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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Nov 15. 2019

부자 되기 vs 행복하기. 주인과 손님이 뒤바뀐 삶.

주객전도의 추악함. 에네르게이아와 피아니시모. 내적•외적 동기 과정 중심

RPG 게임 레벨업을 위한 사냥
솔로 탈출을 위한 연애
인싸를 위한 인간관계
다독을 위한 독서
욕망을 위한 욕망
창업을 위한 창업
행복하지 않은 부자가 되는 과정

희미한 문제가 막연하게 느껴진다
명확하게 하나씩 뜯어보자




글의 구성

1. 글을 쓰는 이유 / Intro

2. 주인 놈아, 밥 가져와라 / Problem

3. 마음 안의 동기, 마음 밖의 동기 / Cause

4. 껍데기는 가라 / Problem 2

5. 과정, 여리게 춤을 춰라 / Solution

6. 삶이라는 선물 / Outro


아득바득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어깨의 긴장이 풀리지 않는 분에게
피아노는 없고 포르테만 남은 나에게
부자가 되면 행복할 거라 믿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갉아먹으며 부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분께


 [잠언과 화살] 6. 사람들이 자신의 부자연스러운 상태로부터, 즉 자신의 정신성으로부터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거친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1. 글을 쓰는 이유 / Intro


 글이 조금 짧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는다. 이와 동시에 개의치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쓰라는 조언도 받았다. 글의 길이를 고민하면서 글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Silverback 이란 필명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왜 읽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건방진 표현으로 당신을 위해 쓴 글이 아니다.


 타인을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글의 길이를 줄이지 않겠다는 퉁명스러운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싶다. 글의 길이를 줄이지 않는 이유는 시선을 의식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다. 계속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 결국 글의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글쓰기가 중단된다.


 필자는 그러한 경험이 있다. 콘텐츠 생산은 브런치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페이스북에서 카드뉴스를 제작했고 2018년 10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유튜브 채널도 운영했다. 매주 2회 이상 꾸준히 업로드하며 운영했다. 2017년 4월부터는 콘텐츠와 관련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생산한 목적은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의 정례화와 가속화였다. 이를 위해 꾸준함은 생명이다. 콘텐츠로 수익을 발생시키는 비즈니스에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사이클(순환 과정)은 필수다. 그런데 반복되는 데드라인(마감) 속에서 살다 보면 의무방어가 생기기 마련이다. 매번 영과 혼을 쏟아낼 수 없다.


 뉴스를 예로 들어보자. 이슈가 되는 사건은 규칙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건은 한 달에 100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음 달엔 10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방송이나 신문은 매일 매주 고정된 분량의 콘텐츠를 규칙적으로 생산한다. 그리고 정량적으로 꾸준히 방영, 발간된다.


 뉴스의 사건처럼 성장도 그렇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통찰과 지혜를 얻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은 불규칙적으로 발생한다. 강제로 1주일에 책을 1권 이상 독서할 수 있어도 깨달음은 통제할 수 없다. 지식 습득은 규칙적으로 해도 성장은 예측할 수 없다. 독서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쓰기는 과거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의 콘텐츠 생산과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직 삶의 정수를 담아내기 위함이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로 쓰인 글이 타인에게 가치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와 브런치에 글을 쓸 때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지금은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지 않는다. 이번 글이 조회수를 얼마나 기록했는지, 조회수 대비 좋아요나 공유수를 확인하지 않는다.


 조회수 등 통계치를 보지 않는 이유는 '주객전도'를 막기 위함이다. 삶의 정수를 활자에 담아내겠다는 내적 동기로 쓰기 시작한 글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을 고려하고 의식하는 순간부터 부자연스러워진다. 이번 글이 저번 글보다 조회수나 좋아요 수가 적다면, 그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선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면 잘 팔리는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글쓰기에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나의 경우엔 그렇다. 눈치 보는 사람의 말과 행동처럼 글의 개성과 색깔이 옅어진다. 독자들이 글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독자를 타게팅해두고 시작한 글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2주나 1달마다 글을 한 편씩 쓸까' 생각해봤지만 그만뒀다. 그렇게 하면 결국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성장은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마치고 나면, 다음 글의 주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글을 쓰기 위한 글의 주제를 가져온다.


