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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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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한댁 Jun 30. 2024

1장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의 팔베개를 살며시 걷어 내고 돌아누우며 온몸을 움츠렸다.  

늘 그랬듯 두려움과 불안에 내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침실의 불빛은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자동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방 안은 무겁고 고요했다.  

머릿속은 끝없는 생각들로 소용돌이쳤다. 

'이 밤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할 거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몇 주 전부터 나는 남편에게 진실을 고백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은 끝없는 불안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니야, 말했으면 분명 나랑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지금 말해도 될까? 남편이 나를 이해해 줄까? 아니면 나를 떠날까?' 

눈을 감고 누웠지만, 지난 몇 년간의 기억들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2005년 12월. 어느 날 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요?" 

"응 자려고... 이제 퇴근했니?" 

"네! 엄마 나 한국 남자 사귀고 있어요."

"그래? 네가 다니는 회사 사람이야?" 

"아니..." 

"그럼?" 

"한국군인이에요." 

"군인? 군인이면 한국에 있니?" 

엄마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못 할 것 같아서 눈 찔끔 감고 냅다 말해버렸다. 

"네 엄마! 이 남자가 결혼하자고 하는데 나 결혼하고 싶어요." 

나의 결혼발표는 엄마에게 쓰나미였다. 

무모하리만큼 추진력이 강한 딸 덕분에 엄마는 간담이 서늘한 일을 빈번하게 겪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하나야, 또 어째 그러니?" 

"엄마 나 이 사람이랑 잘 살 수 있어요." 

"너 미쳤니? 아직 신분증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하니? 그것도 한국남자랑 결혼하겠다고?" 

"엄마 이 남자랑 꼭 결혼하고 싶어요. 신분증은 지금 만들고 있잖아요." 

"정신 차려라! 그건 가짜잖아! 그거로 수속하다 걸리면 북송이다!' 

"엄마 위험한 건 알아요. 근데 나 이 남자랑 꼭 살고 싶어요." 

"제발! 이제 겨우 말 배워서 안전하게 살고 있는데 위험한 행동 하지 마라!" 

"그리고 한국 남자는 너 북한 사람인 거 아니?" 

엄마의 기습적인 질문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차차 말할 거예요..." 

"너 진짜 미쳤구나! 엄마 죽는 꼴 보고 싶니? 그리고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엄마 우리 사귄 지 2년 돼 가고 있어요..." 

엄마는 결국 터져 버렸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끊자!"

"엄마! 엄마!" 

전화기 너머에서 새아빠의 (중국 조선족 ) 목소리가 들린다. 

"야~ 그 와그래??" 

띠띠띠…

전화기가 끊어지는 순간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흐느꼈다. 

엄마의 불안과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 정말 미친 걸까? 이제라도 헤어지자고 말할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주적이라 배운 한국군인에게 북한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을까?

나에겐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그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엄마... 그런데 나 이 남자랑 꼭 살고 싶어요..'

그때 엄마의 말을 들었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목숨 걸고 탈북할 때보다 더 힘든 순간이 바로 지금!

남편에게 진실을 고백하기로 결심한 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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