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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ro Sep 11. 2021

수요일의 대작가님

하루에 한두 시간씩 모니터에 흰 백지를 띄워놓고 끙끙댄다. 매일 뭐라도 써야 한다기에, 쓰다 보면 될 것 이라길래,  재능보다는 꾸준함이라길래 이거 되겠어?  싶으면서도 은근한 기대는 또 못 버리고 그러고 있다.

어릴 때는 매일같이 저녁이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썼다. 말하는 걸 워낙 좋아했으니 글도 대부분 말의 형태로 쓰였다. 주로 많은 대사와 짧은 지문들로 이루어진 시나리오 비슷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가는지,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내내 부르는지도 모르다가 벌컥 방문이 열리면 이불이나 베개 속에 공책을 끼워 넣어 숨겼다.  펜 뚜껑을 덮을 새도 없어 이불보에 잉크가 번지곤 했다. 내 재미로 쓰는 글이니까 누구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꽁꽁 숨겨뒀는데 그걸 찾아낸 언니가 몰래 훔쳐보기라도 하면 난리를 피우곤 했다. 수십 권의 공책 안에 수 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다 절필했다. 사춘기가 되자 밖으로 나도느라 방바닥에 엎드릴 시간이 없었다.  친구들과  떠들면서 이야기뿐 아니라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에 쌓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의 생각은 모두 공책 아닌 누군가에게 쓰여졌다.


몇 년 전부터 글이 다시 쓰고 싶어진 것은 사실 말할 데가 없어서다. 자꾸 혼잣말을 하는 내가 두려워지기도 했다. 입이 근질거리던 것이 오래되자 마음이 삭아가고 있었다. 가슴이 늘 묵직하고 우울했다. 소통 부재가 그렇게 무서운 거였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조금씩 글을 끼적였지만 답답한 건 여전했다. 안타깝게도 말만큼 시원하게 쓸 수 있는 필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동아줄을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더 많이 읽고 조금씩 더 썼다. 그건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듣고 말하는 일이었다.


그런 나를 하도 봐와서 그런가 언젠가부터 우리 작은 동거인도 내 노트북을 가져다가 글을 쓴다. 성도 갈아버린 필명도 지었다.  폴더도 만들어 차곡차곡 모아둔다. 몰래 열어보니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글이 72편 모였더라. 헉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72편의 글이라니, 일단 훔치고 싶다.

그 애는 정말 틈만 나면 글을 쓴다. 가까운 곳에 늘 삼색펜과 스프링 노트가 있다. 책을 읽다가도 벌떡 일어나 ‘영감'을 내려받았다며 스토리를 끄적인다. 대체로 중구난방이다가 요즘은 초딩들의 연애사에 푹 빠졌다. 어제는 소파에 미처 닫지 못한 노트가 있어 들여다보니  '우리 인생의 사랑은 모두 음표야'라는 표지가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다. 두 여학생과 남학생 하나가 이등변 삼각형의 형태로 자리하고 제목에 걸맞게 그 애들 다리가 전부 음표다.  나란히 그려둔 남녀 둘의 다리는 같은 음표 모양이고 꼭지각의 여학생은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 팔짱을 낀 채 혼자 다른 모양의 음표 다리다. 걔가 서브녀인 모양이다. 직관적이고 도발적인 표지 뒷 장부터는 세 남녀의 파란만장한 삼각관계 대서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애는 학업에 바쁘신 와중에도 때때로 감성이 충만할 때는 애수 어린 동시를 짓고 (가령, 여름밤 냄새 같은 제목으로) 또 내키면 일러스트까지 곁들인 그럴싸한 짧은 글 몇 편을 연이어 완성하고는 한다. 대본도 쓰고 일기도 쓴다. 그 애는 언제 어디서든 뭐든 쓰고 있다.


언젠가는 얄밉게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의 내 안경까지 착용하고 노트북을 현란하게 두드리다가 문득 나를 도발한다. "엄마, 아무래도 작가는 내가 될 것 같아." 나는 진심으로 기분이 나빠서 대답도 안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광채를 띈 두 눈은 쓰던 글로 돌아간다. 나는 그런 얼굴을 알고 있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재미지게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부럽다. 그 튼튼한 집중력이, 솟구쳐 나오는 글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뇌리를 때린다는 영감이, 무엇보다 작은 손가락 하나하나 끝까지 뻗쳐있는 자신감이.


한 번은 잠자리 들기 전에 그 애 머리를 쓰다듬는데 자꾸 내 손을 피하는 거다. 당혹스러워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내 생각이 엄마한테 들릴까 봐.'라고 한다. '지금 내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이라고 덧붙인다.

내가 초능력자도 아닌데 머리에 손을 얹으면 그 생각이 띠리리 곧장 전달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나 보다.  4학년 오빠를 좋아하고 차지하려고 싸워대고 고백하고 바람맞고 그런 얘기를 즐겨 쓰면서도 또 다른 색의 '동심' 도 오롯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 생각이 떠다니는 그 애의 어떤 곳은 샘물 같은 것도 흐를 것 같다. 나는 아마 구경하는 것도 짐작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나도 감성을 끌어올려 '생각이랑 마음은 너 혼자의 것이라서 원하면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마치 은밀하고 귀한 비밀을 너한테만 알려주는 것 같은 묘한 마음이 된다.


언젠가 그 애가 정말 그토록 원하는 작가님이 된다면, 라떼 얘기를 끌고와 딸아 너는 나를 쏙 뺐구나,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책 사고 싶다면 아묻따로 카드 결제 착착해주고 되도않는 습작에 늘 폭발적인 리액션을 해왔던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거라고 말해줄 거다. 집 떠난 오리 동화를 읽다가 먼저 오열하고 계란말이는 항상 스크럼블로 만들어도 계란말이 사행시에는 박수를 이끌어내는 엄마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너도 인마 있는 거라고 꼭 알려줄 거다.

 작가님이 되지 않더라도 읽고 쓰는 것이 너에게 뭐라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그게 어느 정도 내 영향이라는 지분 주장을 하고 싶어서, 그리고 너를 따라 나도 멈추지 않고 계속 뭐라도 쓰고 싶어서 오늘은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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