정화조 청소 비용을 걷는 일 등. 우리 빌라의 일이라면 제일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신다.
이날도 밖이 소란스러우니 할머니가 나오셨다.
“뭐하노? 뭐가 막 시끄러워서 나와봤다.”
“아니~ 까치가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이러고 있어서 올려 주려고 하고 있어요.”
“아이고. 왜 떨어졌노 그래.”
“그러게 말이에요.”
“우야꼬 우야꼬. 저 까치들이 부모인갑네? 막 뭐라 하네.”
“그런가 봐요. 엄청 뭐라고 해요.”
우리 중 내 친구가 가장 재빠르기에, 도망가는 까치를 어르고 달래 가며 잡아서 손이 닿는 한도의 최대한 높은 가지에 올려주었다.
“아냐 아냐, 어떻게 하려는 거 아니고 도로 올려주려고 해. 알았어. 알았어.” 까치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사포로 내뱉으며.
때마침 버려진 의자가 있어서 얼른 나무 밑으로 대령했다. 그걸 밟고 올라갈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인간의 키로는 은행나무 제일 아래에 있는 가지에도 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 거기! 거기에 올려주면 올라가겄제?”
“그래야지 뭐. 여기에라도 올려주면 알아서 올라가겠죠.”
할머님은 연신 “아이고 왜 떨어졌노 그래.”를 외치시고.
아기 까치는 까치의 언어로 대답이라도 하듯 “깍깍까가가각!”하고 외치던 풍경.
내가 은행나무였다면 이 광경을 보면서 가지를 손처럼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아기 까치를 둥지 위로 올려주고 싶었을 테니까.
이 과정을 엄마 까치와 아빠 까치도 공중에서 이리 날았다, 저리 날았다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아기가 나무 아래로 떨어져서 걱정인데, 저 인간들이 어찌할까 봐서 더 안절부절.
지켜보며 무지 지저귀었다.
‘까치가 손에 있을 때 어땠어? 부드러웠어? 귀여웠어?’ 까치를 잡아서 올려준 친구에게 나중에 물어봤다.
친구는 아기 까치의 체온이 따뜻했고, 자기를 놓으라고 손을 자꾸 쪼았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그 애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그럴 겨를도 없었거니와 만져서 좋을 게 뭐 있나, 안 만지길 잘했다 싶다. 나는 까치가 귀엽고 사랑스러우니까 살짝 만져보고 싶어 내미는 손길이지만 까치는 무서웠을 테니까.
차가 다니는 도로라 마음이 급해져 까치를 어떤 방식으로 도와야 최선일지 찾아보거나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맨손으로 까치를 구조하게 됐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분께서 새를 구조할 때에는 천 같은 걸로 덮어서 시야를 차단한 상태에서 구조하면 새가 덜 불안해한다고 알려주셨다.
둥지에서 떨어져 당혹스러웠을 까치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이 사건은 우리 셋이서 까치 구조 작전을 펼친 날로 기억된다.
그 후로 몇 달 뒤에 친구가 집 앞 골목에서 아기 까치로 추정되는 애를 만났는데, 잠시 눈을 빤히 쳐다보고 갔다고 한다. 그날보다 좀 더 컸지만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 깃털의 부숭함을 가진 까치라 알아볼 수 있었다고.
나무에 잎이 없어 훤하게 까치집을 구경하던 날들이 지나고, 손톱만큼 작은 잎사귀들이 푸르게 커지고, 푸른 나무 아래서 한바탕 아기 까치 소동이 일고, 푸르던 잎들이 이제는 노랗게 익었다. 노랗게 익어 노란빛이 우리 집 안까지 가득 채웠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기온이 떨어지니 긴긴 장마에도 끄떡없던 잎들이 때맞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까치 가족도 둥지를 떠나고, 1층 할머님께서도 빌라를 떠나셨다.
떠나시던 날 할머님을 만나지 못해서, 친구와 나는 할머님 댁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줄로,
공사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실 걸로 알고 있었는데.
공사가 끝난 후에도 통 뵙지를 못해 2층 할머님께 1층 할머님의 안부를 여쭈어보니
아파서 병원으로 들어가셨고, 다시 못 오실 거라는 답변을 하셨다.
언제나 오래오래 우리 동네 터줏대감으로 계셔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까치도, 할머님도 떠나고 나니 은행나무가 휑하니 잎을 다 떨구었다.
남겨진 나의 마음이,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을 붙잡아 두고 싶어 했던 마음과 닮아있다.
남겨진 마음이 너무 헛헛해서, 그들이 어디에서든 무사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빈 곳을 채워본다.
다시 봄이 오면, 동네 할머님들이 골목에 나와 앉아계실 테니 1층 할머님의 안부를 여쭈어보아야지.
까치 가족도 건강하게 제 삶들을 다 누리다 새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