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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r 17. 2020

1:00 am 경매 시작

얼마라는 건지 봐도 모르겠고, 들어도 모르겠다


“알-루룰루루 아-루루루룰루-”
몽골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 떼를 부르는 듯한 카리스마 있는 소리에 순간 압도된다. 시장 어딘가에서 들리는 큰 소리를 따라가니 소리의 진원지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경매사들이 상인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지금 막 도착한 신선한 미나리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나 외의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를 이해했는지, 전자단말기를 목에 건 사람들은 미나리와 전광판을 번갈아 보며 거래를 한다. 영화에서 봤던 수신호나 돈다발은 보이지 않지만 전광판의 숫자와 글자가 쉴 새 없이 바뀐다. 얼마라는 건지 봐도 모르겠고, 들어도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경매사의 ‘소리’는 끝난다. 그럼 또 다른 곳에서 경매사가 소리를 시작한다. 우르르 몰려가니 이번에는 고추다. 허리 높이까지 쌓인 상자 제일 위에는 만져 볼 수 있도록 샘플 한 박스가 따져있다. 세상에 참 많은 고추가 있다며 넋 놓고 보고 있는 순간 “이거 청양 아이네!” “아니면 뭔데 이거!!” 싸움이 난 걸까 긴장감이 맴돈다. 아니면 그만이라는 듯 순간 경매는 해산된다.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고 모두 정정당당하게 품평 중이다. 얼이 쏙 빠진다. 어느 언어학자가 그랬던가. 대화는 단어와 단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행위 자체라고. 더 이상 경매 소리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귀에 익어갈 때쯤 멀리서 바라보니 그것은 마치 이 고원에서 저 고원으로 건재함을 답하는 돌림노래처럼 들렸다. 경매 하나가 끝나면 저 너머에서 또 하나가 시작하고 이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경매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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