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어두운 침대에 누워 김연수의 오래전 산문집을 읽었다. 줄곧,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좋아해 보라고 권하던 작가는 이윽고 자신이 앉아 있는 그 순간에 대해 썼다. 그 글 안에는 여름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여름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그의 여름 한낮을 읽고 있는 봄밤의 내 기분은 오묘할 만큼 좋았다.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의 말을 믿고, 잠시 시간을 내어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봄에 있으므로 글 제목을 빌려와 봄으로 고쳐 쓴다.
책은 모두 400권쯤. 작업실 붙박이 책장에 꽂혀 있다. 나는 늘 책장의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9만 원짜리, 빈티지한 감색 가죽 쿠션의 네모난 팔걸이의자가 내 자리다. 느리지만 침울하지 않은 팝송을 틀어두었다. 우리말 노래는 주로 글을 마주하는 나를 자꾸 노랫말로 끌고 들어간다.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팝송을 들을 때마다 다행히 된다.
작업실에서 나는 매달 50만 원의 월세를 담당해야 한다. 며칠 있으면 두 번째 월셋날이다. 월세의 일부를 충당하려고 계획한 독서모임 광고지를 유리창에 붙였다. 지나는 사람들이 하루에 두 세명 정도,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유심히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어나 문을 열고 말을 붙일 것인지, 그냥 모른 척할 것인지 고민한다. 고민 끝에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들려고 하면 모두들 다시 갈길을 간다.
이름이 길어 외우지 못한 큰 화분을 작업실 밖에 두었다가 다시 들였다. 해가 이제는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그 길고 요염한 녹색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한참 구경하고 난 후였다. 이 시간 즈음되면 거리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많아진다. 어린 소리는 멀리까지 가늘고 명랑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작업실에서는 꽃을 볼 수 없지만 출근하면서 나는 불광천을 따라 줄지어 피어나는 벚꽃을 보았다. 아직은 하얗게 만개하지 않았다. 활짝 피어나지 말라고 아직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완전히 피어나고 나면 너무 순식간에 져버리는 것이 언제나 섭섭했기 때문에. 매해 벚꽃이 필 때보다 질 때의 광경이 내게는 더 오래 남았다. 사람에 대해서도 내 기억은 그렇다. 둘이 함께 시들어가던 모습을 끝내 기억한다. 그러니 지는 것을 늦출 수 있다면 피는 것도 미루기를, 아무 소용없겠지만 그건 벚꽃을 볼 때의 나의 바람이다.
분홍색의 두툼한 티셔츠를 입었다. 봄 다운 색의 옷을 입고 싶었는데, 아직은 바람의 꼬리가 차가워서 아주 얇은 옷은 안되었다. 까다로운 조건에 맞는 옷이 옷장 안에서 거의 일 년을 얌전히 기다려준 것을 발견하고는 고마웠다. 덕분에 옷 고르는 시간을 줄였고 현관을 나올 때 거울 앞에서 기분이 살짝 좋았다.
유리컵에 꽂혀 탁자 위에 놓인 꽃은, 지지지난주 어느 날 언니가 처음 작업실에 오면서 사다 준 꽃이다. 이 작은 꽃송이와 줄기가 이렇게 오래 유리컵 안의 물을 살금살금 삼키며 살아낸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이렇게 오래 옆에 있을 수 있을 줄 몰랐다. 몸이 꺾였는데, 살겠다는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거의 한 달을 살아가고 있는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제는 노란 꽃잎의 끝이 아주 조금씩 시들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다급해져서 깨끗하고 시원하게 물을 갈아준다. 응원의 마음을 담아서. 내일의 봄도 살고 가라고, 말하고 싶다.
널찍한 원목 책상 위에는 니체와 김연수와 신형철의 책이 놓여있다. 내가 오늘 보았고 보고 있고 볼 책 하나씩이다. 신기하게도 어떤 글들은 여기가 봄인 줄 알고서 찾아온다. 맑고 환하고 따듯한 낱말들을 품고 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살짝 베껴놓기도 하고 아니면 괜히 비켜가기도 한다. 봄에 있는 것이 좋기도 하고 봄 따위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매일매일의 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가 베껴둔 문장도 김연수의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내가 이 문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텐데, 하는 부분이다. 하다 하다 더 좋은 것이 나올까 봐 걱정하는 것은 정말로 내가 하는 짓이다. 미래를 끌어다 현재의 그림자로 삼는 나는 그래서 매일의 오늘, 대체로 음달에 있다. 그러므로 그냥 지금 가장 좋은 걸 좋아하라는 말은, 내 노트에 꼭 필요하다. 나는 이미 김연수가 ‘일관성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할 때 번쩍 손을 들어 동의와 동참을 선언한 사람이므로 곧 더 좋은 것이 오면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홀라당 좋아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오늘도 내일도계속 그날의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면 되는구나, 생각하니 이미 좋은 것을 잔뜩 얻은 사람처럼 가슴이 좀 부푼다.
이래서 나는 이제 사람 말고, 문장들이 갖고 싶다.
강아지라고 말하기 좀 뭐한 큰 몸집의 개 로이는 작업실의 개근 동료다. 그는 40킬로그램에 육박하며 두 발로 선다면 나보다 키도 클 것이다. 그는 검은색이고 여성이다. 로이는 매일 출근하는 나를 무지하게 반긴다. 그 애가 작업실 안에서 반가움에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다가가 문을 열 때 만큼은 정말로 웃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온몸으로 반가워해주는 존재가 여럿인 세상에, 나는 살고 있지 않다. 그 애는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대체불가능으로 소중하다.
서둘러 간식 몇 개를 주면 안정을 찾고 작업실 한편에 몸을 엎드린다. 그 애의 검은 등이 숨 쉴 때마다 오르락거리는데, 가만히 바라보면 그 등은 고요한 밤의 산 같다. 게다가 그의 눈동자는 오래된 나무 몸의 색과 꼭 닮았다.
보색대비로 로이는 밝은색과 잘 어울린다. 노란 꽃잎을 머리 위에 얹어주면 어두운 그의 산에 불이 켜진다. 초록잎을 콧등에 얹어주면 새로운 계절의 나무처럼 밝아진 갈색 눈동자에 호기심 어린 생기가 넘실댄다. 그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다. 나는 이 봄의 낮들을 그와 함께 보내는 행운을 누린다.
‘여기까지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는 이 봄의 전부다. 내가 아는 봄의 세계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그 봄 안에서 더없이 한가하고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