 삶의 통찰과 지혜와 성장을 담은 글이 아닌,
글을 쓰기 위한 글.
정기적인 업로드를 위한 글.
목적과 수단이, 주인과 손님이 바뀐 것이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글쓰기의 형태가 있다. 어린아이가 벽에 자라나는 키를 그어두는 것.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 어린아이가 찰흙을 조물딱 거리며 자신만의 찰흙 괴수를 만드는 것.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 전력을 쏟고 싶다. 그렇게 내가 쓴 글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니체는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책을 쓴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다. 독자보다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통해 자기를 극복했다는 일종의 증거다. 낡은 자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인간으로 탈피했다는 증거다. 나아가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 극복을 이룬 본보기를 제시함으로써 누군가를 격려하고자 함이요, 겸허히 독자의 인생에 보탬이 되려는 봉사이기도 하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편역


 이번 글의 주제는 '주객전도'다. 독자를 의식하고 정기적인 업로드를 위한, 글을 쓰기 위한 글. 이러한 주객전도는 글쓰기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나는 이 주객전도를 8살 때 게임 '삼국군영전'에서 처음 접했으며 잇따라 '메이플스토리'에서도 경험했다. 성인이 되어 독서와 인간관계에서도 주객전도가 일어났고 현재는 삶 전체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독자들의 삶에도 '주객전도'가 있다고 확신한다. 재미있게 흥미를 갖고 시작한 일이 반복되면서 의미와 이유를 잃어버린다.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하는 짐이 된다. 또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한 돈벌이가 당신의 건강과 관계와 삶을 망치고 있지 않은지 함께 되짚어 보자.


TMI)
 필자 실버백은 글의 길이를 줄이지 않는 대신 글의 구성에 더욱 신경 쓰기로 합의를 봤다. 글을 스쿼트 시키고 있다, 탄탄해지도록. 늘 조언을 주시는 김 소설가·만화가님께 감사를 드린다.


타이거 집에 사는 똘이.


2. 주인 놈아, 밥 가져와라 / Problem

 

 본격적으로 주객전도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주객전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가지 예화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게임을 하면서 직접 겪은 주객전도 경험이다. 두 번째는 동네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짧은 이야기다.


2-1. 게임이 재미없어질 때


 주객전도의 문제는 게임에서 처음 발생했다. 메이플스토리를 시작할 때가 생각난다. 캐릭터를 만들고, 아니 먼저 주사위를 굴려야 한다. 필요 없는 능력치 2개가 4, 4로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계속해서 굴린 다음, 더벅머리를 선택한다(토벤머리는 아무도 안 했다). 직업은 레벨 10이 되어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몽둥이나 검이나 도끼로 달팽이를 때려잡는다.


 레벨업을 하고 능력치를 올리고 직업을 선택한다. 원하는 스킬을 습득해 연마해나간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글을 쓰면서도 신이 난다. 이건 카트라이트도 그렇고 던전앤파이터도 디아블로도 그렇다. 마니아층이 향유하는 고급 취향이 없어서일까. 나는 게임을 할 때 처음이 제일 재미있다.


 게임의 재미는 언제 사라지는가? 시작할 때 자연스러운 내면의 설렘과 흥미에서 멀어질 때다.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 아바타가 성장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을 중지할 때다. 바로 다른 것에 집중할 때다. 재료 몇 백개를 모아 와야 하는 퀘스트 달성에 몰입하거나 레벨업을 하기 위해 지루한 사냥을 반복할 때다.


 한 가지 방법으로 한 자리에서 한 가지 몬스터를 계속해서 때려잡는다. 한 손가락은 공격 스킬 버튼, 다른 한 손가락은 물약, 포션을 들이켜고 있다. 몬스터를 한 마리 잡을 때마다 경험치가 0.001%씩 오른다. 그러다 보니 공동의 사냥터에서 자신의 독점적 권리를 주창한다.


 게임의 목적이 변질됐다. 학교와 학원에서 지겹게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단어를 암기했다. 지루한 현실세계에서 게임 속으로 도피했지만 여전히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선생님 같은 NPC가 내주는 숙제를 해온다. 캐릭터를 키우는 한 가지 '답'을 쫓아 모든 캐릭터들이 획일화된다.


 결국 게임이 재미없어진다. 흥미가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을 주객전도라 부르고 싶다. 내적 동기가 외적 동기에게 잡아먹혔기 때문일까. 동기의 변화를 이어지는 사례에서 살펴보자. 다음 이야기는 박세니 강사가 들려준 예화를 각색했다.



