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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14. 2019

인생을 싼 값에 떨이하는 사람들

“내 인생 팝니다, 내 시간 세일해요”


 소중히 여길수록 큰 보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을 소중히 대하면 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을 싼값에 파는 사람에게 인생은 그 이상 지불하지 않는다. - 나폴레온 힐


스타벅스 1+1 이벤트 줄에 서 있는 사람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배려심 없는 나에게
KTX 대신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검색해본 나에게
자신과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트루먼디에게



한번 얻어먹은 거지는 말이 많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농담이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를 장전하는 사람이 있다. 인간탱이는 이렇게 창조됐나 싶을 정도로 많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받은 서비스를 다음에 와서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와 비슷하게 공짜로 받으면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정말 많다. 공짜로 받아준 고길동에게 감사하지 못하는 둘리의 태도가 오늘의 주제다.


 숨을 들이켜 보자. 우리가 마시고 있는 공기는 공짜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5초 전에도 호흡계와 대기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받는 단타 거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기보다 더 심각한 놈이 있다.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공짜로 계속해서 주어진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고 내뱉으면서 공기의 존재와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듯이, 이놈의 흐름도 계속해서 잊고 산다.


그것은 시간이다.
둘리들아 우리의 고길동은 시간이다.



 시간은 우리한테 계속해서 주어진다. 어리석은 우리는 시간이 평생 주어질 거라 착각한다. 해결하지 못한 죽음의 두려움 때문일까. 시간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상태인 죽음은 내 삶에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일 누군가 살해당하고 사고로 죽었다 한들 죽음은 내 삶과 동떨어져 있다. 내 삶은 죽음이 접근하지 못하는 철옹성 같지만, 사실 디즈니 성이다. 겉모습은 화려한데 실제 성의 보호 기능은 없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전함을 느끼는 꼴이다. 이불속 시간이 무한하다는 환상 속에 살아가는 디즈니랜드의 어린아이는 절대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시간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와 사회생활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 속 가상 세계를 쳐다본다. 눈 앞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지만 일단 인터넷 바다에서 서핑을 한다. 오늘 하기로 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내일로 흘려보낸다. 오늘의 시간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내일은 내일의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내려온다. 이 냇물이 마르지 않을 거라 굳게 믿는다. 죽어도 100원짜리 하나만 넣으면 다시 살아나는 오락실 게임기 안의 캐릭터처럼 산다. 딱 그 정도의 진지함으로 시간을 대하고 있다.


 난 오늘도 ‘돈과 시간’에 대해 말할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와 황금률 법칙을 설명하며 우리가 대가 없이 받은 삶 속에서 시간을 보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겠다. 시간의 가치를 높여서 소득 상승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아이러니하게 정말 중요한 것은 공짜다. 지구와 생명, 태양의 빛, 평화, 어머니의 사랑, 건강한 신체 등 우리에게 대가 없이 주어진 것들을 보라. 아, 그리고 당신이 읽고 있는 이 글도 공짜다!



당신의 시계 속 시간은 얼마인가요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집중하라. 집중해서 보지 않을 것이라면 당장 폰을 끄고 당신 삶에서 소중한 것을 하라. 이 글을 보겠다면 자문해보자.


당신의 1시간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가?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에 산다. 1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따지는 것이 가장 쉬운 접근이다. 그런데 시급을 묻는 질문과는 명확히 다르다. 시급은 당신이 1시간 동안 얼마를 벌어제낄 수 있는지 능력을 나타낸다. 난 당신이 삶에서 1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묻고 있다. 1시간에 8350원을 버는 사람이 본인의 1시간의 가치는 10만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1시간을 8350원과 바꾸는 거래를 하는 건 여전히 의문이다) 자신의 시간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면서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의 애프터팁, 아버지의 비포팁


 4년 전 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 일이다. 다운타운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팁 문화가 처음이라 어떻게 팁을 줘야 하는지 헤맸다. 미국에선 팁을 줘야 한다고 들었는데, 언제 어떻게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몰랐다. 종업원이 거스름돈을 동전까지 다 주길래 머뭇거리다가 결국 팁을 못 주고 나와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상의 아시안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물어볼 걸 그랬다. ‘미국 처음인데 팁 얼마나 줘야 해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나 자신에게 당당할 걸. 식당을 나서며 마주친 종업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부루마블 하다가 내 서울 땅에 걸린 여동생 표정과 비슷했다. 여동생에게 우대권이 없었듯이 종업원 손에 팁도 없었다. 그날 이후 미국에서 팁 주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자연스레 팁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팁을 주면 내가 젠틀하고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이런 허영심 하나로 팁을 주기엔 한국문화가 쉽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어린 내가 예의를 지키면서 연장자에게 팁을 주기는 어렵다. 택시 기사님께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감사합니다~’하고 내리거나, 호텔 침대에 팁을 두고 나오는 것 정도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데 3개월 전 우라파파(우리 아빠 파파)가 팁을 주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파파와 고깃집에 갔다. 일하시는 분이 옆 테이블과 비교될 정도로 유독 친절히 챙겨주시면서 고기도 직접 구워주셨다. 아파파는 종업원 아주머니 앞치마에 현금을 찔러 넣었다. 그 뒤로 벨을 누르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서비스를 받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주목할 점은 우라파파가 팁을 준 시점, 타이밍이다. 아빠가 팁을 준 시점은 식사 초기였다. 두 번째 불판에 고기를 굽기 시작할 때, 전체 식사의 1/4 정도였다. 아직 1쿼터밖에 끝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식사 후 팁을 내거나, 한국에서 택시나 호텔에서 팁을 낼 때와는 달랐다. 나는 서비스의 종료 시점에 팁을 줬는데 아버지는 팁을 먼저 줬다.


