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있는 오래된 물건 중 으뜸인 것 하나를 꼽는다면 청소기다. 이 청소기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애정을 갖고 있어서는 아니고, 오래된 물건 중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내가 청소년기를 보낼 때에도 집에 이 청소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 제조일자를 확인해 보니 무려 2006년. 올해를 기준으로 하면 만들어진 지 17년 된 청소기이다.
오오.. 청소기에게 나이가 있다면 청소년기의 청소기인 것?!
열일곱, 물건의 나이로는 꽤 장수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만큼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손잡이 쪽 플라스틱이 삭아서 부러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실리콘으로 대강 붙여놓았다. ‘강, 중, 약’이라고 쓰여있던 스위치 덮개도 없어진 지 오래다. 스위치 덮개 아래에 있었을 막대기 모양의 부품이 훤하게 드러나있는데, 이걸 올렸다 내렸다 조절해서 사용한다. 어느 날 또 호스의 한 부분에 구멍이 났을 때에는 본드로 붙이니 금방 뚝딱 잘 붙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작동이 되다 안되다를 반복하길래 아주 잠깐 “드디어 때가 된 것인가? 보내주어야 할 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접촉불량을 의심해 손잡이 부분의 납땜 부분을 깨끗하게 닦아보니 또 쌩쌩 잘 돌아가기 시작하는 거다.
“이햐~ 기똥차네!”
이 정도면 청소기와 나 사이에 끈질긴 우정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또 한 번 셀프수리에 성공하고 나니 커다란 성취감이 어깨를 으쓱 휩쓸고 지나갔다.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만족감도 잠시, 청소기에게 또다시 불어닥친 시련.
먼지통과 필터를 세척해서 쓸 수 있는 식이라서 여태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데, 중간에 들어가는 스펀지 형태의 필터가 다 바스러져 부품을 구해보고, 없으면 이제는 진짜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자꾸만 귀찮아서 새 필터 구하기를 미루고 있는데 이건 아마 새 필터를 구할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이제 청소기를 버릴 때가 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이 아닐까?
아니다. 이렇게 게으르게 글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청소기가 이렇게까지 버텨왔구나, 새삼 미안할 지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검색창에 모델명을 입력해 보았다.
‘스펀지 필터 3,900원, 호스 35,900원, 배기 필터 11,800원.’
아뿔싸! 모든 부품을 아직도 판매하고 있다.
이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시 한번 우리의 우정을 이어갈 기회가 주어졌으니 필요한 부품들을 새로 구매해야겠다.
쓰고 보니 이 오래된 청소기의 존재가 나에게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고, 오래도록 잘 작동해 주는 청소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니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처음의 그 말은 취소해야겠다.
“나는 나의 청소기를 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