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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Apr 15. 2021

정민이에게

같은 이름자를 쓰는 너에게




    "너도 그 한자 써? 와, 나랑 같은 한자 쓰는 사람 처음 봐!"


    언젠가 뒤풀이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던 날에, 문득 '네 이름 끝 글자는 무슨 한자야?'라고 물어봤지. 네가 그 답을 해줬을 때 나는 무척 신기해했어. 이름에 '민'이 들어간 사람은 많았지만, 그중에 나와 같은 '온화할 민(旼)'을 쓰는 사람은 그때까지 못 봤거든. 너도 마찬가지였는지 함께 신기하다고 웃었던 기억이 나. 나는 그것도 신기했어. 왠지 너는 그 한자를 쓸 것만 같았던, 나의 예감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이.


    이름의 끝 글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유대감을 느낀다는 건 꽤 낭만적인 일인 것 같아. 그에 동감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너무나 특별한 일이고. 그래서 나는, 너라는 인연이 내게 있어 참 낭만적이고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관계의 견고함은 함께한 시간으로부터 온다고 여겼던 생각이 바뀌었지.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너를 알고 지낸 시간은 짧지만, 마음을 나누는 건 그 세월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었으니까.


    인간 핫팩. 아주 추웠던 겨울날에 너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준 기억이 나. 그날은 날도 추웠고, 어쩐지 마음도 시린 날이었는데 너와 함께 카톡을 나누면서 마음속에 훈기가 돌았거든. 여기저기 추운 구석마다 네 말조각들을 붙여놓으면 금방 따뜻하게 달아올랐어. 인간 핫팩 아니냐는 내 말에, 너는 웃으면서 오늘부터 내 이름을 그걸로 하겠다고 맞장구를 쳐주었지. 바꿀 필요가 뭐가 있겠어. 넌 이미 이름 속에 그 따뜻함이 배어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이 될 줄 알고 너희 부모님께서는 네 이름에 그 한자를 쓰신 걸까? 아니면 이름 따라 네가 그런 사람으로 자라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토록 따뜻한 너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어.


    너는 무척 세심한 사람이어서, 종종 들키고 싶어 하는 내 마음도 곧잘 알아채 주었지. 또 가끔은 나조차도 모르고 지나친 내 마음을 살펴봐주었어. 얼마 전에 네가 한 편의 글을 써주었잖아.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눈이 맵던지 몰라. 너는 내게 넌지시 물었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말을 건네는 너는, 충분히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따스한 말을 해주는 동안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진 않았을지, 누군가를 안아주면서도, 그 품에 안기고 싶어 했던 건 아닐지를. 문장 사이사이에 깃든 다정한 염려는 그날 나를 울리기에 충분했어. 너무 고마웠거든. 물아래 가라앉아 있는 돌멩이조차도 눈 여겨봐주는 그 마음이. 


    습관처럼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서 고마워. 어떤 모습이든지 그게 나인 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어서, 그러니 어떤 모습이든지 나와 함께 해준다고 해줘서. 나에 대한 믿음이 너에게는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주어서 고마워.


    그러니 나는 더 욕심을 내고 싶어. 어떤 모습이든지 날 아껴줄 네가 있다면 더욱더 좋은 사람이고 싶어. 물아래 어떤 돌멩이를 주워 들든 손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싶어.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게끔 잘게 쪼개서 들려주고 싶어. 혹여나 걱정할까 싶어 덧붙이지만, 그건 내게 힘들거나 외로운 일이 아니야. 내 안의 돌멩이를 다듬거나 쪼개는 일은, 그러니까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너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가 충분히 해주고 있으니까. 어떤 노력 없이 그냥 머물러주는 것만으로도 그걸 가능케 해주니까.


    어느 계절이고 머뭇거리지 않고 두 발을 담가준다는 너에게 나는, 가장 맑고 푸르른 바다가 되고 싶어. 기쁜 날엔 잔잔한 물결 위에서 헤엄칠 수 있도록, 슬픈 날에는 파도소리에 울음을 감출 수 있도록.


    평생 마르지 않을 마음으로 널 반길 수 있는, 그런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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