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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 Jul 26. 2020

졸리니까 졸리드?<십시일반> 속 수면제, 졸피뎀이야기

졸레드론산 NO!!먹으면 까무룩, 작용시간 빠른 수면제 졸피뎀(스틸녹스)

"졸리니까 졸리드?"


수면제를 찾아 헤매던 김지혜(오나라 분)는 서랍장에서 약병 하나를 발견하고, 약 이름을 보고 대번에 수면제임을 때려 맞춘다. 그리고 그 약병을 슬쩍해서 나온다. 기쁨에 춤을 추는데, 천성이 허술하다는 설명처럼, 수면제라는 단어에서 처방받지 않은 약을 몰래 먹여야지 하고 생각하는 그녀는 어째 단순하다. 패의 앞뒤 양옆이 다 보이는 단순한 캐릭터가 빌런이 되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귀여운 허당일지언정, 진짜 악역이 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지설영(김정영 분)의 서랍에서 찾은 졸레드 약병, 수면제를 찾은 기쁨에 약병을 흔들어 보이는 김지혜(오나라 분). 그녀는 이 수면제를 어디에 쓰려는 걸까. (ⓒ MBC 십시일반)

그런 그녀가 집어 드는 약의 이름이 졸리드 정(주석산 졸피뎀으로 추정)이다.

졸레드론산이라는 골다공증 혹은 고형암의 골전이에 쓰는 약물이 먼저 떠올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졸리니까 졸리드 라는 그녀의 명쾌한 설명에, 아 졸피뎀 마케터라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야 했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졸리니까 졸레드? 주석산 졸피뎀 성분을 표기하려고 한 듯하다. 언뜻 졸레드론산은 연상케 하지만, 수면제 중엔 졸피뎀이 가장 유사하니 말이다. (ⓒ MBC 십시일반)

단순한 그녀의 셈법이 통한, 이 약 졸리드는 수면제가 맞다.

잠들기 전 1일 1회 먹는 약이다 보니, 책상 서랍에 놓여있다. 통약으로 나오는 이 약들은 필요시 복용할 수 있게, 보통 이렇게 따로 교부한다. (ⓒ MBC 십시일반)

시작부터 수면제가 등장하는 이 드라마, 드라마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주요 배역인 화백 유인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얄궂게도 그의 생일에, 가족을 모두 모아놓고, 그 죽음을 딸이 발견한다. 딸 역할에는 킹덤의 왕후 김혜준 배우가, 딸 빛나의 엄마이자, 오늘 졸리드 소동을 일으킨 유인호의 과거 내연녀이기도 한 김지혜 역에는 스카이캐슬의 찐찐 진진희, 오나라 배우가 열연한다.  7월 22일 방영을 시작한 MBC의 새 수목드라마 <십시일반>은 화백 유인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블랙 코미디이고,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향해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라고 앞서 밝히고 있다. 인간은 모두 탐욕을 가진 인물이며, 탐욕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주제라고 하는 데, 어떻게 극이 풀려갈지 탐욕이라는 기존 부정적으로만 비치던 소재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유인호(남문철 분) 화백이 죽은 채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는 딸 유빛나(김혜준 분). 그의 죽음을 놓고, 인간의 탐욕을 그리는 드라마 십시일반의 내용이 기대된다.(ⓒ MBC 십시일


이 기묘한 가족의 이야기는 20년 전 이혼한 전부인 지설영(김정영 분)과 17년 전부터는 연애하는 사이로, 그 이혼의 사유였던 김지혜(오나라 분)와의 사이에 딸 유빛나(김혜준 분)를 두고 있으며, 조카와 이부동생의 딸인 또 다른 조카에, 친구, 가사도우미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구조에서 시작한다. 유인호(남문철)의 유언장 공개를 앞두고, 누구에게 얼마의 재산을 분배할 것인가 때문에 평소 까칠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의중을 훔쳐보느라 정신이 없다.

드라마 십시일반의 인물관계도. 이 기묘한 관계가 화백 유인호의 재산을 둘러싸고 유지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 MBC 십시일반)

드라마 속에서 철없는 지혜는 유인호 화백의 금고 비밀번호를 편지로 받는다. 그 금고에 있다는 유언장의 내용이 너무나 궁금해진 나머지, 그녀는 그 금고를 몰래 열어보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유인호의 침실에 있는 금고를 몰래 열어볼 수 있을지를 궁리하다, 문득 어제 가사도우미 박 여사와 설영의 대화를 떠올린다. 설영이 불면증으로 인해 매일 먹는 수면제가 있고, 이제는 수면제를 줄여보려 한다는 사실을.


