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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l 01. 2020

한 여자가 한 세상

양선규의 인문학수프

한 여자가 한 세상  

   

“지난달에 막내딸이 손주를 낳아 뉴욕에 갔다 왔네요. <중략> 내가 뉴욕까지 가서 그냥 올 리가 있나요. 자메이카 베이에서 바다낚시를 했네요. 세상에! 내 생전 잡아본 고기 중 가장 큰 걸 이번에 잡았습니다. 길이 1미터짜리 농어를. 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되는 놈을... 내가 칠십 넘도록 살아 뉴욕 앞바다에서 이렇게 큰 고기를 잡을 줄 그때 지리산에 있던 동지들이 짐작이나 했겠소? 인생은 참 신비합디더.” (김서령, 「고계연傳」, 『여자전』 )     


옛날 어머니들은 재주가 많았습니다. 낚시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32년생 마지막 빨치산 고계연의 삶을 전해 들으면서 26년생 우리 어머니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막내였던 제가 어머니 무릎을 베고 전해들은 이야기들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야기, 하나뿐인 남동생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젊은 아버지 이야기... 지금도 생생한 이야기들이 제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삼천포 갑부의 막내딸 고계연이 빨치산이 된 시점(1950년 추석 무렵)은 어머니가 하나뿐인 동생을 낙동강 전투로 내보내고 장수산으로 요양을 떠난 남편과 떨어져 평양의 관사(官舍)에서 혼자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관사가 김일성대학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던 관계로 담 너머로 대학 행사를 종종 구경하며 지냈습니다. 일요일이었는데 한 번은 대학 구내에 폭탄이 떨어져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답니다. 마침 탁구대회가 열리던 중이라 운동복 차림의 남녀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채로 트럭에 실려 몇 대나 실려나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나이 스물다섯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제게 할 때 어머니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며칠 전에 행렬의 맨 앞에서 나발을 불며(외삼촌은 보통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그 운동장을 가로질러 낙동강으로 향했던 남동생 이야기와 그 이야기는 항상 짝을 이루며 제 귓가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다 죽었단다....”, 그 이야기들이 저의 자장가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어쨌든 인생은 참 신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김서령 작가와는 대학 동기인데 (그녀는 국문과 저는 국어교육과로 1년 동안 교양 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녀를 통해서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녀는 말이 없고 어른스러웠었고(아마 재수를 해서 들어왔을 겁니다) 눈길이 그윽했고 글 잘 쓴다는 소문이 그때부터 나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회 활동을 한다는 핑계(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를 내세워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녔고요. 그러니 그녀의 김후웅 고모님(결혼 초에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평생을 종부로 살았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아예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집안마다 ‘말 못할 이야기’들이 한 자락씩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몰랐었습니다. 이제 그 시절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회고(回顧)하는 게 우리 세대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어떤 작가에게든 그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한 인간의 이야기, 즉 그 어떤 가공의 인물, 있을 수 있는 인물, 이상적인 인물, 어떻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일회적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혼미해져 버렸다. 그 하나하나가 자연의 단 한 번의 소중한 시도인 사람을 무더기로 쏘아 죽이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단 한 번뿐인 소중한 목숨이 아니라면, 우리들 하나하나를 총알 하나로 정말로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리라.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 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點)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누구 속에서든 정신은 형상이 되고, 누구 속에서든 피조물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있다. [헤르만 헤세(전영애), 『데미안』, 7~8쪽]     


내가 쓴 내 인생의 ‘내용 증명’을 대중들에게(익명의 다수에게) 편지로 부칠 때 (내 이야기) 소설이 탄생합니다. 굳이 그 편지의 이름을 ‘소설(小說, 작은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은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사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공적인 그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 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點)’으로서의 한 인간을 성실히 묘사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는 것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대표작 『데미안』의 서두에서 자신의 글쓰기가 소설을 지향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작가’의 ‘인생 내용 증명’이 왜 다른 이야기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되는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자기들이 하느님이라도 되듯 그 누군가의 인생사를 훤히 내려다보고 파악하여, 하느님이 몸소 이야기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이 어디서나 핵심을 집어내어 써낼 수 있는 양 굴곤 한다. 나는 그럴 수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오직 ‘회고(回顧)’만이 자신이 설정한 글쓰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데미안』이 그의 대표작이 될 수밖에 없는 소이가 거기 그렇게 드러나 있습니다.     


젊어서 소설을 쓸 때 좀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직장에 문학계간지 편집에 관여하는 동년배의 비평가가 있었습니다. 마침 그가 관여하는 계간지에서 한 분기 발표된 소설 작품들을 리뷰하면서 제 작품에 대해서는 제목만 언급하고는 그 내용을 일절 거론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가 하룻밤 제 하숙집에서 묵어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합니다만 그건 좀 결례가 아닌가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밤새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지금은 희미합니다. 그 중 한 마디는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화 중에 나온 말인데 앞뒤 맥락은 자세하지 않습니다(대화가 헛돌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창작 경향에 대해서 누군가가 토를 달았고(그래서 자세한 리뷰는 빠졌고) 본인이 “그가 자신의 이야기만을 쓰는 것은 상상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때의 대화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김서령 작가의 <여자전>의 표지에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표지 안 쪽에는 그녀의 친필 서명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남자들은 그저 여자의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량품이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헐거워지는 나사 하나에 불과합니다. 한 어머니는 한 세상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입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어머니는 제 몸 구석구석을 만지곤 했습니다), 어머니의 촉촉한 입술(어머니는 막내인 저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뽀뽀를 했습니다)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을 때마다 저의 이마를 스치던 인조견 치맛자락의 서늘했던 그 느낌도 잊지 못합니다. 아직도 제가 세상에 보낼 ‘내용 증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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