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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an 31. 2023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 아닙니다. 봇짐의 민족입니다.

배달하지 않고 재미나게 살아보기.


배달의 민족? 그게 어디서부터였을까 하면 ‘짜장면 시키신 분~’하며 섬에 배달 가던 광고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아마 내 또래들은 공감하며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섬까지 힘들게 배달 가던 그의 모습을.


그건 산 넘고 바다 건너 어디든 배달을 갈 수 있다는 것보다는 우리는 서로를 굶어 죽게 두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좋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어디든 배달이 가능한 기현상에 긍지를 가질 것이 아니라, 어디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에 긍지를 가져야 한다.


배달의 민족이 더 저렴하게, 더 빠르게를 추구하면서 혐오는 더 쉬워졌다. 혐오를 스미게 하는 일은 너무 쉬워서, 감사의 마음보다는 불만의 마음이 쉽게 든다.

‘왜 이렇게 비싸, 왜 이렇게 느려.’

더 저렴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게 하며 나의 욕구를 빠르게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안에서 타인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 된다.

덩그러니 남는 갖가지 쓰레기들은 덤이다. 이 덤들은 썩지 않는 혐오가 되어 쌓인다.


배달의 민족을 설 연휴인 지난 22일 하루에만 457만 명이 이용했다고 한다. 배달 1건당 10개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6250만 개의 배달 쓰레기가 발생한다.

최근 한 달 배달의 민족 사용자 수는 대략 2000만 명. 한 달 2억 개의 쓰레기가 쏟아지는 것이다. ⁽¹⁾


나는 이 기현상에 대항하는 마음으로 2022년 한 해와 2023년이 시작된 지금까지 단 1건의 배달음식도 시켜 먹지 않았다.

일주일에 평균 2-3회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고 가정하면, 1인당 연간 10.8kg의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는 셈이 된다고 한다. ⁽²⁾

나는 한 해 10.8kg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인 것에 만족할 것인가?


어림도 없지!

더욱더 줄여나갈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봇짐의 민족을 떠올렸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봇짐을 싸 들고 길을 나서던 사람들.

우리는 본래 봇짐의 민족이 아닌가?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이 배달문화를 널리 하게 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내세운 것들 중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치킨의 맛을 구별하는 필기, 실기 시험을 통해 치믈리에 인증서를 준다던 2017 치믈리에 만행. 닭들의 생명이 이렇게 가볍게 취급되어서야 되겠는가?

배달이 더 싸고,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될수록 공장식 축산은 더 성행하게 될 것이다. 값은 싸야 하고 더 자주, 더 많이 먹게 될 테니까.


배민이 배달문화를 널리 하기 위해 이 기괴한 행사를 기획했다지? 그럼 나는 스캔 한 번으로 몇 가지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는지 맞추어 보는 다회용믈리에 행사를 만들겠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어떨까?



1. 다음 중 카페에 들어가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스캔하는 것 중 고려할 사항이 아닌 것은?

   1) 먹고 가는 손님 테이블 위의 컵

   2) 그 컵에 빨대가 꽂혀 있는가

   3) 원두


2. 장을 볼 때, 포장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포기하는 품목은?(답 2개 이상)

   1)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된 과일

   2) 비닐에 포장된 대파

   3) 망에 담긴 양파

   4) 무포장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


3. 음식점에 포장하러 가서 거절할 수 없는 것은?

   1) 플라스틱 일회용 숟가락

   2) 친절

   3) 일회용기에 담긴 단무지

   4) 나무젓가락


4. 나만의 비법을 공유하자면? (주관식, 기발할수록 추가 점수 무한대)




자, 그럼 이제 4번 ‘나만의 비법’ 추가 점수를 노리기 위해 내 봇짐 꾸리기 노하우를 공유해 보자.


<봇짐 싸기 요령>

가벼울 것, 간소할 것, 튼튼할 것, 오래 쓸 수 있을 것.


<봇짐 속 아이템>

1. 통류 (텀블러, 떡볶이용, 케이크용, 베이커리용, 남은 반찬용, 소스용)


텀블러 종류로 좋은 건 단연코 보온병. 찬물도 오래 차갑게, 뜨거운 내용물도 오래 뜨겁게 해 주니 아주 좋다.