수면제는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다.

항불안제나 수면, 진정제로 쓰이는 벤조디아제핀계가 대표적이고(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이야기는 부부의 세계 편, 지선우가 민 현서의 마음을 산 약 편을 참조 https://brunch.co.kr/@musicalpharm/16), 오늘의 졸리드처럼 그렇지 않은 약물들도 있고 말이다.


졸피뎀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에 속하지는 않지만, 벤조디아제핀계 약물과 작용이 비슷하다. 뇌의 가바(GABA, gamma-aminobutyric acid) 수용체의 벤조 디아제핀 수용기에 작용해, 가바 신경 전달 물질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뇌에 대한 억제 효과를 올리는 역할을 하다. 불면증 환자의 가바 신경 흥분 억제 효과를 강화시킴으로써 수면을 유도한다.


이런 졸피뎀의 특이점 중 하나는 짧은 지속시간이다.

수면 작용이 있는 약물들의 반감기는 대략 1~12시간 이상으로 다양한 편인데, 졸피뎀은 약 2시간으로 짧은 편이다. 반감기는 약물의 혈중 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데, 만약 반감기가 12시간인 수면제라면, 잠을 이루기 위해 약을 먹었지만, 한낮까지도 내 몸속엔 어제 먹은 약의 절반이 남아있는 셈이다. 수면제를 먹으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 대개 내가 먹은 수면제의 용량이 과하진 않은지, 혹은 반감기가 지나치게 긴 약물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반면, 이렇게 지속시간이 짧다 보니, 중간에 잠이 깰 수도 있다.


깊은 수면을 원했지만, 이내 잠이 깨어버리는 것 말이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방형(서서히 방출된다는 뜻)으로 제제 설계를 변경해 출시하기도 했다.(스틸녹스 CR정. 작은 용량인 6.25 mg은 빨간색, 큰 용량인 12.5 mg 은 파란색인데, 각각 스틸녹스 5 mg, 10 mg과 동등한 효과를 보인다) 서방형의 지속시간(Duration Time) 은 약 7~8시간, 속방형인 흰색 장방형 정제의 4시간에 비해 두 배쯤 길어졌다.


그래서 수면제를 먹을 때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적어도 다음날 일과를 시작할 때까지 최소 8시간 이상을 남겨둔 시점에 복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처방받아 복용할 수 있는 스틸녹스의 경우, 작용 시작시간(Onset of action)은 30분 이내, 지속시간은 약 6~8시간이다. 일반적인 성인의 수면 권장시간(7~8시간)을 고려한다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은 불면증을 치료하고, 생체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유용한 편이다.


이토록 유용한 약임에도 가끔은 사회면에 등장하곤 하는데, 의존성과 무색무취라는 특성 때문이다.

먼저,

짧은 작용시간과 냄새가 없는 특성은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유용한 약이고, 의존성 때문에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처방 또한 28일을 초과해서 처방할 수 없게 DUR 시스템(올해 들어선 코로나 당시 공적 마스크의 중복 구매를 확인하는 용도로도 쓰이는 것으로 범용성을 넓혔다)으로 전산 제어까지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골프장에서 음료에 섞어 돈을 편취했다던가, 데이트 강간 약물, 때로는 강력범죄인 살인에도 쓰였다던가 하는 식으로 자주 뉴스에 등장하곤 한다.


당장 약을 손에 넣은 김지혜(오나라 분) 역시 뚜껑을 열어 냄새부터 맡지 않는가.

아쉽게도 원료가 무취라, 냄새로는 확인할 수 없다. 정로환 같이 쓴 맛이 심한 약도 당의정(단맛이 나는 코팅)을 통해서 쓴 맛이나 냄새를 숨기고 하니, 더더욱 냄새로는 약을 확인하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제제학적 공법의 기초적 발전만으로도 약을 분석적이지 않은 방법만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워졌다.

   

냄새를 맡아보는 김지혜(오나라 분). 그런데 진짜 졸피뎀은 향이 없다. 다른 약 중 고약한 향이나 맛을 내는 경우도 코팅을 통해 그 향이나 맛을 감춘다. - (ⓒ MBC 십시일반)

이렇게 냄새가 나지 않는 약이기에, 허당 김지혜(오나라 분)는 약을 갈아서 음료에 섞기로 결심하고, 약을 간다. 숟가락 두 개 사이에 약을 넣고, 꾹 누르면 대체로 아주 딱딱한 약이 아니고서는 잘 가루가 난다. 그렇게 가루가 난 약을 주스에 섞는데, 물에 잘 녹는 염이니까, 향도 맛도 느껴지지 않게 아주 주스에 잘 녹았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식사 자리에서 화가 난 유인호 화백 때문에 먹이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가루로 내어 오렌지 주스에 졸피뎀을 타고 있다. 실제 졸피뎀은 매우 작은 크기(가로 1cm)로 한알을 쪼갰을 때 저 정도 분량이 나오기는 어렵다. (ⓒ MBC 십시일반)