2-2. 프로가 된 아이들


 어느 마을에 시끄럽게 떠드는 꼬마 아이들이 있었다. 마을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소음을 만드는 아이들 때문에 주민들은 괴로워했다. 그때 마침, 한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이 떠드는 게 너무 좋단다. 내 눈에 어찌나 아름다운지. 혹시 우리 집 앞에서만 떠들어줄 수 없겠니?"


 아이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자신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것을 마을 어른들은 싫어했는데, 할아버지는 다른 태도였다. 아이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얘들아, 우리 집 앞에서만 떠들어다오. 만약 그렇게 해준다면, 이 할아비가 용돈으로 하루에 500원씩 주마."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뒤로 할아버지 집 앞에서만 시끄럽게 떠들면서 놀았다.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고 떡볶이도 사 먹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점점 용돈의 액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처음 500원씩 주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400원, 어느 날 300원, 200원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얘들아. 할아버지가 이제 돈이 부족해서 용돈을 주기가 힘들구나. 그런데 나는 너희들이 우리 집 앞에서 떠드는 걸 보면 참 행복해. 돈은 줄 수 없지만 우리 집 앞에서 떠들어주면 안 되겠니?"


  아이들은 단호하게 답했다.

 "싫어요! 우리가 떠드는 것을 보려면 돈을 주세요!"

 

 할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아이들은 이제 할아버지 집 앞에서 떠들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떠들면 마을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지만 할아버지의 집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따뜻한 햇살 아래서 독서를 시작했다. 주변은 조용했다. 평화를 되찾았다. 미소를 짓고 안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책을 넘겼다.

 


3. 마음 안의 동기, 마음 밖의 동기 / Cause


 동기의 변화가 드러나는 이야기를 살펴봤다. 메이플스토리를 하던 어린 필자와, 동네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동기가 변했다. 내적 동기에서 외적 동기로. 순수하게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인정이나 돈이 따라오면서 행동하는 이유가 바뀌었다.


 처음에 시작했던 게임의 재미가 없어진다. 브런치에서 이런 주객전도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페이스북에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할 때, 그 자체가 재미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의미를 느꼈다. 그런데 점점 많은 좋아요를 받아가면서 게시물의 반응에 초점이 맞춰졌다. 좋아요 개수가 평소보다 적게 나오면 게시물을 '잘 못'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언짢았다.


 이어진 예화 속 아이들도 나와 같다. 자발적으로 떠들던 아이들이 돈 때문에 변했다. 마을을 구석구석 다니며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이 돈의 맛을 봤다. 자발성은 외부 요인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돈을 주지 않으니 하기 싫어졌다. 아이들은 프로가 됐다.


 우리의 안타까운 학창 시절을 되돌아본다. 고등학생 시절 수능을 준비할 때, 내적 동기가 더 존중받았다면 보다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저 상대평가 시스템 안에서 높은 등수를 받기 위해, 남들보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애썼다. 증명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공부였다면 좋았을 텐데.


 고영성 작가와 신영준 박사는 저서 <완벽한 공부법>에서 성장 목표증명 목표, 내재적 동기외재적 동기에 대해 설명한다.


 성장 목표증명 목표에 대해 고 작가와 신 박사는 "책을 읽고 지적인 성장을 꾀하려는 것이라면 '성장 목표'를 가진 것이고,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하거나 남들이 다 보기 때문에 보는 것이라면 '증명 목표'를 가진 것"이라며, "학습자는 증명 목표보다 성장 목표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학업성취도뿐만 아니라 행복한 인생에도 무조건 유리하다"고 말한다.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와 관련해 고 작가와 신 박사는 "내재적 동기는 만족 경쟁력 흥미 학습 도전 등 강압 없이 스스로 원해서 행동에 참여하는 것인 반면, 외재적 동기는 칭찬 성적 특혜 자격증 물질적인 보상 같은 외부적인 이유로 참여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외재적 동기보다는 내재적 동기가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증명 목표보다는 성장 목표가, 외재적 동기보다는 내재적 동기가 더 중요해 보인다. '주객전도'란 행동의 이유가 증명 목표나 외재적 동기로 변질돼 괴로운 현상이다. 그렇다면 성장 목표와 내재적 동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언제나 옳을까? 외재적 동기 없이 100% 내재적 동기만을 가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고 작가와 신 박사는 "성장 목표와 증명 목표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모두를 가질 확률이 높다"며,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가 극단적인 반대 유형이고 양립 불가능한 관계라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외적 동기가 언제나 나쁘다고 단정 짓는 것도 옳지 않다. 순수하게 내적 동기만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외적 동기에 의해 내적 동기가 훼손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두 가지 동기의 시너지를 기대해야 한다.