그런데 아무래도 무게가 좀 나가니 가볍길 원할 때는 플라스틱으로 된 걸 챙긴다.


식당에 가면 물을 종이컵에 받아먹도록 되어 있는 곳이 종종 있는데(코로나 이후로 더 많아졌다.), 이 종이컵을 방어할 때는 접히는 실리콘컵이 톡톡한 역할을 한다.

실리콘 컵을 드르륵 펼쳐서 물을 받아 마시고 다시 드르륵 접어 챙기면 끝! 아주 간편하고 무게도 가볍다.

간혹 아무 컵도 챙기지 못한 날에 종이컵을 마주하면, 밥을 국에 말아 밥그릇을 비우고 밥그릇에 물을 받아 마신다. 그러면 끝까지 종이컵을 방어할 수 있다.


떡볶이용이나 남은 반찬용 통은 냄새와 색이 배일 수 있으므로 유리가 좋은데, 무거운 짐이 많을 때에는 플라스틱 용기를 재사용하는 걸 차선책으로 한다.

대신 냄새 있는 식품 전용 통을 두고 여러 번 쓴다. 냄새가 배지 않은 통은 베이커리용으로 쓴다.


음식물을 포장하고자 하는 가게가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면 냄비도 들고 다녀봤는데 이건 사장님들에게 웃음을 드릴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하냐고, 이뻐죽겠다며 덤을 주신 적이 종종 있다.

간혹 기가 차다는 웃음을 마주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 된다.

‘포장 용기 손님, 어디까지 받아봤니’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떡볶이 통은 매번 화제다. 다 안 들어갈 것 같이 생겼는데 정말 많은 양이 들어가는 용기가 있다.

이케아에서 산 유리그릇이다. 이건 무게가 꽤 나가서 잘 들고 다니지 않는데 튼튼하기도 꽤 튼튼하다. 언젠가 시멘트 바닥에 꽈당 넘어지면서 통도 같이 꽝 떨어졌는데 약간 긁힌 자국만 남았을 뿐 깨지지 않아서 놀랐던 적이 있다. 무겁지만 추천할 만한 제품이다.

이 통은 두부를 포장해 오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두부를 포장해 오기까지 사장님과의 합을 맞추는 데에 3번의 방문이 걸렸지만.


친구의 심부름으로 비건 케이크를 포장하려 할 때, 친구가 빌려준 90년대 스테인레스 밥통을 들고 가본 적이 있다.

그 케이크가 그 가게에서 가장 큰 사이즈의 케이크라서 통에 다 들어갈지 미지수였는데, 진짜로  쏙 들어갔다며 함께 손뼉 치며 기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항상 응해주시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 때문에 전화로도 문의하고, 약속을 받고 방문하였는데도 포장해 놓으신 경우가 있다.

이 케이크 통은 내가 포장해 본 신통방통한 통 10선에 꼽힌다.



2. 수저, 다회용 빨대 (스테인레스, 실리콘)

수저는 은근 길이가 길고 커서 도시락을 싸서 나갈 때가 아니면 잘 안 들고 다닌다.

음료를 빨대로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회용 빨대는 잘 안 쓴다.


집 앞 카페에서 위아래를 섞어 마셔야 맛있는 찬 음료를 주문하면서 빨대는 안 주셔도 된다고 여느 때와 같이 말씀드렸는데, 저을 수 있게 다회용 나무 스푼을 챙겨주셨을 때.

보통은 따로 요청드려도 눈치가 보이는데.. 마음을 알아주신 게 너무 고마웠다.



3. 여분의 장바구니와 비닐봉지

꼭 접히는 것으로 챙긴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무게는 약 38그램의 네모난 장바구니 1개와 착착 접어 인형 안에 쏙 집어넣어 가방에 달고 다닐 수 있는 형태의 장바구니 2개가 있다.

그게 뭐냐고 변신로봇 보듯 재밌어하시는 분들을 보는 게 나도 재밌어서 좋아한다.


장 보러 갈 때에는 집에 모아둔 비닐봉지도 몇 개 챙긴다.

