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 Apr 24. 2020

슬의생 채송화, 5살 건희에게 준 포크랄은 어떤 약?

안되면, 포크랄 먹이자. 울리는 거보다 차라리 재우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한 달의 시간을 다시 뛰어넘어, 4월 9일 방송된, 슬기로운 의사생활 5회는 의사로서 맞는 공룡능선 5인방의 일상을 보여줬다.  

의국 컨퍼런스 진행 중. 입원 중인 환자들의 상태와 치료지침을 의논하고 있다. 보고 중인 R3 안치홍(김준한 분), 그리고 교수인 채송화(전미도 분) (ⓒ tvN 슬기로운의사생활)


공룡능선의 홍일점 채송화(전미도 분) 교수님의 신경외과 의국에서는 교수님을 중심으로 레지던트들이 둘러앉아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컨퍼런스는 입원 중인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하고, 치료 지침을 의논하는 자리다. 평균적으로 보통 두 자릿수 환자들이 입원해 있기 마련이니, 모든 컨퍼런스를 보여준다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가 되는 거겠지만, 오늘 신경외과는 5세 남아 홍건희 이야기에 주목했다. 5세 남아 홍건희의 주치의는 송화 바라기 안치홍(김준한 분)쌤 이다.


오늘 컨퍼런스의 주요 논의 대상은 5세 환아 홍건희, 풍선을 불다 기절해 입원했는데, 모야모야병인 것으로 알려졌다. (ⓒ tvN 슬기로운의사생활)

5세 남아, 홍건희.

풍선을 불다 기절해서 응급실로 입원했는데, CT-angio 상 모야모야병이 의심된다고 한다.  


풍선을 불다가 기절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입원했는데 뭐? 모야모야?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병이라니...!


모야모야병은 2019년 기준 환자 수 12870명으로, 2015년 이래 매년 약 1000명 정도의 환자가 새로 진단된, 흔하지 않은 병이다.  분명 흔하지 않은 병인데, 왜 낯설지가 않은 건지....




알고 보니, 드라마 뉴하트에서 윤아의 심장 기증자가 모야모야였고, 신경외과를 중점적으로 다룬 드라마 <브레인>에서 장유진(김수현 분)의 딸 루비가 모야모야 병으로 등장했다. 인구 5000만 중 매년 1000명만 진단되는 이 질병, 그나마도 뉴하트나 브레인이 방영되던 시점에는 한 해에 500명도 채 안 되는 숫자의 환자만이 모야모야병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진료비 청구 내역을 통해 유추해 본 모야모야병 연도별 환자수 추이, 2019년 기준 모야모야병 환자는 12870명이다. - 출처 :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 시스템

통계상 중 장년층에 더 많이 나타나고, 2019년 기준, 5~9세 사이 남자아이는 176명으로 더더욱 흔하지 않은 증례다. 아래의 표는 2019년 한해 동안 성별, 연령기준 별 환자의 병원 내원 일수를 나타낸 표다. 1:2의 비율로 여성에서 더 많이 나타나다 보니, 입원 일수도 환자 수에 비례해 더 긴편 이다. 

이런 모야모야병은 특별한 이유 없이, 두 개 내 내경동맥의 끝 쪽 혈관이 좁아져, '모야모야' 혈관이라고 부르는 작은 이상 혈관이 관찰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나이에 따라 질병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병인데 나이에 따라 병의 특징이 다르다고? 변신로봇도 아니고, 똑같은 병인데 증상이 다를 건 또 뭐란 말인가.


어린아이들의 경우엔, 주로 뇌혈관이 좁아지면서 일시적으로 뇌로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일시적으로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일과성 허혈발작이 잘 생기는데, 주로 울거나 감정이 격해졌을 때, 호흡이 가빠지면서 뇌혈관의 폐색이 심해질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증상은 수 분 정도 지속되다가 회복될 수 있는데, 건희처럼 풍선을 불다가 혹은 리코더를 불다가 숨이 가빠져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증상이 회복되지 않고, 한 시간 이상 지속되는 경우, 일과성 허혈발작을 넘어 뇌경색이 발생할 수도 있다. 뇌출혈이 잘 발생하는 성인과 다르게 말이다.


건희 절대 울리면 안 된다고 컨퍼런스에서 주의 사항으로 신신당부한 이유가 이런 특징 때문이다.


