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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Jan 03. 2022

서로의 빛만큼은 닿는 거리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한다, 한다. 자!”


오, 사, 삼, 이…!


“일! 해피 뉴 이어!”


얘들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사랑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화려한 종소리와 함께 우리는 또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친구들과 나는 서로 손깍지를 끼고 흔들며, 사랑한다고 하트를 보내며, 추운 천막 안을 호들갑스러움으로 채워나갔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조금쯤 사그라들 때 즈음에는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마저 작성하기 시작했다. ‘국내 여행 가기’, ‘천하제일 요리대회’, ‘사주 보러 가기’, ‘패러글라이딩 하기’ 등. 한 명씩 하나만 말해도 목록은 금방 채워져 갔다. 이걸 다 할 수 있으려나 싶으면서도, 작년 우리가 세웠던 버킷리스트들을 꽤 많이 성공했던 걸 생각하면 못 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가보자고!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다 같이 합창을 하듯 말한다. 가보자고!


해가 바뀌기 몇 시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는 2021년을 회고하는 지인들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성취해낸 1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많은 걸 잃고 또 얻은 1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1년, 누군가에게는 즐겁고 행복했던 1년. 그렇게 모두의 2021년은 저마다의 모양새로 기록이 되어있었다. 그들의 글들을 찬찬히 읽으면서 나에게는 지난 2021년이 어떤 해였는지 생각해보았다.


조금 뻔한 말이지만, 감사한 한 해였다. 정말 그저 고맙고 고마운 해.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너무너무 깊은 곳에 잠겨있어서 숨을 쉴 수가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냥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숨 쉬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한없이 잠겨있기를 선택하던 때, 누군가는 내가 잠긴 쪽으로 열심히 돌멩이를 던졌다. 고요한 내 호수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어서 나와, 여기로 나와. 꼭 불러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늘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돌멩이가 들어오면 그제야 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저 빛에 닿으면 더 이상 숨이 막히지 않을 것 같다는 미약한 기대를 안고 조금씩 헤엄을 쳤다. 가라앉는 건 쉬운데 다시 올라가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구나. 막히는 숨을 애써 참고 참으며, 남은 숨을 여러 번 고르고 고르며 빛에 닿으려 애썼다. 표면에 가까워질수록 돌멩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네가 열심히 헤엄쳐 올라오고 있는 걸 안다고 모두가 물 밖에서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막혔던 숨이 뻥 뚫리는 기분을, 겹겹이 가려져있던 빛 온몸에 쏟아지는 기분을, 온몸을 내리누르던 압력이 사라지는, 아주 익숙하지만 새로운 기분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한때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허우적거리던 나를 겨우 물 밖으로 건져 올리기 위해서, 세상이 애를 쓴 것만 같은 해였다. 겨울에는 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곁에서 몇 달을 꼬박 보내면서 몸과 마음을 찌워나갔다. 봄에는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생각을 마음껏 기록해나가며 다정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여름에는 난생처음 출근이라는 것을 하며 사회를 경험해보기도 했다. 가을에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들과 더없이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나갔다. 그 사이사이 자취도 시작했고, 글을 쓸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기도 했으며, 여러 모양의 인연을 얻기도 했다. 2021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그 모든 일들이 내게 일어나 주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돌멩이를 던져준 마음이, 너무 감사한 해였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고마운 한 해였다. 기어코 헤엄쳐 올라와준 나에게 너무 감사했다. 돌멩이보다 더 큰 파동은, 스스로의 몸짓에서 온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알고 있으니까. 네가 열심히 올라와준 덕분에 이 호수 밖의 사람들을, 광경들을, 온기들을 만끽할 수 있노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고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다가오는 해는 내게 어떤 해로 남을지 모르겠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하는 해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조금쯤 허무하게 보내는 해일 수도 있고, 오래오래 기억하고픈 해일 수도 있는가 하면, 영영 잊고 싶은 최악의 해일 수도 있겠지. 사실 올해를 엄청난 해로 만들어야겠다는 대단한 의지나 포부 같은 건 없다. 나는 그냥 물 밖의 반짝이는 삶을 하루하루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물밑을 들여다보며 돌멩이를 던져보는 사람이고 싶다. 아주아주 깊은 곳에 가라앉은 이들에게 물 밖의 빛을 일깨워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여기 빛이 있어. 거기서 더 헤엄치면, 조금만 더 올라와준다면. 이름 모를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기 전까지, 오래오래 속삭여주는 사람이고 싶다.


영영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닿을 수 없는 만남일지언정 서로의 빛만큼은 닿는 거리에 있는 우리니까.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해보고 싶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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