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든 못하든 그냥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애를 먹이기 위한 요리가 그것이다.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으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애보다는 암만 그래도 내가 나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오늘은 짜장면 사 먹으면 안 될까요 소리 한번 했다가 아빠한테 뺨을 맞았다는 믿어지지 않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밥 할 때 꼭 그 얘기가 떠오른다.
사실 사 먹기만 하더라도 별 상관없는 나의 한 부분은 보수적인 조선 여인이라 한창 커야 하는 애를 너무 사 먹이기만 하면 어미로서 괜스레 죄책감이 인다. 하다못해 주말에는 한 끼라도 '요리'라는 것을 해줘야지,라고 혼자 작은 원칙을 세웠는데 사실 이것도 애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있지도 않은 남들 눈치를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참,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해 먹고 사는 건지 궁금하다. 밥 해 먹는 과정이라는 것이 참 수고와 보상의 불균형의 비효율적인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들 이렇게 해 먹고 삽니까, 나만 이런 겁니까.
지난 주말에 내가 해먹은 걸 예로 들어보자. 나는 전날 밤부터 고심하다 그나마 쉽고 빠르고 집에 있는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감자채전과 삼겹살 표고 볶음과 오이무침과 곰국을 해 먹기로 한다. 먼저 찹쌀을 조금 섞은 쌀을 씻어 안친다. 냉동된 곰국을 봉지 뜯어 냄비에 넣고, 반찬들을 만들기 위해 채소 손질부터 시작한다. 감자와 양파와 버섯과 오이를 씻고 썬다. 말은 간단하지만 그러고 나면 싱크대가 엉망이라 1차 정리해야 한다. 이제 채소들을 구분해서 담아둔다. 프라이팬 두 개를 꺼내 하나는 감자채전을 하나는 볶음을 시작한다. 타지 않게 감자전을 잘 지켜보면서 다른 쪽에는 마늘을 기름에 볶고 삼겹살, 양파, 파, 버섯을 넣어 볶다가 양념을 추가해 완성한다. 양푼을 꺼내 썬 오이와 양파, 다진 마늘과 네 가지 양념을 넣어 비닐장갑 손으로 살살 버무린다. 몇 번 해봤는데도 까먹어서 중간중간 서너 번 핸드폰을 열어 레시피를 확인한다. 이제 끓는 곰국에 쪽파를 잘라 넣고, 갓 만든 세 가지 반찬을 접시에 덜고 밥을 푼다. 수저와 물을 놓는다. 아이를 부른다. 나는 그 사이 난장판이 된 싱크대를 2차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국을 퍼서 주고, 비로소 아이 옆 자리에 앉는다. 티셔츠가 땀범벅인 것을 그 때야 안다.
아이와 밥을 먹는다. 아이는 깨작깨작, 나는 허겁지겁. 배고파서 그런지 먹을만하다. 내가 했기 때문에 밥 한 톨, 쪽파 한 조각마저 아깝다. 수고가 생각나서인지 애한테 남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다 먹고 나면 숨 한번 돌리고 그릇을 정리한다. 그냥 벌려두고 쉬는 것과 지금 무리하여 치워 버리는 것 중에서 늘 고민하고, 늘 후자를 택한다. 덜고 난 반찬들은 새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잔반을 버리고, 식탁을 닦는다. 여기서 약간 어지럼증을 느끼나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밥그릇 국그릇 접시며 컵과 수저들, 요리한 도구들, 프라이팬, 도마와 칼 등을 차례대로 설거지 한다. 거름망 비우고 싱크대 물기를 싹 닦아 행주를 빨아 널고 쓰레기 처리하고 손 씻고 앞치마를 벗는다. 시계를 보니, 와 씨, 두 시간 반이 지나있다.
밥 노동을 마쳤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싶은데 도저히 기운 없어 못한다. 부엌은 반짝이는데 내 몸은 꼬질 하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싶건만 이것은 단지 점심 식사일 뿐이다. 당장은 누가 와서 몇 시간 뒤에 저녁을 또 해 먹자고 하면 한 대 치고 싶을 것 같다. 저녁은 있는 걸 꺼내 먹거나 기필코 시켜먹겠다고 다짐한다. 약 찾는 것처럼 카페인을 찾는다. 아아 먹어야 돼 아아.
왜 사람은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밥을 먹나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나만 이렇게 밥 한 끼가 힘겨운 것이냐고 딴 집 가서 좀 물어보고 싶다.
그래도 돌아오는 주말마다 또 나는 밥을 한다. 우리 애가 그래도 나중에 "나 엄마가 해준 그 음식 먹고 싶어"라고 할 만한 기억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데 누구나 구닥다리 로망이 있지 않은가. 엄마가 해준 음식, 그건 나랑 애랑 둘이서만 가지는 추억의 키워드니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겠다. 그렇게 로망에 빠져 삐질삐질 흘린 땀에 비해 참 별거 없는 식탁이 다시 한번 요란하게 차려진다.
그런 와중에 아이는 워낙 까탈스러운 편이다. 입도 짧고 뭘 먹고 싶다 말하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나를 다루는 법을 아는 건지, 뭐든 만들어주면 한 입에 한 번씩 무척이나 맛있다고 해가며 먹는다. 내가 먹어도 그 정도는 아닌데 단연 최고라 그런다. 아니 그렇게 대단한 일품요리라면 분명 밥을 더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많이 먹진 않는다. 참으로 진실한 말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나를 은근한 눈빛으로 백ㅇㅇ씨라고 부른다. 무려 요리전문가 그 백종원의 성을 떼다 내 이름 앞에 붙인 것이다. 능청이 늘었다. 친구였다면 놀리는 줄 알았을 텐데, 그래도 얘는 진심 같다. 에이, 무슨 백ㅇㅇ씨야 ㅋㅋ 손사래를 치면서도 내 입꼬리는 애가 던진 미끼 물고 스윽 올라선다.
나는 참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사과하고 감사하고 위로하는 말이 그렇게 하기 어렵더니 칭찬도 마찬가지다. 칭찬이 왜 중요한지 이제 좀 알겠다. 두 시간을 소질 없는 일에 고군분투하는 것이라 하여도 쉽게 그만둘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된다. 너는 내 밥을 먹고 나는 너의 칭찬을 먹는다. 칭찬은 나를 부엌에 자꾸 세운다. 백 씨 성을 하사 받아 내일, 그렇다 내일이 또 토요일이다. 내일도 나는 싱크대 앞에서 춤추는 백고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