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물속으로 내동댕이쳐졌기에 외마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그날 나는 너무 크게 놀란 바람에 엉엉 울지도 못했던 것 같다.
놀란 마음을 내비치기도 전에 뭐라 뭐라고 큰소리로 화를 내는 선생님 앞에 다른 친구와 함께 주눅이 들어있었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10살이 채 안되었던 때 동네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웠었는데, 자유형을 배우다가 숨이 차서 수영장 레일을 붙잡았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나를 천장까지 들어 올렸다가 물로 내동댕이 쳤다.
이 사건으로 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무서워서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엄마에게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고, 수영을 가야 할 시간에 안방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수영복에 물을 묻혀 갔다 온 것처럼 몇 번 거짓말을 했다. 얼마 안 가 거짓말이 들통났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그렇게 했다는 건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이후로는 몸까지는 괜찮은데 얼굴이 물에 잠기면 너무 무섭고 답답해서 수영에 대한 공포를 갖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물, 정확히는 바다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마음은 어느 날, 어디에서, 왜? 왔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작년 속초 바다에서 서핑을 처음 해보았던 경험에서 시작된 거라 답을 내렸다.
푹푹 패이는 모래바닥을 한 발씩 내딛으며 한껏 들어 올린 발꿈치, 턱 끝까지 찰랑이는 바닷물, 간간히 밀려오는 파도를 맞기도 하고, 튜브를 껴안고 둥둥 떠있기도 했던.
중학생 때였던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정확히 셈할 수 없는 먼 옛날의 기억이 있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놀아본 적이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서핑을 하러 속초 바다에 첨벙첨벙 들어갔다면
바다랑 안 친할 것도 없는데, 왜 못 친해졌다고 스스로 느끼는가?
작년 여름의 끝자락에 재원과 나, 성준은 함께 속초 바다로 떠났다.
어느 날이 좋을지 벼르고 벼르다가 더 지나면 날이 추워져 바다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아서 드디어 정한 날이었다.
우리는 여름이 시작된 때부터 재원의 서핑담을 흥미진진하게 들으면서 ‘네가 가자고 하면 당연히 가야지!’ 흔쾌히 함께 서핑을 가기로 했던 것이다.
서핑샵에 도착해서는 옷을 갈아입고, 주의사항을 듣고, 서핑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향했다.
서핑이란 걸 처음 해보는 나에게는 10킬로그램 정도 되는 거대한 서핑보드가 당황스러웠다.
결국 보드를 들고 해변을 향하는 길에 서핑 선생님께 꾸중 같은 잔소리를 들었다.
“아이고~ 이거 초등학생도 혼자 번쩍번쩍 들고 가요!”
보드를 머리에 이고 걸어갈 때에 끙끙거리니 저런 말을 듣게 되었는데, 사실 무거워서라기보다 서핑보드의 부피와 무게가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목디스크가 있는 나로서는 모래사장을 밟을 때, 보드가 머리 위에서 휘청휘청할 때마다 목에 부담이 많이 가서 살짝 버거워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나는 결코 엄살을 부리려던 것이 아닌데.. 조금 억울한 마음이 되어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서 기초를 익히고 바다로 들어갔다.
참나, 나는 보드가 모래사장에서만 버거울 줄 알았는데 웬걸 밀려오는 파도에 보드가 난리가 났다.
보드로 파도를 넘는 방법을 배웠건만 앞으로 나아가는 게 너무 힘겨웠다.
나를 제외한 팀원 3명은 벌써 선생님이 있는 곳까지 나아갔는데 나만 발목까지 오는 해변에서 보드와 씨름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꽤 깊은 바다에서 엄청난 파도와 싸우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날의 파도는 초보가 타기에는 버거운 파도였다고 하니까..
여하튼 당혹스러움을 이겨내고 어렵사리 선생님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보드에 올라 엎드려있으면 선생님이 타기 좋은 파도가 왔을 때 보드를 밀어주었다.
그러다 “푸시!”하고 신호를 주면 엎드렸던 팔을 쑥 올리고, “업!” 구호에 두 다리로 보드 위에 짠하고 일어난다.
이전의 ‘목 아파 타령’과 ‘발목까지 오는 해변 파도와의 고초’를 생각하면, 구호에 맞추어 일어나지 못했을 거란 예상이 맞아야 하는데.
놀랍게도 한 번에 성공해 버렸다. 나를 너무 힘겹게 하던 파도가 나를 바다 위로 날게 하다니!
성공했다는 기쁨과 재미에 사로잡혀 짜릿해졌다.
물론 첫 번째의 성공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끝이 났다.
이후로는 두어 번 파도를 타본 걸 끝으로 계속해서 바다에 처박혔다. 이건 정말 다른 표현 방법이 없이 처박혔다는 표현이 딱이다.
몇 번의 반복을 끝으로 심박수가 너무 올라 금세 지쳐서 혼자 모래사장에 누워 쉬었다.
우리 팀원들은 재밌어 죽겠단 표정과 몸짓으로 계속해서 열심히 파도와 놀았다.
부러웠다.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몸이 답답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해변에 앉아 팀원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건장한 체력을 갖고 싶다, 더 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원하면 언제든 서핑을 즐길 수 있도록 체력단련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그 후로 몇 주 조금의 운동을 깔짝대다가 겨울을 맞이하면서 또 오르기 시작하는 심박수를 핑계로 그만두었다.
아.. 끈기여, 나의 끈기여…
심박수를 핑계 삼긴 했어도 점점 더 힘들어진 게 사실이라 대학병원 심장내과 검진을 받기도 했고(이 이야기는 다음번에), 결과상 문제가 없어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3월 ,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시작되니 따뜻해진 날씨에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오늘, 산책을 나간 김에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달달한 흑임자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어떻게 더 건강한 몸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저번달부터 계속 수영 타령을 슬슬 하기 시작했었는데, 물 공포증을 서서히 없애고 싶은 마음도 들고 몸에 무리가 덜 가면서도 체력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 ‘아쿠아로빅은 어떻겠나’ 가볍게 생각해 본 것이다. 아쿠아로빅은 일단 얼굴이 물에 안 들어가니까.
스스로 운동하기를 지속하지 못하기에 무어라도 끊어서 다녀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동네에 친구가 산다면 함께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혼자 등록하고야 말았다. 아쿠아로빅 수업, 4월부터 시작이다.
성준과 함께 등록해서 다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있고, 성준은 아쿠아로빅이 크게 당기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혼자 놓이는 것이 겁이 나기도 하고, 뻘쭘하고, 민망하고 그런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서른 넘은 어른 아니냐!!! 할 수 있다!
모르겠다 사실..
그래도 새로운 도전 한 번 해보는 거다. 수영장 공포를 돌파해 보겠다는 의지이다.
첫 번째는 물 무서워하는 마음하고 멀어지기.
두 번째로는 체력 늘리기.
세 번째, 루틴 만들기.
이렇게 나름의 목표도 세워보았으니 한 달만 잘해보자.
어차피 5월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 더 하고 싶어도 못 할 테니.
오라! 4월이여.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속초의 바다에서처럼 타고 놀아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