 주객전도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들을 살펴봤고, 주객전도가 발생하는 원인을 동기에서 찾았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보기 전에 주객전도의 문제를 좀 더 긁어보자. 이가 근질근질하다.



4. 껍데기는 가라 / Problem 2


 주객전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것을 지켜본다. 인터넷 상에 떠돌아다니는 연애 관련 팁과 인싸 되는 방법, 독서에 대한 세태 등. 주객전도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분야는 시간을 가장 많이 쏟는 일의 영역이다. 사랑 관계 성장 일, 우리 삶의 중심으로 주객전도 문제를 확장시켜보자.


  4-1. 인싸를 위한 관계, 다독을 위한 독서


 온라인에서 연애나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들을 보면 당황스럽다. 상대방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사랑하라는 건강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타인에게 원하는 말을 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라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같이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다.


 단순히 조회수를 위한 콘텐츠였을까. 그들에게 연애는 오로지 솔로 탈출을 위한 방편이고, 인간관계는 사회적 지위의 측정 기준이다. 이성친구 '한 번' 사귀어 모태솔로를 탈출하기 위한 편법이 소개된다. 또는 아싸를 벗어나기 위한(사실 아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 거론된다.


 저렴하고 피상적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친구가 많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보이기 위한 방법들이다. 자신이 어떤 관계를 가질 때 행복한지 고려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맺은 관계가 어떤 관계상을 정립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헤아리지 않은 증명 목표다. 사람을 자신의 지위 상승 수단으로 여기는 점이 돼지 껍데기 같다.


본질은 어디 가고
피상만 남아 있나
 

 독서에 대한 세태도 그렇다. 베스트셀러를 읽고 SNS에 증명한다. 자기만족을 위한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일까. 서점과 도서관에서 자신만의 취향으로 책을 고르지 않는다. 어떤 책이 많이 팔렸는지, 어떤 책이 높이 평가받았는지 끊임없이 타인을 생각한다.


 다독에 대한 선망과 오해도 있다. 다독만을 위한 독서가 정상적인 독서가 될 수 있을까. 한 권, 한 권을 정성 들여 읽다가 쌓인 책더미를 뒤돌아볼 때 다독이 아닌가. 다독을 위한 독서는 전교 1등의 수업을 따라 듣고 필기를 베끼는 것과 같다. 자신이 공부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이, 주체적으로 독서하지 않으면 삶이 변하지 않는다.


 독서는 경험이고 체험이다. 수업을 많이 들으면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할 수 있어도 체험은 다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활동을 했다 한들 많은 경험이 쌓이지 않는다. 사실 한 권의 책을 읽고 감명받으면 사고방식이 변한다. 행동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


 한 권의 책으로 변화한 자신을 보면 정독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조급함을 버리고 진지해진다. 완독 후 어서 '읽은 책' 목록에 넣고, SNS에 증명하고 싶은 욕구는 사라진다. 오히려 맛집을 소개하듯 새로 배운 내용을 친구한테 말해주고 싶다. 증명 욕구의 빈자리를 질문이 채운다. 저자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인간관계와 독서는 삶에서 참 중요한 부분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느낌, 내가 더 나아지고 있는 느낌은 삶을 행복하게 한다. 우리는 관계와 독서에 주객전도 당하지 않았던 순수한 때를 기억한다. 유치원에서 아무 이유 없이 친구를 좋아했다.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의 표지만을 보고 사달라고 떼썼다.



 4-2.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까


 주객전도는 관계와 성장의 영역을 넘어 경제적인 분야에서도 발생한다. 경제 분야의 주객전도는 삶의 풍성함과 윤택함을 메마르게 한다. 인간은 일을 하면서 활력을 얻는 만큼 주객전도는 사람을 좀비로 만든다. 무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출퇴근하는 쳇바퀴 일상을 반복시킨다. 삶이 팍팍해진다.


