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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1. 2021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책 서평] 조지 오웰 디 에센셜 | 조지 오웰


디스토피아 :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


개인의 모든 것이 '텔레스크린'을 통해 감시받는 미래 사회. 작은 몸짓 하나부터,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철저히 통제받는다. 사방에는 개인을 매섭게 바라보는 통치자 '빅 브라더'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곳곳에 도청을 위한 마이크가 숨겨져 있다. 개인의 사상 또한 철저히 통제받아 '사상 죄'를 저지른 자는 사상경찰에게 붙잡혀,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마저 부인된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린다. 역사는 당의 마음대로 변하고, 피지배계급은 왜곡된 사실을 진실인 양 주입받는다. 주인공 윈스턴은 텔레스크린을 등진 채, 요동치는 자아의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쓴다. 그는 당을 상대로 해서는 안 될 사상 죄를 감행하며, 점점 전체주의에 반하는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해나간다. 이를 눈치챈 오브라이언은, 그에게 접근하게 되는데, 과연 윈스턴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사상을 발현시킬 수 있을까?


<1984>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 오세아니아와 허구의 인물 빅 브라더를 소재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를 픽션으로 그려냈다. 모두가 꿈꾸지만,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그리는 대신, 극단적인 암흑의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현대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해 현대인이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한다. 잘못된 역사를 기록에 남겨, 후세에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빅 브라더는 존재합니까?


인간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역사도, 타인의 생각도 한낱 종이 쪼가리로 만들어 손쉽게 지워버릴 수 있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같은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려 하지만, 결국은 개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권력이란 곧 인간 위에 군림한다는 것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당은 '권력'이라는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개인을 철저히 희생시켜 하나의 세포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 욕심은 선을 넘어 누군가의 내면 정신까지 집어삼키려 한다. 당은 통치를 위한 이념과 수단이 필요했고, 빅 브라더는 소수 기득권의 끝없는 욕심을 달성시키기 위한 이념적 가치의 기준이 되었다. 당의 공동의 적 '골드 스타인'은 통치를 정당화시킬 수단으로써 등장하게 된다.


누군가의 속마음까지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비단 '파시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무한한 욕심은 왕정시대부터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어떤 체제가 되었든 소수의 지배계급, 다수의 피지배계급 구조는 형성되어 왔으며, 권력층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움직인다. 더 좁게 들어가 가정, 사회, 인간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군가의 속마음까지 지배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도 인간, 그 욕심을 알면서도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인간, 이는 전체에 속한 개인의 나약함이고,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 

결말 스포 포함


평화를 누려본 적 없는 혼란이 가득한 시대에 태어나, 비 인간적인 행태를 바라보며 생애를 보낸 조지 오웰.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통도 없고 노력도 필요 없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을 목표로 하고 있던 것일까? 그는 말한다.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진짜 목표는 인류애다." 세상을 괴롭히는 모든 '악'들이 사라진 완벽한 세상, 영원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뢰한 같은 삶이 모두 없어진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미적지근한 존재만이 남는다. 그렇기에 그는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도래하길 갈망하는 듯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주인공 윈스턴은 갖은 고문으로 사상적 전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구성원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당으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그는 왜 죽임을 당한 것일까. 저자는 윈스턴을 죽임으로써 독재체제에서 그저 수단으로 전락한 한낱 인간의 한계를 말하려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답게 사는 삶을 갈망했지만, 결국 저자가 그토록 바라던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받는 세상은 도래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는, 회의감과 절망감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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