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Apr 05. 2023

순두부 인 헤븐

고통 없는 식탁을 위하여

3월, 친구의 생일을 맞이해 새로 생긴 채식 음식점에 갔다.


‘플랜튜드’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모든 메뉴가 비건이다.

삼성역에 있던 식당이 용산에 점포를 하나 더 냈다는 반가운 소식에 친구들과 만장일치로 용산에서 모이기로 했다.

일전에 친구들과 삼성역 플랜튜드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날도 이날도 우리는 ‘순두부 인 헬’을 주문했다.


메뉴의 이름과 생김새를 보니 ‘에그 인 헬’을 흉내 낸 것 같았다.

에그 인 헬은 토마토소스에 닭알을 넣어 조리하는 북아프리카 요리인데, 원래 이름은 아랍어인 ‘샥슈카’라고 한다.

붉은 토마토소스가 부글부글 끓는 이미지가 지옥을 연상시켜 지옥에 빠진 닭알, ‘egg in hell’이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장난스럽게 붙인 이름인지 몰라도 진짜 에그 인 헬은 요리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추구하는 본능은 어느 하나 충족되지 못한 채 좁은 공간에 갇혀 비정상적으로 많은 개수의 알을 낳는 여성 닭들이 있는 곳. 부리가 잘려나가고, 뼈가 부러지면서도 죽지 못해 살아있는 곳.

알을 낳지 못하는, 고기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남성 병아리는 세상에 나온 지 겨우 이틀 만에 산채로 죽임 당하는 곳.

극심한 고통만이 존재하는 생지옥. 에그 인 헬은 그곳에 있다. 닭알 공장에.


닭들의 사정이 이러하니 닭알 없는 에그 인 헬, ‘순두부 인 헬’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이 메뉴가 마음에 든 이유로 이 반가운 감정만을 꼽는 것은 아니고, 친구들에게 이 식당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메뉴가 무엇인가 물었을 때 제일 많은 표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이 순두부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먹었던 맛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토마토소스를 기본바탕으로 하고, 또 뭐가 들어가더라? 순두부와 올리브가 기억이 나는데 나머지 재료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조합이 좋은 채소들로 골라야지!’


양파를 새끼손톱 만하게 쫑쫑 썰어 기름에 볶는다. 양파가 노릇해지기 시작하면 비슷한 크기로 썰어놓은 새송이 버섯을 넣는다. 팽이버섯도 쭉쭉 찢어 넣으면 나중에 씹는 맛이 생겨 좋다.

채소들을 볶다가 토마토소스를 넣는다. 소스만 넣으면 많이 걸쭉해서 물을 조금 추가했다.

소스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간을 맞춘다. 비건조미료를 추가해도 좋고, 소금 조금, 후추 조금, 좋아하는 허브 조금을 넣어가며 간을 본다. 이때 올리브도 썰어 넣는다. 매콤하길 원하면 페퍼론치노를 취향껏 추가한다.

간이 얼추 맞아지면 물기를 빼놓은 순두부를 투하한다. (순두부를 넣을 때 잘못해서 소스가 튀면 매우 뜨거우니 조심히 퐁당.) 두부에 소스가 잘 베일 수 있도록 너무 큼직한 덩어리는 조금 풀어준다. 부스러지지는 않도록 주의하면서.

다시 간을 보고, 이 정도면 딱 좋다 싶을 때 불을 끄고 접시에 덜어 맛있게 먹으면.


도토리표 ‘순두부 인 헤븐’ 완성!


오늘도 순두부를 hell이 아닌 heaven에 투하하며, 고통 없는 식탁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들을 늘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쿠아로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