 학창 시절, 우리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을 받았다. 부모님은 우리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셨다. 그 이유가 뭘까.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부모님은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든, 고되지 않은 직업을 갖길 원하셨다.


 그러나 직업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그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화이트 칼라가 되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한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멋있으니까 노력한다. 부모님의 욕망을 욕망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책상에 앉는다.


 노력하는 이유가 변질됐다. 부모님은 자녀가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즉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리길 바라는 것이 첫 번째였다. 학생들은 다른 이유로 공부한다.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핀트가 다른 곳에 맞춰졌다. 경제적인 이유가 증명 욕구와 인정 욕구로 변화했다.


 학창 시절 겪은 이 동기의 변화는 성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이 되어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진다. 개인적인 자립과 일을 통한 의미의 발견도 있지만, 기본적인 목적은 경제적인 활동이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부족 사회에서 함께 공동 사냥이나 채집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한 삶을 살 수 있다. 자유 시간이 생기고, 원하는 것을 상당 부분 쉽게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모자라지 않는 돈을 갖고 싶어 한다.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건물주를 높이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이는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두고 일을 한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자기 계발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영어학원에 간다. 상사에게 인정받아 승진하기 위해 야근을 한다. 동료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 주말에 거래처 사람들과 골프를 친다.


 퇴근 후 집에서 일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밖에 못 해?' 상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일 처리할 업무들을 생각하며 잠에 든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꿈에서 깨면 사무실로 출근한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들과 보낼 시간은 줄어든다. 부모님이 지방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내려가기엔 시간이 많이 든다.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여자 친구가 기대를 거두기 시작한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우리는 왜 돈을 벌고 싶어 했던 걸까. 왜 부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부자가 된 후에도 행복하지 못할 거다. 그러니 부자든 가난하든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 로버트 기요사키, <부자 아빠의 자녀 교육법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4>



5. 과정, 여리게 춤을 춰라 / Solution


 주객전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의 첫 재미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 집 앞에서 떠드는 것이 계속 재미있을 수 없을까. 인싸 아싸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없을까. 완독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읽고 싶은 만큼 독서하고 성장할 수 없을까. 돈 버는 일에 함몰되지 않고 삶의 행복과 자유를 지켜낼 수 있을까.


 내적 동기인 나의 꿈을 좇고 싶다. 동시에 외적 동기인 바람직한 성과와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기고 싶다. 이 과정에서 주객전도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고 염려하며 계획을 세운 후 자책과 반성을 한다. 이 조급함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자의식 과잉, 과민성 대장 증후군, 신경증, 게실염, 편두통, 수면 장애, 결막염, 불안 장애, 우울증, 인후염, 과식과 폭음, 만성 두드러기를 겪으며 발견한 4가지의 방법들을 소개한다. 가치 중심주의, 에네르게이아, 피아니시모, 과정 중심주의.



 5-1) 발루에 포웨르, Value Power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이 일이 타인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내가 속한 조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사회에 공헌하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봐야 한다. 얼마나 소중한 일을 맡고 있는지 잊지 말자.


 후원금을 조달하는 한 비영리 기구가 있다. 전화 통화로 후원자를 찾는 상담원들을 위해 발표회를 가졌다. 그 조직의 후원을 받아 삶이 변한 사람이 찾아와 정기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후원금 조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상담원들이 본인이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체감한 결과다.


 자신이 창출하는 가치를 보면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열정은 식어 걱정이 된다. 초기에 가졌던 긴장감과 낯섦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심을 잃었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문제는 가치 창출에서 벗어난 주객전도다.


 맛있는 쿠키로 기쁨을 전달하던 제빵사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변한다.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열겠다는 음악가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초심을 잃는다. 콘텐츠를 만들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겠다는 놈은 좋아요를 받기 시작하면서 목적이 바뀐다. 결연한 다짐은 사라지고 돈과 인정과 좋아요에 관심이 쏠린다. 굳게 쥔 손은 펴지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깨와 턱이 치솟는다.


 '변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환경은 계속해서 변하고 사람도 변화한다. 우리가 창출하는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일로 미소 짓는 사람들의 행복에서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일의 고귀한 면을 계속해서 주시해야 한다.