 우라파파와 불효자가 준 팁의 차이는 시점뿐인데, 이는 팁의 의미와 성격마저 변화시켰다. 아빠와 나의 팁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나의 팁은 ‘좋은 서비스를 받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의 의미다. 그럼 파파의 팁은 종업원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그리고 아빠처럼 먼저 팁을 꽂아주는 사람과, 나처럼 서비스 종료 시에 팁을 지급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편의상 파파의 팁을 ‘비포팁’, 불효자의 팁을 ‘애프터팁’이라고 부르자.


 나처럼 서비스를 다 받고 팁을 지급하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종업원은 팁을 받기 위해 더 좋은 서비스를 주려 하고, 좋은 서비스를 받아서 기분 좋은 손님이 더 많은 팁을 준다는 생각이다. 애프터팁의 기저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날 위한 서비스를 많이 보여줘라. 네가 날 만족시킨 만큼 팁을 주겠다.’



Golden Rule, Give & Take


 그리스도교의 황금률은 인류 사회에 오랫동안 보편적인 법칙으로 인정받았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친구가 너한테 이렇게 하면 좋겠어?” “힝” 역지사지와 함께 황금률은 어린 시절부터 훈육당하며 많이 들어왔다. 진지한 자세로 직접 황금률을 접한 건 성인이 되어서다. 성공하고 싶어서 잘하고 싶어서 자라고 싶어서 황금률을 품고 살아온 지 7년째다. 황금률의 표면적 의미를 넘어 보다 진지하게 이해한 것을 나눠본다. ‘나에게 먼저 집중하기’ ‘내가 먼저 하기’ ‘모든 관계에 적용하기’ 이렇게 세 가지다.


 1) 나에게 먼저 집중하기

 황금률을 이행하기 위해 다음의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먼저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하란대로 숙제하고 공부해온 우리는 대학 전공도 스스로 정하지 못할 만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모른다. 그런데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라는 ‘관계’, 직장을 떠나는 이유인 ‘관계’에 대해 황금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낼 것을 요구한다. ‘사랑받고 싶다, 관심받고 싶다’ 정도로는 부족하다. 직접 남에게 실천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는 예수의 다른 가르침인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와도 연결된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다음에 심도 있게 다뤄보자.


 2) 내가 먼저 하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다음은 상대방을 ‘먼저’ 대접해야 한다. 생일에 선물을 받고 싶다면 먼저 친구의 생일을 챙겨라.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남에게 대접하고 주어야 나도 받을 수 있다. “외롭다, 참 외롭다”면서 씨를 뱉는 사람을 보면 꼭 친구들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더라. 그들은 남이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이 버억 먹고 숨바꼭질하면서 술래는 남을 시킨다. 황금률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라. 나는 먼저 주고난 후 받는 것을 ‘Give & Take’ 법칙이라 부른다.


 3) 모든 관계에 적용하기

 황금률은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공식이 아니다. 자연의 법칙이라 믿는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면 친절이 되돌아온다. 이것만 깨달아도 삶이 크게 바뀐다. 더 나아가 이쁜 말을 들은 식물이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란 식물보다 더 건강하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연구결과가 있다. 욕을 들으면 물의 결정이 깨진다는 말도, 논두렁길 주변에 있는 벼가 주인의 소리를 들어 키가 더 크다는 말도 들어봤다.


  황금률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돈과 시간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시간을 소중히 보살피면 시간이 당신의 삶을 극진히 보살펴준다. 당신은 시간과 더 친해질 수 있다. 돈도 마찬가지다. 적은 돈을 부질없는 욕망으로부터 지켜주면 큰돈으로 보답한다. '이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친구를 데려온다. 돈은 자신을 홀대하는 사람에게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로 늘 이동한다. 돈은 그렇게 움직인다. 돈을 홀대하는 사람은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몽둥이로 돈을 내쫓아버리고 돈의 가치를 인정하는 인자한 사람이 그 돈을 받아준다.



