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드와 재킷
나폴리에 돌아왔다. 6개월 만이다. 감회가 새롭다. 우선 스꾸데또가 확실시 된 모양새다. 하늘색 휘장이 도시 전체를 잠식해 가고 있다. 33년 만의 대축제다. 일부이지만 도시 곳곳의 길바닥이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라인 1 지하철은 그라피티로 뒤덮인 낡고 작은 전동차를 깔끔하고 기다란 새 모델로 갈아치웠다. 삶은 작은 극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나폴레탄들은 전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며 Bella Figura(좋은 인상/good impression/예의범절/eccetera, eccetera...)의 연기를 준비 중이다.
내 눈은 다시금 그들의 옷차림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중해를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근 3000년을 보낸 도시(오는 침략자를 제대로 막아낸 역사가 없는) 나폴리가 세계적 유행에 열려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도 Gen Z 특유의 실루엣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물 간’ 밀레니얼들의 10, 20대 시절 유행, 슬림/스키니 바지를 와이드 핏+ 긴 기장으로 대표되는 현 20대의 움직임이 갈아치우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 추세다.
젊은 세대가 유행을 주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 장년층은 그들만큼의 열정으로 노력, 실험, 연구에 임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나’라는 환상을 잃고서 오래전에 구매한 옷을 반복해서 입고 있는 기성세대의 안일함과, ‘나’에게로 쏟아질 선망의 시선을 상상하며 ‘유행하는 (비싼) 제품’이라는 기호의 스펙타클에 열광하는 젊은 에너지 중 자본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자명하다. ‘새로움(새로움이 결여된)’을 향해 질주하는 청년들의 사나운 파도를 위해 자본은 ‘신상품’이라는 도랑을 내어주며, 그 맹목성에 ‘트렌드’라는 기호를 입히고서, 그들의 날씬한 몸을 전면에 내세워 기성세대의 옷장 또한 새로운 상품으로 갈아 치우는 ‘한 바퀴 회전’을 기획한다.
나태한 기성세대와 저돌적인 신세대의 대립이 전 세계적 추세라면, 시뇨레(신사)의 도시 나폴리의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이곳에는 청년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정교하게 멋을 부리는 노신사들의 확실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비아 톨레도, 피아짜 아마데오, 룽고마레, 피아짜 반비텔리를 활보하는 그들은 오랜 세월 갈고닦은 우아함을 과시한다. 여전히 사르토에게서 새 옷을 주문하고, 매일 아침 몸치장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그들은 ‘설득되지 못한’ 새로운 실루엣을 실험하는 일을 꺼린다. 그들의 '스타일'은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고(일부의 경우 그것이 글로벌 트렌드였던 슬림/스키니의 영향하에 구축된 것이라 하더라도), 따라서 그들이 얕은 유행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현상은 되려 당연하다. 고전적 복식이 구현하는 우아함을 사랑하는 노신사들의 열정 앞에서 세계적 트렌드가 되려 힘을 내지 못하는 나폴리의 풍경은 흥미롭다.
난 수시로 발걸음을 세우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교하게 연출된 그들의 옷차림을 살핀다(타도시의 남성들은 그들만큼 ’ 노골적으로‘ 바지 기장, 타이 매듭, 걸음걸이에서 ’나 오늘 멋 냈다 ‘의 선언을 과감하게 현시하지 않는다). 피티 워모에 등장하는 스칸디나비아의 인플루언서들을 지켜보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완벽하게 다려진 바지를 칼같이 정확한 기장에, 완벽한 딤플이 잡힌 타이 매듭과 매치하고서 집 앞 산책에 나선 그들의 옷차림을 살피는 경험을 두고 난 “눈이 편안하다”라고 표현했는데, 눈에 거슬리는 요소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을 때, 시선이 위아래로 자유자재로 미끄러질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모든 클래식한 남성적 멋이 만개한 이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트위드 재킷이다. 분명 트위드 재킷은 이와 같은 “나 멋 부렸다”의 선언과는 불화하는 존재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일상의 여유를 탐하는 신사의 중후한 멋을 가시화한다. 오랜 역사를 통해 트위드가 확보한 상징성이다. 산업화로부터 일구어낸 경제적 여유를 스코틀랜드 산지에서 향유했던 19세기 영국 젠트리가 남긴 문화적 유산이다. 트위드 재킷에 그레이 플란넬을 입은 남자가 세련돼 보이는 이유다.