5-2) 춤을 추는 인생, 에네르게이아


 외적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보다 내적 동기로 활동하는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증명 욕구로 움직일 때보다 성장 욕구로 즐기며 일할 때 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 돈이나 인정,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 자신이 좋아서 할 때 높은 집중력과 성과가 따라온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지지자는 불여호지자요, 호지자는 불여락지자니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
 - 공자, <논어>


 외적 동기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목적을 갖고 있다. 사소하게 무심코 하는 행동도 모두 가치체계에 의해 결정됐다. 이 인과관계를 유심히 관찰해보자.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설명하지 못해도 분명 이유가 있다. 왜 그 행동을 하는지 동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는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아들러 심리학을 소개하면서 '춤을 추는 인생, 에네르게이아(energeia)'를 설명한다.


 이 책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방식으로 쓰였다. 철학자는 청년에게 인생을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등산, '선'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연속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갈 것을 권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인생이 아니라 현재의 자리에서 춤을 추라고 조언한다.


 춤을 출 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춤을 추면서 어디론가 가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
 그래도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


 목표는 언제나 있어야 한다.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른 계획이 동반돼야 한다. 그리고 계획에 맞춰 하루를 온전히 바쳐야 한다. 하지만 목표가 언젠가 산이 되었고 우리는 고된 길을 등산하기 시작했다. 삶이라는 선물을 두고 여행하지 않는다. 목적지를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찍고 오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즐겁지 않다.


 주객전도를 처음 접했던 메이플스토리의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자. 게임의 재미가 사라질 때는 아바타의 모험이 중지될 때다. 레벨업을 하고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게임을 하게 되면 재미가 없어진다. 삶에서 발생하는 주객전도는 게임의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호기심 많은 나에게 인생은 항상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모르는 것들을 끊임없이 질문해나갔다. 그런데 목표가 생겼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능. 입사와 면접 등의 퀘스트가 주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캐릭터처럼 직업을 선택한다.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워 달리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인생이 실패하는 것 같다. 인지조차 하지 못한 내면의 두려움을 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조급함을 원동력 삼아 달린다. 채찍질한다.


게임 캐릭터가 됐다
분신과 화신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된
아바타, Avatar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5-3) 매우 여리게, 피아니시모


 스트레스가 나를 잡아먹는다. 만성 두드러기가 상체를 장악하고 얼굴로 올라오려고 할 때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어떻게든 긴장을 풀고 현재를 즐겨야만 했다. 목표지향적으로 남들보다 추진력 있고 끈기 있게 나아갔지만 어느새 휴가에 쉬는 법도 잊어버렸다.


 춤을 추듯 사는 인생, 에네르게이아와 함께 전하고 싶은 것이 '피아니시모'다. 악보상에서 'pp'로 표현되는 pianissimo'아주 여리게' 연주하라는 의미다.


pianissimo
아주 여리게


 임동민 피아니스트가 음대 학생을 코치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봤다. 임동민 피아니스트는 학생에게 "너무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만 치는데 음악은 포인트가 중요하다"며, '피아노'(여리게)를 강조했다. 강조할 부분에서만 강하게 치고, 평소에는 여리게 치라는 의미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주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학생의 연주는 내 삶과 닮았다. 수면 시간을 줄이고 식사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죽어라 달리는 모습. 주마가편,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며 목표를 이뤄내겠다고 이를 잘근잘근 씹던 나의 태도였다. 피아노, 여리게 연주하라는 가르침을 내 삶에도 접목하기로 했다.


 이후 '피아니시모'를 되새기며 의식적으로 힘을 뺐다. '허슬'을 큰 장점으로 여겨온 내가 힘을 빼는 건 쉽지 않았다. 정공법,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열심'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나의 삶과 경기의 방식이었다.


 힘을 뺀 빈자리엔 '샤프함'이 채워졌다. 힘을 빼면 늘어지는 부분을 날카로움이 대신했다. 부자연스럽고 둔탁한 소리를 내던 삶이 경쾌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니터로 들어갈 것 같던 거북목은 고정됐고, 키보드를 부술 정도로 강하게 치던 손가락이 가볍게 날아다녔다.


 춤을 추듯 삶을 살라는 에네르게이아와, 힘을 빼고 아주 여리게 삶을 연주하라는 피아니시모의 태도는 내 삶을 바꿨다. 아직 완전히 호전되지 않았지만 건강도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 지금 집중하고 있다면 고개를 한번 돌려주자. 어깨에 힘을 빼고 턱을 안쪽으로 당기자.



