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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철 Jan 13. 2019

<브라질 팔도유람>  
07.3 북부 지방

BR - 364

BR - 364


브라질은 고속도로의 방향에 따라 5가지로 나누는데 방사형 고속도로는 앞에 0으로 시작을 하고, 종단 고속도로는 1로, 횡단 고속도로는 2로, 사선형 고속도로는 3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 외에 도시를 연결해주는 고속도로는 4자가 들어간다.

아마존 횡단도로는 BR-230은 브라질의 동쪽 끝이 주앙페소아에서 시작해서 북동부 지역과 북부 아마존 지역을 횡단해서 벤자밍 콩스탄치까지 가로로 연결된 횡단도로라서 2자로 시작이 된다. 이 도로는 파라이바주, 세아라주, 피아우이 주, 마라냥 주, 토카친스 주, 파라주, 아마조나스 주, 이렇게 7개 주를 관통한다. 그 길이는 4200km가 넘는다. 참고로 우리의 척추 경부고속도로의 길이는 412km이다.

3자로 시작하는 BR-364 고속도로는 브라질은 상파울루에서 출발하여 북서 방향으로 아크리 주의 끝까지 가는 사선 도로이다. 이 도로는 브라질의 서쪽 끝까지 도달해 있다. 

이 도로는 상파울루 주를 출발해서 미나스 제라이스, 고이아스, 마투그로수, 혼도니아, 그리고 아크리 주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그 길이는 4300km가 넘는다.

이 도로는 마라샤우 혼동 도로라고도 부르는데 바로 브라질의 탐험가 깐지두 혼동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브라질의 위대한 탐험가였다. 그리고 그는 인도주의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노예제도를 맞서 싸웠고 인디오 부족을 위한 운동을 헌신했다. 그는 실증 주의자였다. 

파라과이 전쟁을 이루어지는 동안 브라질은 내륙과의 통신수단에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아마존 지역과 브라질 해안의 도시들까지 커뮤니케이션하려면 몇 달이 걸리기도 하였다. 고무 붐이 일어나고서는 이런 어려움은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해결책은 인간이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땅까지 전신주를 박아서 전신선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칸지두 혼동은 야생의 숲과 사바나, 아마존의 처녀림을 탐험해서 전신주를 박는 임무를 진두지휘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땅의 지도를 그려가면서 말라리아와 온갖 해충과 질병, 그리고 보급품의 부족과 싸워가면서 브라질의 구석구석에 전신을 세웠다. 

그는 뛰어난 웅변가이기도 하였는데 간혹 그가 강연할 때면 그의 모험담과 애국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각계각층의 대규모 극장을 꽉 채웠다. 그는 신념이 넘치는 인도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유명한 명언 ‘차라리 죽을지언정 죽이지 말라!’를 남겼다. 또한, 그는 고무 채취인 세링게이루들이 고무를 캐기 위해서 인디오를 무자비하게 죽인 인종학살을 고발했다.

그간 인디오는 착취되고 경멸적인 대상으로 여겼었는데 칸지두 혼동 같은 사람으로 인해서 친 인디오 운동이 성장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정부를 설득해서 개발과 이해관계가 없는 인디오 보호 부서를 만들게 되었다.

그는 이 부서를 만들 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들었다. 

첫째 종교적 개종이나 다른 개종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부서의 주요 목적은 인디오 땅을 보호하고 과거에 빼앗긴 땅을 반환하는 것이다. 

셋째는 비록 인디오들이 점진적으로 정착 농업 노동자로 전환하도록 장려를 하더라도 인디오 부족 사회와 전통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SPI 즉 인디오 보호 부서가 만들어졌고 이 부서의 모토는 깐지두 홍동의 명언 ‘차라리 죽을지언정 죽이지 마라'였다. 그리고 이 후속 기구가 푸나이, Funai(국립 인디오 재단)이다. BR-364가 혼동의 도로라고 불렸던 이유는 바로 과거 깐지두 혼동이 전신주를 세웠던 많은 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특히나 쿠이아바부터 북쪽으로 포르투 벨류까지 오지나 다름없는 아마존 지역에 1100㎞가 넘는 땅을 탐험하며 맨손으로 전신주를 세웠던 경로를 따라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곳을 지나가는 혼도니아 주의 이름은 그의 이름 혼동을 따라서 명명되었다.


