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과를 다니며 모은 정신과 약 사총사, 아티반, 바리움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모두들 BBC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제대로 된 변주곡을 뽑아낸 JTBC의 부부의 세계(모완일 연출, 주현 작가, 김희애 주연)를 꼽을 것이다. 매주 금 토요일만 되면, 화내면서 보게 된다는 그 드라마.
드라마의 중심은 단연 김희애 배우가 연기하는 가정의학과 의사, 지선우다.
그리고 오늘로 9회째의 호흡을 이어오는 동안, 모두들 입을 모아 하던 이야기
이 드라마에 지선우의 편은 어딨는 거야?
그나마 하나 있는 그녀의 편은 드라마 초반 이태오(박해준 분)의 미행을 담당했고, 여다경(한소희 분)의 옆집으로 이사를 해, 그들의 동향을 살폈으며, 뜬금없이 연락을 걸어와 설명숙(채국희 분)의 음모를 알리기까지 한 그녀, 민현서(심은우 분)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런 민현서는 지선우의 가족 혹은 친구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친구라 믿었던 고예림(박선영 분)이 감췄고고, 다른 꿍꿍이를 가진 동료이자 친구인 설명숙(채국희 분)은 음모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신개념 일로 만난 사이라 해야 하나,
민현서는 지선우를 찾아온 환자였다.
당당하게 자리에 앉자마자 신경안정제를 요구한 그녀는, 이런 경험을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지선우는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라며, 그녀의 신경안정제 처방 요구를 거절했다. 일종의 닥터 쇼핑을 다니며, 가정의학과에서도 단기 처방은 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아는 현서는 의사인 선우가 보기엔 이미 정신과 약물들을 좀 먹어본 위험인물이었던 격이다.
그런 둘은 어떻게 친해졌던 것일까. 아마도 약물이겠거니 했는데, 그 답이 밝혀졌다.
현서의 동거남이자,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였고, 대체 왜 아직도 만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박인규(이학주 분)에 의해서 말이다.
답은 역시, 약이었다.
정신과 약 사총사라고 부를법한, 네 명의 아이들은 현서네 집 찬장 안에서 그 자태를 드러냈다.
족히 몇 달을 먹을 법한 분량이다.
현서네 집에서 잠을 자다 깬 인규는 배고픔에 찬장을 뒤졌다. 먹을 것 찾아 헤매면서.
그런 그가 찾아낸 것은 빨간 봉지의 매운 라면이 다가 아니었다. 현서가 꼭꼭 숨겨둔 약도 같이 찾고야 말았다.
보이는 약 들 중 반이라도 얼굴을 드러낸 녀석이 둘, 아직 얼굴을 보이지 않은 녀석이 둘이다.
먼저 얼굴을 보여준 티반, 은 아티반 일 것이고
바리, 는 바리움일 것이다.
알은 아마도 알프라졸람.
셋 모두 신경안정제 혹은 항불안제라 불리는 약들, 현서가 첫 만남에서 선우에게 처방해 달라 요구했던 그 약물들이 맞다.
맨 먼저 얼굴을 보인 아티반은 1979년 7월 일동제약에 의해 한국에 소개됐다. 그리고 지금 주사와 알약을 합쳐 종 4종류가 유통되고 있다. 삼오 로라제팜, 스리반, 로라반, 그리고 오늘 여기에 나온 이들의 대장, 아티반까지.
노란 알약의 성분은 로라제팜, 아주 귀여운 이름인데 글쎄, 지름 약 5mm짜리 동그란 알약의 작용은 그리 귀엽지만은 않다.