안치홍, 건희는 뭘 제일 조심해야 하지?
절대 울리면 안 됩니다. 울거나 떼를 쓰면 뇌혈관이 좁아져서 뇌로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 돼서, 발작을 일으키거나 편마비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맞아. 너 절대 건희 울리면 안 돼!
(용석민) 캬, 어렵다
그럼, 어렵지. 있다 CT 찍을 때도 조심해. 최대한 잘 달래서 찍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포크랄 먹여야 될 수도 있어. 재우는 게 제일 안전하니까.
울리면 안 된다. 절대 울리면 안 돼! 안되면 '포크랄'  먹여 - (ⓒ tvN 슬기로운의사생활)

포크랄, 드라마 자막 하단에 진정제라고 표기된 이 약은 대체 뭘까.


병원 약사라면 당연히 자주 보았을 것이고, 어쩌면 아이가 수술이나 시술, 혹은 아파서 응급실을 찾아본 적 있는 부모라면 알고 있으리라.


"은박지에 싸인 주사기 안에 들어 있는 오렌지색 먹는 약"


이라고 하면 어떤 약 인지 기억들을 하실까?




포수클로랄 성분의 이 시럽은, 1989년 한림제약에서 허가를 받은, 향정신성의약품이다. 마약류에 속하다 보니, 알약으로 그 함량을 세는 다른 향정 약물과 다르게 재고 관리가 어렵다. 종종 월말이 되면, 총량을 맞추느라 벽에 거꾸로 줄지어 선 포크랄 병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한 방울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인 셈이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그 한 방울 때문에 용량이 모자라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보니, 그래 그랬었다 하고 병원약사들 사이에선 이제는 웃을 수 있는, 혹은 누군가에겐 현재 진행형의 추억이기도 하다.


소아의 경우 불면증에도 허가를 받았지만, 검사 전 진정 목적으로 주로 쓰인다.

체리 에센스와 스트로베리 후레바 T-6653, 백당이 들어 있어 체리향과 딸기맛, 흰 설탕의 단맛이 느껴져 어린이들이 먹기에도 무리가 없다.
최대 효과는 복용 후 30분~1시간 전에 나타나니, 검사 전 30분쯤에 투여할 수 있다.
시럽 1mL에는 유효성분인 포수클로랄이 100 mg이 들어있는데, 체중 당 25~50 mg 이면, 약 0.25~0.5 mL/kg를 수술이나 검사 전에 진정 목적으로 쓰는 셈이다.
그리고 하루 복용 최대 용량은 포수클로랄로서 1g, 즉 포크랄 시럽으로서는 10 mL 까지다

체중이 16 kg이라면, 4~8 mL를 보통 먹인다.


물이나 음식, 과일 주스에 섞어 먹이면 속쓰림 등의 위장장애를 예방할 수 있지만, 이렇게 섞은 약은 섞고 나서 바로 먹어야 한다.


먹였는데도, 바로 잠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어쩌긴, 또 먹여야지!

단, 수술이나 시술 전 복용하는 경우에 한 해, 30분이 지나도 잠이 들지 않으면, 딱 한 번은 더 줘도 된다.


논문에 따라서는 1일 최대 2g까지 복용하는 경우도 있고, 소아로 통칭되지만, 일반적으로 좀 큰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잘 쓰지 않는다. 건희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청소년들의 경우는 검사 시 진정이 필수적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미국에서는 허가되지 않았고, 대사 전 포수클로랄 상태에서는 약물이 체내에서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인 반감기가, 어릴수록 길고, 실제로 진정작용을 나타내는 활성 대사 물질인 trichloroethanol 은 오히려 영유아보다 어린이, 청소년일수록 더 빠르다. 속된 말로 약빨이 빨리 떨어지는 셈이다.


5살 홍건희는 모야모야병으로 2019년 7월 23일에 입원했다 - (ⓒ tvN 슬기로운의사생활)


이렇게 치홍쌤과 송화쌤의 주의 깊은 배려 아래 검사, 그리고 치료를 받았던 건희는 극의 마지막에 힘차게 울어댄다.

으앙 하고 우는 건희를 안치홍 선생님은 달래거나 놀라지 않고, 그저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건희의 엄마 아빠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데, 이건 아마도. 건희가 이제는 울어도 된다. 즉 모야모야로 인해 혈관이 좁아져서 갑작스럽게 뇌경색이 생기거나, 이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줄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대신, 행복하게 바라만 보고 함께 눈물 흘리는 사정을 모른다면 기이한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마음껏 울어 젖히는 5살 건희. 모야모야병은 울면 안 된다. 건희의 수술이 잘 끝났음을 보여주는 장면 - (ⓒ tvN 슬기로운의사생활)


어쩌면 무사히 검사를 마칠 수 있었던 데엔, 그래서 정확한 진단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던 것엔  

오렌지색 물약 "포크랄"의 마법이 조금은 통하지 않았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투덜이 김준완의 전화기 너머, 쇼크환자 치료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