물기가 있는 고사리나, 흙이 잔뜩 있는 감자, 대파, 당근 같은 것들을 담을 때 편하다.

이 비닐봉지들은 최소 20번씩은 썼을 텐데도 너무 멀쩡해서 총개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장 보러 갈 때 내용물이 담기면 에코백이 무거워지면서 어깨가 아플 수 있다.(멍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가방에 달린 어깨 끈 보호대를 떼서 따로 챙겨간다. 이거 아주 좋다.


비닐봉지에 채소를 담지 않으려고 하는 건 고등학생 때부터 애쓰던 부분이다. 마트에 가서 채소를 살 때 봉지에 담지 않고 채소 자체에 스티커를 붙여서 계산을 하면 참으로 별나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래서 점점 진화하기로, 내 봉투를 가져가서 무게를 재고 붙이고 담아 오는 방식도 종종 사용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코너도 점점 줄고 다 포장이 되어 나와버려서 이 방법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아 웬만하면 꼭 시장에 가서 무포장 채소들을 구매한다.

매번 무포장을 고집하다 보니 단골 채소가게에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포장되어 있지 않은 채소들로 챙겨 주신다.

파프리카에 눈길을 두었다가 포장이 되어 있어 포기하고 다른 걸 고르고 있으면 포장 안 해놓은 것도 있다고 알려주시는 식으로.

가게 사장님께 마음을 다 들켰는데 그게 참 좋다.



4. 손수건은 두어 개 챙긴다.

포장 용기가 없을 때 무포장 제품을 구매할 때 담아 오기 용이하고, 손 씻고 나서 말릴 때 휴지를 아낄 수 있다. 손 말리는 휴지는 유독 두껍고 톡톡해서 이걸 아낄 때 유난히 뿌듯해진다.

금방 마르는 거즈 형이 좋다. 콧물도 닦고 눈물도 닦고, 금방 빨아 말려 쓸 수 있다.

친구와 수다 떠는 동안 다 마름.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간식을 주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때 생기는 쓰레기를 손수건에 싸서 다시 챙겨 오기에도 좋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만나는 두꺼비, 개구리들을 구조할 때에도 용이하다. 한 번은 참새가 자전거 길에 죽어 있어서 손수건으로 감싸서 뒷산에 데려간 뒤 묻어 주었다.

맨손으로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인데 손수건 한 장이 나에게 큰 용기를 주니, 대단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아이템이다.



5. 읽을 책을 가지고 다니면

엽서나, 작은 지류를 구매했을 때 비닐 포장 없이 책 사이에 끼워서 가져올 수 있다.




‘봇짐’이라고 하면 이고 지고 다니는 커다란 크기의 짐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것들을 한 가방에 다 가지고 다녀도 사실 그렇게 크게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가방이라면 모를까 웬만한 가방에는 다 들어간다. 요즘 탐이 나는 것은 작은 사이즈의 보온병인데, 구매를 자제하고 있다.

내용물이 하나 둘 담기면 무게는 좀 무거워지긴 하지만 봇짐의 민족에게 이 정도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봇짐의 민족일 때 강하다.


4번 점수를 받기 위해 적어 본 봇짐 싸기 요령은 나만의 비법이라기엔 많은 분들이 이미 하고 있는 노력일 것이다. 그래도 기본 점수라도 받아보고자 최대한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 보았다.

이 외의 여러분의 봇짐 싸기 비법이 있다면 공유해 주시면 좋겠다.

추가 점수 무한대는 어떠한 상품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줄이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그게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고.


배달이 꼭 필요한 상황, 배달 시스템이 있어서 다행인 경우를 제외하고 오직 편의를 위한 경우에는 배달 서비스의 이용을 자제했으면 좋겠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배달서비스 이용하지 않기를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봇짐의 민족일 때, 지구와 환경을 위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서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민족’이라는 단어는 배달의 민족과 상반되는 이미지를 위해 쓰였습니다. 민족주의를 경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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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상수, 순댓국 하나만 시켜도 20개…한 달 배출쓰레기 2억 개, 헤럴드경제, 2023. 01. 30.

2. 박우진, 코로나로 늘어난 일회용 배달용기... 쓰레기로 '몸살', 뉴스핌, 2022. 0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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