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작은 숲이 하나 있었다. 그 숲은 누가 관리하는 곳이 아니어서 오랜 세월 나무가 아무렇게나 우거져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깊은 밤 산책을 나가 그 앞을 지나갈 때면, 올빼미일지 부엉이일지 “부엉부엉-“하는 도시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귀한 새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성준과 나는 숲 안에 살고 있을 작은 동물들을 상상해 보며 부엉이 소리를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내 보기도 했고,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점을 찾고는 다시는 헷갈리지 않겠다며 “뾰족이는 부엉이, 둥구러미는 올빼미”를 집에 올 때까지 되뇌곤 했다. (부엉이는 귀가 뾰족하게 서 있고, 올빼미는 귀뿔깃이 없어 얼굴이 둥그렇다.)
우리가 '부엉이 숲'이라 이름 붙였던 그곳은 이제 인간을 위한 공간이 되어 새벽까지 불이 환하다. 우거졌던 나무를 밀어내고 흙길 위로 시멘트와 우레탄 같은 것들을 깔아 산책로를 만들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인공 모래밭과 놀이기구들, 운동 기구 같은 것들을 가져다 놓았다.
그 후로 부엉이 소리는 들을 수 없다.
휴식공간이든 아이들이 놀 공간이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면, 숲과 소동물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만들어 갈 순 없었을까.
빠르고 쉽게 말고, 돌보는 마음으로 천천히 정성스럽게 가꾸어갈 수는 없는 걸까?
우거진 나무를 베지 않고, 동물들을 내쫓지 않고, 그들과 한 공간에서 숲을 즐길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자연친화적 시설물들을 설치해 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면. 부엉이나 올빼미를 만나는 행운도 기대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자연스럽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린, 숲이었던 그곳에는 시멘트 바닥 위에 꾹꾹 새겨진 고양이 발자국이 있다.
공사 기간에도 자신의 영역이었을 그곳을 묵묵히 걸었거나 떠났을 동물들의 흔적을 찾아보며 공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숲이 사라진 지 벌써 두 해나 지났지만 몇몇 살아남은 커다란 참나무들이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도토리를 쏟아낸다.
빽빽했던 나무들이 대거 사라진 자리에 다시 싹을 틔우기 위함일까.
흙바닥에 심겨야 할 도토리들이 시멘트 바닥 위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다.
식물들과 동물들이 떠난 공원에서 내 마음도 갈 곳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