“난 태어나서부터 늘 이렇게 옷을 입어왔다!”라는 거만함/시침 떼기로 대표되는 아이비스타일의 미학 역시 미국의 최상류 층 자제들, 더 멀리는 그들이 모방했던 영국 젠트리의 규율을 답습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손에 익은, 즉 자연스럽게 몸에 밴 우아함이야말로 추구해야 할 유일한 이상향이었다. 우리는 위대한 개츠비 중 제이 개츠비가,
개츠비: "신께 맹세코 진실만을 말하죠... 저는 중서부 부유한 집안의 아들입니다. 이제 모두 안 계시죠. 미국에서 자랐지만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모두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가족 전통입니다."
닉 캐러웨이: 중서부 어디인가요?”
개츠비: 샌프란시스코요
라는 앞뒤 안 맞는 거짓말로 출신 성분을 숨기려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자수성가’한 자산가가 아닌, 권문세가를 연기하려 했고, 그의 연적 톰은 그의 "핑크 수트"를 언급하며 그의 연기(스타일)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왜 트위드를 나폴리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일까.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설명은 “나폴리는 날씨가 따뜻하다”는 일반론이다. 타당한 듯 보이지만 충분치 못한 설명이다. 계절을 불문하고, 냉기와 습기를 전염병처럼 기피하는 (그들은 레이어드 식 옷 입기(vestirsi a cipolla (양파처럼 옷 입기)의 달인들이다) 이곳 남성들의 방모사 사랑은 남다르다. 플란넬 팬츠, 캐시미어 재킷, 스카프, 트위드 코트, 클래식한 체크 패턴의 재킷들 역시 매우 쉽게 눈에 띈다. 오직 두껍고 성글성글한 트위드 재킷만이 예외인 것이다.
지나치게 전원적인 느낌을 기피하는 나폴리의 취향은 이곳이 ‘도시’ 임을 현시한다(No Brown in Town). 산지로 둘러싸인, 교외(contado)에 한 다리를 걸친 소도시가 아닌, 20세기 내내 유럽 최고의 인구 밀도를 자랑했던 대도시, 남부 이탈리아 전체를 호령했던 왕국의 수도, 모든 귀족, 상인, 잡역부가 같은 거리를 공유했던 숨 막힌 메트로폴리스인 것이다. 이곳에서 멋을 내는 남성들은 캐시미어, 실크, 고번수 소모사 등의 과감한 원단의 수트/재킷을 거리낌 없이 선택한다. (그것은 리베라노를 통해 알려지게 된 두툼한 원단을 선호하는 유럽 내 산지 인근 소도시의 전원적 취향과는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곳은 블루 재킷의 도시다. 브라운, 그린, 다양한 종류의 체크 재킷들 역시 눈에 띄지만, 블루 재킷이 없는 나폴리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피아짜 아메데오-비아 끼아이아로 이어지는 나폴리의 명품 거리를 걷다 보면 블루 재킷에 그레이 팬츠 차림의 남성들을 거듭해서 마주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지역의 특색을 자신의 스타일로 녹여내어 그에 입각한 옷차림을 강요할 줄 아는 사르토의 안목은 고귀한 것이다. 진정한 애호가는 복식 문화의 기반인 거리의 미학이 철저히 망가졌음을 알고 있음에도(제대로 된 옷차림을 한 사람/제대로 지어진 건물 하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올바르게 복장을 갖추어야만 한다!”라고 우리를 ‘혼을 내줄’ 마에스트로를 찾는다. 나폴레탄 시뇨레(신사)라는 환상, 진정한 우아한 고객의 사르토이고 싶다는 이상을 여전히 품고 있는 안토니오 파스카리엘로와의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배움을 안겨준다
나: “사파리 재킷도 만드시나요? 한 벌 해보면 어떨까요?”
마에스트로: “그걸 입고 어떻게 산 까를로(나폴리의 오페라 극장)에 가겠나? 그런 건 아프리카로 갈 때나 입는 것이야!”
독자를 이해하는 작가는 독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누군가의 잠언처럼, 하루 전부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손님의 사정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르토는 그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망가진 일상과 잊혀버린 이상 중에서, 후자를 지켜내려는 단호함이야말로 망가져버린 현실 속에서 '나 또한' 천박해지지 않는 유일한 방책일 테다.
“안될 게 어딨겠어. 요새는 다 그렇게 하잖아.”
와 같은 쉬운 정답만을 말하는 사르토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 테헤란로건, 메디슨 에비뉴건, 비아 톨레도건, 트레이닝복차림으로 활보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파스카리엘로는 눈앞 사물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서 스크린 속에서 살아가는 범인이 아닌, 신사적 우아함의 성지 나폴리에서 살아가는 자부심 높은 장인이다. 그는 내가 아는 나폴리 남자 중 유일하게 축구에 관심이 없다. 스꾸데또 따위는 철없는 아이들의 관심사로 치부하고서, 과거 산 까를로의 위상에 부합하는 옷이 아니면 우아하지 못하다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