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지 어언 보름째, 요즘은 방 꾸미기에 꽂혀있다. 들어올 가구는 모두 들어왔고 정리할 짐도 모두 정리한 방은 전에 없이 쾌적하다. 나는 매일 밤 수많은 인테리어 사진을 둘러보고 소품들을 찾아보면서 이 방을 내 취향에 맞게 꾸밀 방법을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은은한 주황빛 조명을 하나 구입했고, 가구와 침구 색에 어울리는 우드 선반도 하나 장만했다. 그 위에 좋아하는 책을 진열해두고, 오래전 친구와 찍은 사진도 함께 올려두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있어 한참을 고민했다.
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
최근 거실에 자리를 잡은 식물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못지않게 거실 인테리어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오빠는 근래 들어 초록 식물들을 하나둘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게 집 분위기에 썩 잘 어울렸다. 그에 반해 따뜻한 계열의 색으로만 채워진 내 방은 다소 단조로웠고. 나는 허전한 선반 위를 스캔한 뒤, 재빨리 방에 놓을 꽃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생화는 아니고, 조화로.
조화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생화를 오래 잘 관리할 자신이 없었고, 시들 때마다 매번 갈아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되도록 마음에 드는 조화를 골라서 오래오래 두고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생각을 한 저녁 즈음에 선반 위에는 새로운 꽃이 진열되었다.
"오빠, 오빠! 이거 봐. 예쁘지?"
거실에 있던 오빠를 호들갑스럽게 불러 짠, 하고 꽃을 보여주었다. 쓱 가까이서 꽃을 본 오빠는 '너무 조화인 거 티 난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얄미운 대꾸에 주먹으로 응징해줄까 하다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참았다. 사실 부르면서도 트집 잡힐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미지가 적기도 했다. 오빠의 말은 산뜻하게 무시해주고 나는 뿌듯한 얼굴로 화병에 담긴 꽃을 바라보았다. 예쁘기만 하고만.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참 마법 같은 일이니까.
혹자는 말할 것이다. 꽃이라면 으레 피어나고 시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색과 모양, 그리고 향기를 가져야만 한다고. 덧붙여 꽃은, 그 유한한 생명력 때문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때문에 조화는 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말을 나는 이해한다. 나 또한 생화를 선물 받으면 자연스럽게 그 향기를 맡기 위해 코를 박고,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보며 설렘을 느끼고, 만개한 광경을 보았을 때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켜기 때문이다. 지금 보고 있는 이 꽃이 영원하지는 않음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걸, 나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꽃내음도 없고, 영원히 시들지도 않는 조화에 '가짜 꽃'이라는 이름이 붙어도 그리 억울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국어사전에 '조화'를 검색해보면 유의어로 '가화(假花)'라는 단어가 뜬다. 한자 풀이 그대로 '거짓된 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화'라는 말 대신 '조화'라는 말을 흔하게 쓰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조화는 지을 조(造), 꽃 화(花) 한자를 쓴다. 사전적 풀이로는 '종이, 천, 비닐 따위를 재료로 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꽃'을 뜻한다. 결국 사람 손을 타고 만들어낸 꽃, 이 바로 '조화'인 것이다. 가화라는 이름 대신 이 조화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나는 감히, 조화 또한 하나의 꽃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짜라는 말 대신 만들어진 꽃이라고 말 됨에는 분명 그것의 부족한 속성마저 이해하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깃들어있다. 향기가 없어도, 한평생 그 모습만을 유지하더라도 너도 꽃이야,라고 인정해주는 그 따뜻한 마음이.
생화가 흙에서 피어난다면, 조화는 사람 손에서 피어난다. 언젠가는 활짝 만개했다가 또 언젠가는 시들어갈 나의 존재가 생화라면, 내 손을 타고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은 조화일 것이다. 내가 남기는 말, 쓰는 글, 순간을 담은 사진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지금 내가 글을 적어 내려 가는 과정들 또한 이 조화를 만드는 일 중 하나인 것이다. 우리의 삶 속 꽃이 만개한 순간을 포착해 그와 같은 모양을 최대한 비슷하게 잡아가는 것. 한평생 보아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색을 골라 염색하는 것. 당신께 보이도록 예쁜 화병에 담아 진열하는 것. 허전한 우리의 공간을 영원히 채우는 것.
장미를 건넨 손에는 장미향이 남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향기 없는 조화를 건넨 손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그 손에는, 꽃을 만들어낸 기억이 남아있다. 정성스럽게 그 잎과 줄기를 다듬어간 시간이, 직접 아름다운 색을 입힌 그 순간이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며 조화를 만드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보다 더 실감 나게, 더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영영 시들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피어있는 그런 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