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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한댁 Oct 22. 2019

양평의 북한강

그림 같은 하루였어.

   

희야 안녕~ 잘 지내고 있었어?

너의 하루는 어땠는지 참 궁금하다. 오늘은 무얼 먹었는지, 쌀밥인지, 딱딱한 강냉이밥인지 궁금하지만 오늘도 나는 궁금한 채로 너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어.

희야~ 한국은 본격적으로 가을에 접어들었어.

북한도 사계절이 뚜렷하듯이 한국도 마찬가지야. 그 사계절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야. 어렸을 땐 눈이 오면 너와 눈사람을 만드느라 겨울이 제일 좋았었는데 이제 아이를 낳고 나니 겨울이 제일 뒤로 밀려나 있어.

너도 그렇지 않아?

아이를 낳으니 몸매도 달라지고 내 몸의 균형이 많이 깨진 것 같고 그래서인지 추위도 많이 타고 그래. 그래도 다행이라면 한국은 그렇게 춥지는 않아. 머리에 수건을 쓰고 솜을 누벼 만든 천신을 신고 (여기선 부츠라고 해.) 여러 겹의 내복을 입고 다녀도 입가에 고드름이 생길 정도로 더 추운 곳에 살았잖아. 그런데 그곳보다 따뜻한 이곳에 살아도 추운 건 추운 건 가봐. 하하하!

그곳의 가을 하면 생각나는 건 먹을 식량이 그나마 조금은 넉넉해지는 계절이라는 야.

희야~올해 그곳의 농사는 어땠어?

식량난이 더 심해진다고 하던데 이모와 너희 가족은 괜찮은 거야? 걱정의 편지만 쓸 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답답함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나는 오늘도 너에게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인터넷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늘구멍 같이 작고 실같이 가는 희망을 안고 말이야.


희야~ 너에겐 그림 같은 하루가 있어?

이 말을 물어보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무리 사촌지간이라고 하지만 너와 나는  함께 뛰어놀기도 하고 외할머니의 사랑도, 세뱃돈도 똑같이 받으며 자랐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누구보다 그곳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나니까...

그곳에선 오로지 하루 세끼 끼니 걱정만 해야 했기에 산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을의 하늘은 얼마나 높은지 둘러보거나 쳐다볼 여유도 없이 살잖아. 배고픔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다 보니 그런 게 전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잖아.

북한에선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면 한국에선 경쟁사회에 정착해야 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았던 것 같아.

북한에서 온 평범한 내게 여유가 있다는 건 왠지 게으르게 사는 것 같았뒤처지는 삶인 것 같았거든. 그래서  어떡하든 쫓아가려 했어.

이곳은 노력에 대한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보여주는 곳이니까.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노력은 개인의 부유한 삶과 연결되기도 해. 중요한 건 이곳에선 치열하던, 빠르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은 자신의 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야.

그곳은 자유롭게 꿈꾸는 것마저도 불가능하잖아.

개인이 꿈꾸며 노력하여 이룬 것이라 할지라도 김부자들을 위한 것일 뿐이니까. 경쟁 사회에서 사는 나는 렇게 앞만 보며 달려가다 보니 가끔은 나 자신을 잃어버릴 때도 어.

그럴 땐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나에게 기회가 생겼어. 멋진 그림 같은 하루였지.

오늘 내가 다녀온 곳은 경기도 양평이라는 곳이었어. 양평은 서울과 떨어진 시골이지만 북한강을 끼고 있어서 가볼 만한 곳이 많더라고. 저번에는 북한산 아래 위치한 한옥마을이었잖아? 이번엔 북한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카페였어.

카페의 분위기가 참 이쁘지?

윗동네의 평양에는 카페가 있던데 네가 사는 그곳에는 카페가 없겠지?

어쩌다 보니 의도한 것도 아닌데 너에게 북한산과 북한강에 대해 연이어 들려주게 되었네.

양평의 북한강

 북한강은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아랫동네에 있는 강원도 철원 휴전선에서(38분 계선이 있는 곳)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가하천 구간이 시작되는 거래. 신기하지? 

이렇듯 강줄기도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분단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아픈 현실인 거지. 

이런 아픔이 있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렇게 분단된 채로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기록하는 것 밖엔 없는 것 같아.

그림 같은 풍경이지?

희야~ 이건 그림이 아닌 진짜 꽃밭이야. 우리가 어렸을 때 제일 많이 봤던 꽃은 진달래와 분꽃 (저녁에만 피는 꽃)이었는데 말이야. 이곳은 계절마다 축제도 많이 해. 이날은 목요일 평일로 어르신들과 연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많았어. 주말이면 아마 가족들과 가는 사람들이 많아 더 북적북적할 거야.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 한국사람들이야.

 아랫동네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과 아름다운 날이 많아. 가끔은 바쁜 일상에 쫓겨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을 지나쳐버릴 때도 있긴 해.

윗동네도 아름다운 곳이 많다고 하는데 내 기억 속에 아름다운 곳은 내가 살았었던 봉천 강 밖에 없네.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그곳에 아름다운 곳이 있다 한들 우리에겐 그냥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지. 

그곳에서 살았었던 사람인 나도 가보지 못한 윗동네의 아름다운 곳! 금강산과 칠보산이 궁금해.

윗동네에선 자유로운 통행이 불가능하여 못 가본 곳이 많았는데 아랫동네에선 나의 영혼이 자유롭지 못해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네. 하하하!

이젠 좀 다녀야겠어. 대한민국 방방곡곡 말이야.

희야~그림 같은 이 하루는 바쁘게 사는 나의 일상에 꿀 같은 달콤한 여유를 주었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었어. 또한"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고 행복을 발견하는 하루였어. 

언제면 너와 함께 이런 행복한 하루를 보게 될까? 꿈같은 이야기는 이루어질까?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희야 벌써  새벽 2시네! 

사실 고요한 새벽이 글쓰기에 참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썼네. 

이제 졸려서 눈이 감겨... 희야~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너는 깊은 잠에 빠져있겠지?

우리 꿈속에서라도 만나자!

 ! 희야~ 내가 쓰는 이 편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이 함께 하고 있어.

무슨 말이냐면 글은 내가 쓰지만 이 편지를 네가 꼭 읽었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을 아랫동네에 사는 분들이

편지에  함께 담아주시거든. 비록 이 편지를 지금 당장 너에게 전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은 

이미 그곳에 전달되고 있다고 믿어. 이곳의 많은 따뜻한 마음이 어두운 그곳에 사는 너에게 한줄기의 빛과 희망이 되어 언젠가는 그림 같은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어!


                                       한국에 시집 온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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