신경증에서의 불안, 긴장, 우울에 쓰이고, 또 자율신경 실조증이나 심장 신경증 등 정신지체장애에서 동반되는 불안, 긴장, 우울 혹은 마취 전 수면유도나 긴장 완화를 위해 쓰이기도 하는데, 약물의 주의 사항에는 일상적 스트레스와 연관된 불안이나 긴장 정도가 아닌, 임상학적으로 증상이 심각하거나, 환자의 행동에 심한 장애가 있을 경우에만 사용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로라제팜으로서 1일 1 ∼ 4 mg을 2 ∼ 3회 나눠서 먹을 수 있고 증상의 정도에 따라, 용량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다. 로라제팜 알약이 0.5 mg과 1mg의 두 종류이니, 많아야 하루 4알까지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약, 아마도 바리움
바리움은 디아제팜의 오리지널이다. 한국로슈가 만들었고, 팔고 있다. 로슈의 디아제팜을 포함해, 한국에서는 동물용, 원료를 제외 15개의 디아제팜이 팔리고 있다. 가장 빠른 허가일은 1977년, 태어난 건 훨씬 먼저지만, 아마 그즈음 한국에 의약품들이 허가, 공급되는 현대적 형태를 갖추었으리라 추정해 볼만하다.
아무튼, 지름 8mm의 살구색 알약인 바리움의 성분은 디아제팜, 눈치채셨겠지만, 앞서 말한 로라제팜의 형제 격이다.
그래서일까, 쓰이는 곳은 로라제팜과 비슷하다.
신경증에서의 불안·긴장, 정신신체장애(소화기 질환, 순환기 질환, 자율신경 실조증, 갱년기 장애)에서의 불안· 긴장·우울, 마취 전 투약에 똑같이 쓰이고, 알코올 중독 환자의 알코올 금단증상의 치료나, 골격근 경련 또는 결신 발작(소발작) 간질의 치료 보조제로도 쓰일 수 있게 허가를 받았다.
디아제팜으로서 1회 2-10㎎을 1일 2-4회 경구 투여하고, 골격근 경련의 경우에만, 1일 3-4회 투여한다.
지금, 오리지널인 바리움은 5 mg 제형만을 한국에서 팔고 있지만, 원래는 2 mg 제형도 판매했었다. 하루에 1알 많으면 2알까지를 복용할 수 있는 약 인 셈이다.
그리고 알프라졸람은 국내에서 1987년 5월에 알프람이라는 상품명으로 처음 허가를 받은 마약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불안장애의 치료 및 불안 증상의 단기 완화, 공황장애, 우울증에 수반하는 불안, 정신 신체장애(위 십이지장 궤양, 과민성 대장 증후군, 자율신경 실조증)에서의 불안, 긴장, 우울, 수면 장애의 치료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약이다. 보통 하루에 1~2알을 하루에 3번까지 복용할 수 있고, 증상의 정도에 따라 그 용량을 조절할 수 있는 약이다. (자세한 알프라졸람 이야기는 낭만 닥터 김사부의 차은재 편을 참조 https://brunch.co.kr/@musicalpharm/9)
그리고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나머지 하나는.... 라면을 끓이며, 식탁 위에 올려 둔 인규의 손에 의해 반쯤 그 정체를 드러내는데...
어라, 얘도 OO 제팜 이다....?!
타이밍 참 귀신이지,
이때 일을 마치고 터덜터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현서.
그런 현서를 발견하자마자, 인규는 미친 듯 몰아붙인다.
이거였냐고?
결국 약이었냐고?
너, 약 안 먹기로 한 거 아니었냐고
그러자 누구 때문에 내가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라고 대거리를 하는 현서, 둘의 사정은 그래, 아마도 앞서 보여줬던 것처럼, 싸우고 사랑하고, 때리고 도망쳤다가도 다시 함께 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이라 치고 말이다. 아마도 반복되는 그의 폭력과 관계에서 오는 불안, 우울 등의 정서적 문제가 겹쳤으리라 짐작해볼 뿐이다.
그런데 저렇게나 약을 쌓아두고 먹는 행동, 그 행동은 찬장 안에 놓인 약 들에도 비밀이 있다.
