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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 Jun 28. 2020

"AZT break?"-같은약을 먹고있었던 미미, 로저

2020년이었으면, 뮤지컬 <렌트>의 엔젤과 친구들은 행복했을까

2000년 7월 5일, 파격을 내세우며 한국에 상륙했던 뮤지컬이 있다.


1996년에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 마약과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에이즈), 동성연애 등 파격적이라고 할 법한 소재들이 버무려진 극인 <렌트>로,  이 극은 원작자 조나단 라선의 유작이기도 하다. 2011년 충무아트센터에서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렌트의 라이선스 공연이 돌아왔다. 디큐브아트센터로 20주년 타이틀을 단 채, 화려하게.


인물의 설정이나 이야기의 흐름은 1800년대 후반의 오페라 <라보엠>에 기반하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욕의 슬럼가에 살고 있었던, 연출자 조나단 라선의 경험과 친구들의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그래서, 19세기에는 없었던 혹은 밝혀지지 않았던 미지의 질병인 에이즈와, 이를 조절하기 위해 먹는 AZT가 새로이 극 중에 등장한다. 1991년의 크리스마스 이기 때문이다.


9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렌트, 더 이상 파격이 아니라는 말도 많지만, 이 공연의 존재가 주는 행복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뮤지컬 <렌트>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뮤지컬 <렌트>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2005년의 뮤지컬 영화 <렌트> 역시 그렇다. 개발을 앞둔 뉴욕의 슬럼가에게 "집세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청춘들의 저항은 행위예술가인 모린(전나영)을 통해 극대화된다. 다양한 뉴욕의 인간 군상, 방황하는 그 청춘들의 이야기를 얽기 설기 늘어놓느라, 주된 이야기가 무엇이고, 서브플롯이 무엇인지 헷갈릴 만큼 정신없는 이야기 속에서, 그들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집세도, 예술도 아닌 에이즈다.

로저는 상처가 있다. 전 여친 에이프릴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HIV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난 후 로저에게도 HIV가 남았다.ⓒ영화 RENT

사연은 다르지만 에이즈 환자 이거나, 에이즈 환자를 친구로 두고 있거나 다들 그렇다.  먼저 죽어버린 로저의 전 여자 친구 에이프릴을 빼더라도, 로저(장지후), 엔젤(김지휘), 콜린(최재림), 미미(김수하) 주요 등장인물 중 8명 중 4명이 에이즈 환자다. 그리고, 뉴욕의 슬럼가에서 집세 낼 돈도 빠듯하고, 철거 예정인 건물에서 몰래 살아가는 그들은 '엔젤'을 통해서 하나의 모임을 소개받는다. '삶의 빛' 모임이다. 삶의 빛 모임은 에이즈 환자들의 모임이다. 렌트가 더 이상 파격이 아니라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들 중 하나가, 핵심 소재인 에이즈에 있는데, 1991년처럼 속수무책으로 죽는 질병이 아니라는데 있다. 적어도 치료법은 있다. 그 치료제의 가격과는 별개로 말이다.


이 '삶의 빛' 모임에서는 지난 모임과 이번 모임 사이 일과를 이야기한다. 영화와 뮤지컬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Helper T cell의 수치가 떨어졌어요 일 정도이니 이 얼마나 사실적이란 말인가. 지금도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는 에이즈 환자에게 미치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하물며, 1991년에는 어땠겠는가. 그들이 동성애자 라거나 클럽의 댄서라거나, 일생의 곡을 쓰는 게 꿈인 무명 작곡가라면, 그렇게 모인 그들은 에이즈 환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어려움을 토로할 법도 한데, 오히려 오늘이 감사하다고 한다.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이들이 내일의 꿈을 이야기하고, "지금 여기, 오늘 우리"를 노래한다. 누구보다 가치 있는 오늘일 수밖에 없다.  
원어는 "AZT Break?", 한국어 번역이 "약 먹을 시간"으로 됐지만, 이 약이  AZT라는 게 그들이 에이즈 환자라는 표식이기도 하다. ⓒ영화 RENT


2020년이라면 핸드폰 알림이겠지만, 1991년 초연된 당시, 약 먹을 시간 알림은 삐삐였다.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장면 ⓒ영화 RENT

이렇게 모두가 주인공인 <렌트>에서도 캐스팅 보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메인스트림의 커플이 있으니 로저(장지후)와 미미(김수하)다. 그리고 이들 로저와 미미 역시 각각 에이즈 환자다. 미미의 구애에 끌리는 로저지만, 처음엔 미미를 거부했었다. 자신은 에이즈 환자인데 미미에게 에이즈를 전염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다가오는 미미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그들인데, 갑자기 로저의 삐삐가 울렸다.


