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Jul 04. 2021

사계절용 양털이불

이 되고 싶은 사람




    "쌤, 쌤 이불 닮은 것 같아요."


    뭐? 과외학생이 문득 던진 말 한마디에 나는 설핏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소리를 하냐는 식으로 대꾸했다.  사람 누구를 닮았다거나, 동물 무엇을 닮아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살아오며 몇 번 들어왔지만, 사물을 닮았다는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본 터였다. 그것도 이불을 닮았다니. 내 머리 위로 잔뜩 떠오른 물음표를 발견한 모양인지 아이는 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대꾸했다.


    그냥, 쌤 보면 이불 생각나요. 그 왜 그냥 이불 말고요. 양털이불 있잖아요.


    은근히 진지한 아이의 대답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 뭔 소리야. 어깨를 툭 치면서 이제는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거냐고 깔깔거렸다. 아, 진짜 닮았는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났을 때 문득 그 일화가 생각나길래 친구들에게 아이가 해줬던 말을 전해줬다. 나보고 이불 닮았다던데? 친구들은 그날의 나와 마찬가지로 머리 위로 물음표를 그렸다가, 잠깐의 정적 후에는 한참을 킥킥거렸다. 아, 근데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는 알 것 같아. 한 친구가 겨우 그런 대답을 하기에 나는 귀를 쫑긋거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의민데?


    "그냥, 보들보들하고 따숩다, 뭐 그런 의미 아냐? 생긴 게 닮았다기보다 느낌이 닮았어."


    오, 그럼 좋은 뜻으로 한 말이네. 나는 또 나 생긴 게 그렇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내 말에 우리 테이블에는 한바탕 더 웃음보가 터졌다.



*



    "너 요즘 좀 변했어~"


    나는 근래 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종종 듣기 시작했다. '변했다'라는 그들의 주장이 거세지는 때는 대체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툭 어떤 대답을 던졌을 때다. 네가 이런 말을 한다고? 친구들은 잠깐 얼어있다가, '우리 OO이 변했네, 변했어~' 하면서 웃어넘기곤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나의 변화는 간단했다. 좋게 말하면 전보다 더 이성적으로, 나쁘게 말하자면 사람이 좀 차가워졌다는 그런 의미의 변화. 특히 가깝게 지내고 나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챘다. 예전과 달리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게 좀 냉정해진 게 느껴진다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더 그런 것 같다고 한 친구가 이야기했을 때,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진짜 전과 달라졌는지, 달라졌다면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왜 달라졌는지에 대해서. 처음에는 바뀐 생활 패턴으로 인해 몸이 피곤해서 평소보다 대답이 무성의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주변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마지막에는 그냥 내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병아리는커녕 부화도 하지 못한 알 정도나 될까. 사회에서 내 존재가 가지는 위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한 달이었다. 사회라는 곳에 슬며시 발이라는 걸 들이밀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훔쳐보기 시작한 게. 너무나도 짧고도 짧은 시간임에 분명했지만 나는 그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차츰차츰 나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 방법 중 하나가 마음 쓰는 일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내게는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 미워하고 원망하는 일, 공감하거나 부정하는 일. 그 모든 일 자체가 에너지 소비의 일종이었다. 말하자면, 이전까지는 내 체력의 꽤나 많은 부분을 그 마음 운동에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사 생활이라는 게 신체적으로도 꽤나 고된 일이다 보니, 나는 이러한 마음 운동이라도 최소화해야겠다는 어떠한 다짐 같은 걸 의식적으로 해왔다. 신경 쓰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거리를 두자. 좋은 일에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속상한 일에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평온한 마음만 가지고 가자.


    반복적인 주술에는 힘이 있어서, 한 달 만에 나는 꽤 무심한 사람이 된 듯했다. 일을 하다 보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할 때야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무덤덤함을 가장할 수 있었다. 주변의 말에 예민하게 신경을 쓰는 귀도 비교적 꽤 많이 닫아두었고, 주위 사람들 감정 하나하나에 호들갑을 떨던 마음도 전보다는 무게감을 가진 듯했다.


    나는 이런 변화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에도 다치지 않고 상처 받지 않고, 휩쓸리지 않는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변했다'라는 말에 이러한 변론을 펼쳤더니 친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그게 네 마음을 위한 거면 그렇게 변하는 게 맞지.


    "근데 그래도…, 나는 네가 여기서 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예전의 도 정말 좋아하거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가만히 친구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나의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너무나 아쉬워하던 친구의 표정과 말투, 그 속에 깃든 마음을, 모처럼 하나하나 엮어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결국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모든 일에 무심하고 무덤덤한 사람이 되기는커녕,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 되기는커녕, 여전히 친구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불쑥 차오르고 마는,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



    주위에 따뜻함만을 가득 가져다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라지만 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가져다주는 사사로운 온기를 믿어서, 그 온기를 항상 품에 안고 사는 사람이고 싶다고. 한겨울에 꼭 필요한 양털이불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살았는데.


    문득 여름이라는 계절을 마주했을 때, 그 필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양털이불은 그냥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거고, 너무 덥고 부담스러울 거야. 누구도 그런 건 필요로 하지 않을 거야.


    그럼 나는 양털이불로 살고 싶었던 바람들을 포기하고 만다. 조금은 꺼슬꺼슬하고, 얇은 이불 그 정도로 사는 게 서로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그러나 친구의 말 한마디에 나는 내가 놓쳤던 것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한여름에도 양털이불이, 양털이불과 같은 마음이, 양털이불을 닮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걸. 그렇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는, 영영 변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온전히 지켜내고 싶은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때와 사람에 따라 어떤 때는 홑이불, 또 어떤 때는 솜이불, 양털이불 같은 변화무쌍한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자유자재로 바꿔나갈 능력은 없다. 그래서 한평생 어떤 이불로 살아가야 할지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그래도 양털이불을 고르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위를 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기보다, 추위를 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고 싶어서. 온몸에 두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가장 포근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사계절 내내 마음에 두를 수 있는 양털이불이고 싶다. 그 보드라움 속에 누군가 얼굴을 파묻고 긴 밤을 보낼 수 있게, 가장 다정하고 편안한 쉼을 매일매일 선물할 수 있게.

매거진의 이전글 조화를 좋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