결국 가루로 내어 먹이는 데는 실패하지만, 박 여사(남미정 분)의 약 쟁반을 뺐아 들고, 열개쯤 되는 약에 하나를 숨겨서 결국 먹이는 데 성공한다. 앞서 본 대로, Onset time 이 30분밖에 걸리지 않으니까, 아마 바로 잠이 들었을 것이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금고 안을 엿보는데, 아뿔싸. 금고 안의 문서를 훔쳐본 것의 효력이 별로 없었음은 물론, 그날 유 화백이 불의의 사고(혹은 타살 가능성도)로 사망하고 말지 않나. 청색증의 증거도 보여, 독살 가능성마저도 시사하니, 혹시나 약물 과량 복용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닌지, 이게 수면제가 아니라 다른 독약이었을지 확신이 없는 김지혜(오나라 분)는 약국을 찾는다.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모습으로.

이거 수면제 맞냐고. 수면제 약 이름만 보고 그렇다고 하는데, 아니 안에 든 약이 수면제가 맞냐고 재차 확인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꺼릴 것이 없는 게 약품 식별 역시 약사의 고유 업무 중의 하나다.


약물, 경구 복용용 약물의 경우는 색깔, 모양, 분할선 여부, 식별 문자 등을 허가 시에 등록해야 한다. 그래서 약 이름을 안다면, 성분을 아는 사람은 어떤 약 인지를 바로 알아낼 수 있고, 약 이름을 몰라도 알약 모양만 보고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종합병원 같은 경우에는, 약품 식별 서비스를 두고 지참 약을 확인하기도 한다.

약이 수면제가 맞는지 봐달라는 김지혜(오나라 분). 약품 식별도 약사의 업무 중 하나니 꼭 저러지 않아도 된다. 공적 마스크가 한창이던 때 촬영을 했나 보다(ⓒ MBC 십시일반)

그래서 결국 확인받은 것은 수면제가 맞다는 사실.


졸피뎀은 오리지널인 약제인 스틸녹스가 1cm의 가로길이와 0.3  cm의 두께로 길고 가늘다. 그런데 보이는 건 다이아벡스 같은 동그랗고 커다란 약!  모양이 달라서 디테일이 아주 잘 살아 있지는 않다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가상세계의 어드메에는 이렇게 생긴 졸피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약품 식별을 위해, 알약을 본다. 그리고 수면제가 맞다고 하는데, 재밌는 것은 한국에 유통 생산 중인 14개의 졸피뎀 성분 중 흰색 원형 약제는 없다는 사실 (ⓒ MBC 십시일반)
졸피뎀의 오리지널인 스틸녹스 10mg - 출처 : 식약처 의약품 통합정보시스템


수면제가 맞다는 것을 확인한 김지혜(오나라 분)는 "영양제 주세요. 두통약 주세요" 라며 플렉스( FLEX)를 선보인다. 내가 준 것은 수면제가 맞고, 재웠을 뿐 죽이지 않았다고.


더 지켜봐야 알 일이고, 그녀의 캐릭터로 볼 때 살인 사건의 범인이 될 확률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스틸녹스는

과량을 투여한 경우 의식 수준이 혼수에 이를 수 있는 진정 작용을 가진 약이고, 4주 이상 장기 복용 시 의존성 사례가 단기간 사용보다 더 자주 보고되는 약이고, 이러한 의존성 때문에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로 분류되기도 하니 쉽게 볼 약은 아니다.


다른 약들보다 중추 작용이나, 근육 억제 등의 오프사이트 효과가 적은 수면제이고, 일상에 지장을 덜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함부로 먹어도 된다거나, 중간에 잠이 깨었다고 해서, 한 알을 더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1040회(2016년 방영)에서,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주제로 졸피뎀의 부작용을 다뤘다.


의존성이 덜하다고 처방을 받지만, 내성이 곧잘 생기고, 한 번에 정해진 양 이상을 먹다가, 과용량 복용으로 인해, 환각을 경험하고,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이다.


28일, 제한을 두고 처방하는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필요할 때, 질 좋은 수면을 제공함으로써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약이지만, 전문의의 처방과, 그에 따르는 용법의 준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졸피뎀이 악용되는 사례를 뉴스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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