"AZT Break?"
AZT를 먹을 시간이냐고.
나도 그 약을 먹는다고


미미는 이내 약병을 흔들어 보인다.

 

AZT는 아지도티미딘(Azidothymidine, AZT)을 뜻한다. 다른 이름인 지도부딘으로 알려져 있는데, 1987년 글락소웰컴에 의해 에이즈 치료제로 승인, 판매되고 있다. 극 중 배경인 1991년엔 거의 유일한 에이즈 치료제였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핫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약제 중 일부다. 국내에서는 지도부딘 단일제로는 거의 팔리지 않고, 지도부딘/라미부딘 복합제 형태로 더 많이 팔리고 있다. 약제의 개발에 따라, 더 많은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발전인 셈이다.(획기적으로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늘렸다고 하는, 칵테일 요법은 언젠가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편에서 다뤄볼 예정이다)


지도부딘은 현재의 제품 허가 사항에 따르면 1일 500~600 mg을 2~6회로 나눠 먹는다. 국내에서는 물론, 오리지널 의약품인 레토르비어 역시 100 mg 캡슐이다. 다른 항바이러스제와 함께 먹기에, 함께 먹는 약품의 용량 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1일 2회 300mg을 먹는다. 하루에 2번 한 번에 3알, 그리고 대개의 항바이러스제가 그렇듯,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복용한다. 예를 들면, 입술 포진이 생겨,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았을 때, 항바이러스제는 4시간 간격으로 1일 5회 이렇게 복용하곤 한다. 지도부딘은 하루 2번, 10시/10시 이렇게 복용한다고 치자. 이들은 20대 젊은 청춘,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병을 일찍부터 앓고 있었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어쩌면 그들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매일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알람이 울리면 약을 먹는, 습관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렌트의 무대,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 삶의 빛 모임 장소 이기도 하고, 모린의 공연장이기도 하다. 밴드가 무대 뒤나 아래의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 나와있다.

HIV 감염인은  HIV에 감염되어 체내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이즈 환자는 감염된 사람들 중 CD4 림프구 수가 200/mm3 미만으로 감소되어 있거나, 에이즈와 관련된 증상(쉽게 피로해 지거나, 에이즈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을 나타낸 경우를 말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HIV의  검사를 받는 경우는 잘 없다 보니, 대개 증상이 진행되고서, 에이즈와 함께 HIV 감염 상태를 진단받고는 한다.


지도부딘은 초기 에이즈 치료제로서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 효소 억제제에 속하는데,


에이즈 치료를 위해서는 지도부딘 말고도, 비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 단백분해효소 억제제, 인터 그레이즈 억제제의 약제를 쓸 수 있고, 각각의 작용 부위나 기전은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HIV 바이러스가 증식하는데 필요한 물진인 역전사효소나 단백분해효소를 억제해, 해당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한 가지 약제만을 사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내성 바이러스가 발생할 수 있기에, 약제의 발전과 함께 서로 다른 기전의 약제들을 동시에 복용해, 내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변해 온 것이다.  


2020년 6월 18일, 렌트 컴백 위크 중의 캐스팅 보드.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이들은 완벽했다.

ATZ에서 시작한 약은 3TC( 라미부딘),  키벡사(아바카비르/ 라미부딘), 트리멕(돌루테그라비르/ 아바카비르 / 라미부딘),  프레지스타(다루나비르),인텔렌스(에트라비린),티비케이(돌루테그라비르), 2020년 3월 허가된 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 복합제인 도바토 까지 다변화되었다.


약의 발전만큼 엔젤과 미미, 로저, 그리고 콜린이 살아갈 하루의 길이가 길어진 것이다.


만약 2020년에 엔젤과 친구들이 살았더라면 뮤지컬 <렌트>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병이 되기도 했고, 원인을 모른 채 엔젤처럼 갑자기 죽어갈 일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싸워야 하는 차별이나 경제적 부담은 또 다른 이야기 겠지만.


그래서일까.


더 이상 렌트가 파격이 아니라는 사람들에게, 렌트도 이제 낡았다는 세평에 대해

렌트가 낡았다. 그래서 (더) 기쁘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소재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20년 동안 세상이 바뀌어 온 결과이기에.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No Day But Today를 외치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부르는 그들을,


일 년을 살아낸 그 52만 5천600분의 귀한 시간들을 어떻게 잴 수 있냐고 부르는 이 친구들을 한번 만나보는 것도 어떨까.


마지막은 감동적인 커튼콜 'Seasons of Love'과 함께

뮤지컬 혹은 영화 렌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감동적 순간 "52만 5천6백 분의 귀한 시간들~" - 커튼콜 중 시즌스 오브 러브. 디큐브에서 직접 들으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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