OO제팜으로 끝나는 그 녀석들, 벤조디아제핀계라 불리는 그 약들을 이것저것 겹치게 먹었을 때 일어나는 일 들 중 하나가 약물 의존성의 심화, 즉 세상의 말로 바꾸면 약물중독이기 때문이다.
OO제팜으로 검색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완제 의약품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는 약들은 모두 42개, 이들 중에는 이름이 같고, 용량만 다른 약(아티반 0.5 mg과 1mg, 아티반 주 4mg처럼), 이름은 다르지만 알맹이는 같은 약(아티반과 로라반)들도 섞여 있는데,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 유효성분만을 꼽으면,
플루나제팜, 디아제팜(바리움 정), 로라제팜(아티반 정), 플루니트라제팜, 클로나제팜(리보트릴 정), 브로마제팜, 클로티아제팜(리제 정), 쿠아제팜, 피나제팜, 클로나제팜 총 10가지다. 모두 제팜으로 끝나고 벤조디아제핀계라는 총칭으로 통하며, 마약류 중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원래 벤조디아제핀계는 진정 불안 약으로, 1960년대부터 널리 쓰였다. 우연히 1954년 Chlodiazepoxide가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Leo Sternbach에 의해 발견되었고, 3년 후 Librium이라는 이름으로 상업적 유통이 시작되었다. 디아제팜은 1963년에 발매되었고, 그 이후 다른 화합물들도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선 10여 종이지만,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거의 50여 종류로, 이렇게 널리 쓰이는 까닭에 오남용 또한 만이 일어나고 한다.
가장 먼저 세상에 태어난 맏이 격인 디아제팜의 설명서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3) 다른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병용 투여하는 것은 약물 의존성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알프라졸람까지 포함해 적어도 4종류의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함께 먹고 있었던 현서의 약물의존 정도는 말해 뭐하겠는가. 아마도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 멋없고, 나쁜 놈인 그 인규 조차도, 약 안 먹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불같이 화를 낸 것이겠지.
장기간 복용 시 자살 경향이 증가할 수도 있고, 원래 단기간 투여를 권장하는 약물이며, 필요해 의해 장기 복용하게 된다면, 환자의 증상을 재평가하고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이곳저곳 가정의학과며 병원을 떠돌아다니며, 하나씩 하나씩 처방받아 약을 모았던 현서의 전례를 생각할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니 말이다.
처음 현서를 찾아왔던 지선우는
낡은 빌라 앞에 어울리지 않는 큰 차를 대어놓고,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아마도 약 이겠거니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서 앞으로 처방된 처방전이다.
처방의는 가정사랑병원의 의사 지선우.
저 처방전 안에는 어떤 약이 들었을까. 현서가 요구했고, 인규가 발견한 그것들, 벤조디아제핀 사총사가 그 종이 안에 활자로 반듯하게 누워있지 않았을까 상상만 해본다.
현실이었더라면, 코로나 난리통에 위력을 발휘했던 DUR 시스템이 동일 성분 중복처방, 그리고 30일 이상 장기 처방 등 수많은 요소들을 걸러냈을 테니까.
접힌 종이 속 진실이 무엇이든,
남편 이태오의 부정에 눈이 돈 나머지, 의사 지선우가 아닌 아내이자 여자 지선우로 자신의 양심과 맞바꾼 처방전을 건네고, 그 결과 현서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 지금 그녀 지선우 곁에 남은 사람은 엄마 때문이라고, 도리어 파국의 상황에서 아빠 편을 드는 아들 준영이도, 믿었던 친구들도 아니다.
심부름꾼이라 생각했던 민현서였다.
저 처방전 한 장이 그녀의 신뢰를 산 것일까, 아니면 생각보다 더 강력한 벤조디아제핀의 의존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을까.
그녀, 현서의 힘으로 지선우가 아직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부의세계는 계속된다. 흥미로움을 가득 담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