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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Mar 26. 2021

효지에게

생일을 맞이한 너에게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어요?"


    어제 면접에서 이 질문을 받고 나는 잠깐 고민을 했어.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일까, 하고. 대입을 앞둔 고3 때도 조금 힘들었던 것 같고, 한여름에 단편영화 만들겠다고 몸 축내던 때도 힘들었던 것 같고, 과외를 여섯 탕씩 뛰던 때나, 졸업을 앞두며 마음이 불안했던 때도 힘들었던 것 같아. 근데 그게 또 '가장 힘들었냐'라고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는 거야. 그래도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마, 서울에 처음 올라온 중학생 때.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나는 서울에 막 올라왔을 때, 늘 마음이 붕 떠있었어. 설렘보다는 불안감으로. 전교생이 50명도 안 되는 섬 분교 출신인 나한테 몇 백명의 동급생이 있는 서울의 중학교는 너무 낯설었거든. 근처 초등학교를 나온 반 친구들끼리는 서로 아는 체를 하는데, 거기서 나만 덩그러니 혼자 있었어. 꼭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처럼 외롭고, 또 조금 슬펐지. 괜히 서울에 오겠다고 조른 걸까 후회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밤마다 몰래 훌쩍이곤 했어. 친구 한 명 없는 학교에 가기 싫었거든.


    그렇게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무인도에 기꺼이 배를 끌고 와주는 사람이 있었지. 그게 바로 효지, 너였어.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꼭 나와 닮은 사람.


    나는 지금도, 그때 널 만난 게 내 인생을 바꾼 행운이었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널 만난 후에야 학교 다니는 일이, 서울에서의 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거든. 하교 후에 너희 집에 가서 함께 수행평가를 하는 일, 학교 행사를 같이 준비하는 일,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거나 주말에 번화가를 구경하는 일. 무엇 하나 빠짐없이 즐거웠어.


    그때 우리 사이 가장 큰 행사는 단연 생일이었는데, 기억나? 서로 어떻게 생일을 축하해줄지 며칠을 꼬박 고민하곤 했잖아. 나는 아직도 내 생일날, 사물함 가득히 채워져 있던 선물과 간식, 메모가 가득 적힌 포스트잇을 기억해. 방과 후 복도에서 케이크를 들고 몰래 나타난 너, 상체만 한 종이에 깨알 같은 편지를 써온 너를 기억해. 놀랍고 고마운 마음에 매번 눈물을 쏟던 날 웃으면서 달래주던 너를,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기억해.


    효지야. 나는 언제나 내게 손 내밀어준 네가, 곁에서 진심으로 응원해주었던 네가, 내 생일을 누구보다도 축하해주었던 네가 고마웠어. 그리고 또 언제나 보답하고 싶었어. 우리가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고, 또 다른 대학교를 가며 만나는 날이 줄어들었어도 그 마음만은 항상 유효했어.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우리가 서로의 반짝이던 날들을 공유한, 소중한 단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매년 3월 26일에는 습관처럼 네 생각이 먼저 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겠지. 내게 있어 네가 가지는 의미가 너무 커서, 우리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이 꿈에 그리도록 빛나서. 서로의 생일에는 가장 큰 축하를 전해주고 싶었던, 어린 날의 마음이 귀해서.


    올해도 찾아온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효지야. 다른 사람들은 꽃이 피는 걸 보면서, 날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면서 봄이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네 생일을 맞이하면서 진짜 봄이 찾아왔음을 느껴. 내게 있어 봄을 말하는 것 중 가장 봄다운 건 바로 너니까 말이야.  왜냐하면 너의 그 따사로운 마음들, 다정한 생각과 말들,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삶에 꽃을 피우거든. 십 년 전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그리고 너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봄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살아가며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날들을 보내도, 언젠가 내게 찾아올 봄이 있음을 믿게 해주어서 고마워. 그렇게 매일을 견딜 힘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네가 내게 하나의 계절을 선물한 것처럼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선물할 수 있다면, 나는 너에게 햇살을 선물할게. 너의 푸르름이 생기 있게 돋아날 수 있도록, 너의 보이지 않는 그늘도 놓치지 않고 따스하게 비춰줄 수 있도록, 그렇게 언제나 환하게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매일 네 곁에 머무는 햇살을.


    오늘 하루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쁘고 고운 축하의 말도 들으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꼭 오늘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매일매일이 너의 특별함으로 가득 차길 바랄게. 물론 평상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라도 괜찮아. 주인공이 특별하다면 모든 이야기는 빛이 나는 법이니까!


    다시 한번 생일을 축하해, 효지야. 귀하고 소중한 너를 만난 내게도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은 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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