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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환 Jul 27. 2019

재료가 좋아야 요리가 맛있다

 뉴스 피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은 이른바 ‘런다운(run-down)을 짜는 일이다. 쉽게 말해 뉴스에 나갈 기사들의 순서를 배열하는 일이다.  뉴스가 나가는 그 시점에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사들을 앞에 배치하고, 뒤에 갈수록 중요도는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기사를 넣는다. 취재부서에서 올려준 기사가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면, 런다운에도 힘이 들어간다.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이치와 비슷한 셈이다.


근무자도 적고, 뉴스거리도 없는 주말 근무 때는 그야말로 런다운 짜는 데 비상이 걸린다. 간혹 큰 사고가 터질때 말고는 영혼까지 끌어서 기사들을 넣어야 한다. 기사 자체가 적은데다 앞 시간과 반복을 피하고, 기사 형식을 다양화하고... 등등 이리저리 원칙을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뭘 비중 있게 다루나


 나도 입사 전엔 24시간 뉴스 채널이니 만큼 다양한 분야 뉴스가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주로 중장년층이 많이 보는 우리 채널 특성상 정치나 외교 /안보 /북한 기사들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또 방송이다 보니 흔히 말하는 ‘그림이 좋은’ 사건사고 기사들도 비중 있게 다룬다. 왜 쟤네는 매번 똑같은 것만 반복하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중요하고, ‘잘 팔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 분석 기사는 방송 기사로는 쉽게 와 닿지 않기에 큰일이 아니면 뒤로 밀리고, 스포츠나 문화 역시 뉴스 뒤쪽에 순서를 잡아뒀다가 아예 못 나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기사 종류도 다양하게


 뉴스를 보는 사람은 잘 느끼지 못 하지만, 런다운을 짤 때 기사의 종류를 다양하게 하려는 노력도 함께 한다. 가장 정제된 형식이 1분 30초~2분 분량의 리포트. 그리고 이 리포트 내용 가운데 주요 내용을 서너 문장 정도로 쓴 단신. 주요 취재원들의 말을 직접 들려주기 위해 약 1분 정도로 인터뷰 내용만으로 구성한 녹취구성도 있다. 또 <돌발영상> 같은 완성된 영상은 영상구성이라고 부른다. 기자가 실시간으로 보도 내용을 전하는 중계, 전화연결 등도 있는데, 주로 리포트를 완성하기 전이나 현장감을 살려줄 때 이용하는 기사 형식. 여기다 앵커가 직접 스탠딩 형식으로 서서 설명하는 앵커리포트도 있다. 또 기사는 아니지만 전문가나 기자 출연을 뉴스에 넣는 것도 전부 시청자가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게 목적이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출연이 10분 이상 이어지면 지루하다 생각)


런다운이 무너진다..?


 짜 놓은 대로 뉴스가 진행되면 좋으련만, 갑작스럽게 속보가 들어오거나 급박한 일이 생겨 기존에 짜둔 기사 순서대로 뉴스가 진행되지 못하는 걸 ‘런다운이 무너진다’고 말하곤 한다. 미리 짜 놓은 런다운을 무시하고 급박한 소식을 계속 전달하기로 결정하는 건 일선 피디가 아닌 데스크라고 불리는 부장들의 판단 사항이다. 내가 경험했던 건  강원도 고성 산불 때였다. 제보 영상으로 강원도 산불 영상이 들어왔는데,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한 데스크가 기존 뉴스를 중단하고 이 내용으로만 끌고 가 달라고 주문했다. 이때 개별 앵커의 역량에 따라 대응력 차이가 큰 데,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에도 제보 영상만 보고 몇십 분을 혼자 떠들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물론 속보 대응이 익숙한 ytn 앵커들은 대부분 능숙히 처리한다.

앵커도 사람인지라


런다운을 짤 때 단신을 세 개 이상 배치하는 걸 되도록 지양하는데, 앵커가 너무 숨이 차기 때문이다. 보통 단신 하나에 30초 정도인데, 세 개만 읽어도 1분 30초이니 숨이 찰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에 멋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단신 4개를 갖다 놨더니 선배가 “너 ㅇㅇㅇ앵커 싫어하냐 ㅋㅋ”고 물은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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