바보 같은 소리지만 당연한 말


 처음 질문은 조금 생각해보았는가? 자기 계발에 관심 없다면 이런 생각을 할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번 글을 읽으며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당신의 1시간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당신의 1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기로 결정했는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살펴봤다. 고길동의 호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둘리,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지 않는 불효자의 애프터팁, 신망이 두터운 우라파파의 비포팁, 그리스도교의 황금률, 제발 먼저 하라고 말하는 Give & Take. 뿌린 떡밥을 회수하러 가보자. 뿌린 대로 거둬 보자.


 1) 나에게 먼저 집중하기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적용하기 위해 우선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남이 나의 1시간에 대해 멋대로 정해놓은 금액을 내 시간의 가치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당신이 정하지 않으면 평생 남이 정해준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가격 결정은 절대 당신 삶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죽지 않을 정도로 삶을 연명할 수준에서 값을 정한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은 황금률에 어긋난다. 먼저 당신 마음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의 1시간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둘 것인가? 이 질문은 경제적 자유로 나아가는 위대한 첫걸음이다.


 2) 내가 먼저 하기

  황금률을 따르는 삶은 내가 ‘먼저’ 베푸는 삶이다. 나처럼 배부를 때 트림하면서 팁을 주지 말고, 미리 주자. 먼저 팁을 받은 종업원은 메뉴 선택을 친절하게 도울 것이고 당신의 저녁 식사 시간을 악의 무리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황금률은 단순히 금전적 거래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식이 맛있었다면 칭찬하라. 그것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칭찬하라. 직장 동료와 친구에게도 감사의 표현을 하고 그들의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하라. 인간적 결함이 보이면 그 단점을 문제 삼는 나의 좁은 아량을 탓하자. 그들의 말과 행동에 다른 뜻이 있을 거라 넘겨짚지 말자. 그러면 당신의 동료도 당신을 편견 없이 대할 것이며 오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니체는 ‘아침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인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 것. 타인을 평가하지도 말 것. 타인에 대한 소문도 입에 담지 말 것. 그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생각도 애당초 하지 말 것. 그 같은 상상이나 사고를 가급적 하지 말 것. 이 같은 것에 좋은 인간성의 상징이 있다. / 시라토리 하루히코 초역


 3) 모든 관계에 적용하기

  황금률은 모든 것에 적용된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돈과 시간과의 관계도 황금률의 법칙 아래 있다. 시간은 무자비한 냉혈한이다. 울고 불고 사정해도 1초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이란 놈에게 Take & Give 할 생각 말고 먼저 줘야 한다. 당신이 시간에게 받고 싶은 것을 알았다면 그대로 먼저 해줘라.

 

 절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책 읽을 시간이 없어’ ‘공부할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딴 변명거리가 마음을 잠식할 때 방관하지 마라. 자비 없는 시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시간에게 당당히 구하라.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지닌 사람처럼 요구하라. 시간을 소중히 대하고 협조적인 태도로 나아가라. 시간은 분명 지금보다 많은 것을 줄 것이다.



 흐르는 시간의 강에서 감사의 배를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강을 보면 형태는 비슷해도 물은 계속 움직인다. 똑같은 강에 돌을 두 번 던질 수 없듯 강은 한사코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 우리는 강 같은 시간 위에 있다.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며 저항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고 저 멀리 파란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어리석은 나는 강물의 흐름보다 빨리 가고 싶은 조바심에 자꾸 밑으로 빠진다. 확신이 적어 불안해서 그렇다. 믿음이 작은 자다.


 흘러가는 시간의 물결 위에서 감사의 배를 타길 바란다. 공기처럼 끊임없이 흘러오는 시간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가라. 자세한 지도는 없어도 목적지는 있어야 한다. 이불을 덮어쓰고 나와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지 마라.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자신의 방향을 조정하기 위해 그날 해야 하는 노를 저어라. 미루지 마라. 강 끝에 폭포가 있어 언젠가 죽는다며 포기하지 마라.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채찍질하지 마라. 종말론적 사고를 거두고 현재에 충실하며 기쁨을 느껴라.


 옆에 가는 배가 보이면 먼저 인사를 건네라. 당신이 친절하면 상대방도 친절할 것이다. 수리가 필요한 배, 점검이 필요한 배가 보이면 즉시 도와줘라. 아까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도와라. 사실 남을 제대로 도울 기회는 별로 없다. 보답받겠다는 마음만 없다면 어떤 형태로든 보답받는다. 하지만 배가 부서진 자들을 모두 구하겠다고 덤벼들지 마라. 그들을 모두 건져내 당신 배에 태우면 배는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신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헤엄칠 능력이다.


 흐르는 물결에 감사의 배를 띄워라. 매일의 삶에 책임감을 갖고 노를 저어 당신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라.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부가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은 ‘감사’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신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풍요로움과는 인연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 조셉 머피(성직자이자 작가, 1898~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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