이 BR-364가 끝이 나는 지역은 아크리(Acre)란 지역이다. 사실 아크리는 브라질 영토가 아니라 볼리비아 영토였다. 19세기 후반 고무 붐으로 많은 세링게이루들은 고무를 찾아서 볼리비아 땅인 아크리 지역까지 진출했는데 이것으로 볼리비아 외교적 분쟁이 되곤 했었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히우 브랑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볼리비아와 협상을 했고 볼리비아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철도건설을 약속하는 페트로폴리스 조약을 끌어냈다. 그래서 아크리 주는 브라질 땅이 되었고 주도는 당시의 이 문제를 해결했던 그의 이름을 따서 ‘히우 브랑쿠’로 명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크리 주는 브라질 땅이 되었다.


이 아크리 주의 사루피란 시 외곽에서 시코 멘데스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도 그때 이곳으로 온 고무 채집자, 세링게이루였다. 그리고 그도 자연스럽게 세링게이루가 되었다. 그는 학교도 전혀 다니지 못하고 9살 때부터 고무 채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BR-364가 포르투 벨류까지 길이 나면서 혼도니아와 아크리는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이런 개발은 단순하다. 숲을 밀어버리고 벌목을 하고 그곳에 소등을 키우는 방목지를 만들거나 농지를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무도 팔고 농지나 방목지도 생기기 때문이다. 개발업자들은 일거양득이라고 좋아했을 것이다.

이런 개발을 위해서도 BR-364는 아주 필요했다. 이 도로를 통해서 쉬지 않고 나무가 베어서 옮겨져 갔다. BR-364 고속도로는 아크리 주와 혼도니아 중에 사람을 불러들였고 대규모의 산림파괴와 환경파괴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나무에서 고무를 채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무나무는 점점 더 없어져 갔다. 나무의 보존은 그들에게는 생존과 같은 일이었다.

결국, 세링게이루들은 이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는데 그들은 인간장벽을 만들어서 도로를 점거해서 불도저나 전기톱 벌목꾼들이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이는 무법천지의 아마존 지역에서는 너무 위험한 벼랑 끝 전술이었다. 세링게이루들이 소속된 아크리 농촌 노동자조합의 지도자들은 암살당했다. 많은 유혈 사태 속에 이 투쟁은 실패하였다.

이어 등장한 사람 좋게 생긴 시코 멘데스는 학교는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논리 정연하고 정력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연설은 감동적이었고 그의 투쟁과 논리는 많은 사람의 설득력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NGO 기관이 그의 고무 채취인들의 운동에 가담하면서 세계적으로 아마존 개발 문제는 쟁점이 되었다. 그는 브라질 민중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룰라와 함께 브라질 노동당을 만드는 데 앞장섰으면 노동당 소속으로 아크리주 의회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그는 계속된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아마존에서 야만적인 예고 살인과 살해 위협은 계속되었었다.

결국, 그는 1988년 그의 집에서 암살당했다. 수년간의 법정 끝에 범인은 투기 벌목업자이자 축산업자 아우베스와 그의 아들, 그의 직원을 밝혀졌다.

그는 그렇게 순교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에 그의 생애와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에 관한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했으며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들과 책들에서 그와 아마존 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개발과 보존을 공존하는 개념으로 ‘추출 보호’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즉 환경친화적인 채취 작업이 허용되는 구역을 주장했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 후의 그의 고향 사프리강은 ‘추출 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었고 그 이름 역시 시코 멘데스라고 붙여졌다.

그의 이름 딴 재단 역시 만들어졌다. 또 세계의 환경과 그의 정신을 기리는 상인 시코 멘데스 상도 제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4대강 반대를 주도했던 최열 전 환경재단 대표가 2013년에 시코 멘데스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고무나무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인간성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코 멘데스는 우리에게 아주 단순한 대답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환경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고 미래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생존의 문제이다.

도대체 개발이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하게 돈과 발전이란 이름이면 모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고무를 채집하는 것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싸이 열매는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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