5-4) 과정 중심주의


 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춤추듯 사는 에네르게이아, 힘을 빼는 피아니시모는 하나의 결과로 나타난다. 과정 중심주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다. 좋은 결과가 나와야만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 과정 속에서 이미 행복해야 한다.


 성수역 앞에서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고가도로 위를 지나는 지하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엄마! 저기 지하철 가!"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지하철을 보지 않고 무심하게 "응~"하고 답했다. 아이는 다시 외쳤다. "엄마, 지하철! 지하철!!" 아이에게 지하철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은 굉장히 놀랍고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저 아이처럼 지냈다. 삶을 여행했다. 해외에 나가면 지하철 역부터 신기하다. 현지인들에겐 일상이지만 색다른 건물양식과 자동차들, 사람들의 패션들이 이뤄내는 이색적인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이는 집 밖으로 나가면 해외여행을 시작한다. 모든 삶을 여행하듯 산다.


 이러한 어린아이의 태도를 회복해야 한다. 목적지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 과정 중심주의. 목표를 세워 노력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목표에 함몰돼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면 안 된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여리게 춤을 추며 삶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성공으로 가는 길이 좁아질까 염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다.


 엠제이 드마코는 <부의 추월차선>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사고방식으로 '과정 중심주의'를 강조한다. 그는 "백만장자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부를 얻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라며, "대부분은 과정을 무시한 채 특정 사건에 집착한 나머지 부를 놓치곤 한다"고 지적한다.

 20세 청년이 세운 인터넷 회사를 3,000만 달러에 팔았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청년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코딩과 씨름하며 보내야만 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다. 그 청년이 창고에서 일하며 보낸 춥고 어두운 나날에 대해, 그 회사가 이율 21.99% 신용카드 대출금을 자본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듣지 못한다.
 내가 회사를 매각한 일은 하나의 사건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그 성과는 과정이 있었기에 존재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좋은 집과 비싼 차를 보며 '우와, 나도 저 사람처럼 운이 좋았더라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은 과정이 아닌 결과의 신기루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과정 즉, 도전과 위험, 노력과 희생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한다. 과정을 건너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6. 삶이라는 선물 / Outro


 전례 없는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다. 특히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자유가 보장돼 있다. 이웃 나라처럼 검열이 심하지도 않고 테러의 위험도 적다. 치안도 상당하고 민주주의가 발달돼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사회다. 완벽히 공정하진 않더라도 과거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땐 상당히 훌륭한 사회에 살고 있다.


 기근과 전염병에 대한 걱정도 없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던 절대적 빈곤의 시대도 지났다. 여전히 물가는 높고 취업하긴 어렵고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따기이며 N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어휘도 있지만, 감사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고, 나의 글도 쓸 수 있는 삶에 감사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한 삶이 찾아왔다. 시계의 발달로 더 초조해졌으며 이동 수단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계속 일할 수 있다. 지식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다른 문제들이 생겼다. 정신적인 문제다.


 우울증, 불안 장애 등 정신적인 문제로 병원을 찾는 친구들이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 약을 처방받아 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적인 근원의 해결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마인드의 문제. 정신과 사고와 생각의 문제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가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은 생각을 바꿈으로써 거의 대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들 말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읽고 싶은 책들이 눈앞 서재에 꽂혀 있다. 세계사도 처음부터 다시 훑고 싶고 인류학도 공부하고 싶다. 타악기도 배워보고 싶고 커피도 내리고 싶다. 경제학과 금융, 미래학도 공부하고 싶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미래가 기대되는 친구들이 있다. 덕분에 인생에 기대감을 갖는다.


 이어령 선생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삶이 선물이라고 고백했다.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선물로 주어진 행복한 인생을 누리길 바란다. 잘못된 비교의식과 열등감 콤플렉스, 자기 연민에 빠져 불행하게 살지 않길 바란다. 사회와 언론이 만들어낸 왜곡된 인식으로 답 없는 문제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않길 바란다.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며 괴로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길 바란다. 지금 여기에서 삶이라는 선물을 즐기시길 바란다.


 나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조금 더 긴장을 풀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축복한다.


목적지에 잘 도착하는 것보다는 여행하는 동안 즐거운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은가.
  -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by Silver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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