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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18. 2021

[뚜벅뚜벅, 다시 제주] 버스 여행에 도전합니다?

(첫째 날 #01) 면허는 없고 가고 싶은 곳은 많다면

김포와 제주를 오가는 가장 싼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시간대가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시간대.

그렇게 나의 제주행 비행기는 오전 7시 35분 발로 정해졌는데 국내선이라면 적어도 삼십 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고, 공항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결국 새벽부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어슴푸레한 시간에 공항으로 가다 보면 알찬 하루를 보내겠다는 생각에 계획도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잊었다.

제주까지 가는 1시간 동안 보거나 들을 걸 준비를 안 한 것이다.

나름 설렜는지 가는 동안 잠도 안 오고, 도착하면 뭐할지, 갑자기 비가 오면 어떡할지를 생각하며 제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마스크 쓴 돌하르방과 그 포스터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마스크를 괜히 한 번 더 꾹 눌러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첫 버스부터 헤맸다.

N사 지도 앱에서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라고 했고 나는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30분 후 도착'으로 바뀐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람. 내가 서있는 곳이 버스정류장이 아닌가?

의욕에 차서 계획을 빼곡히 세웠는데 마음이 다급해져서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 해도 알 수가 없다.

급하게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다가 인터넷에 검색도 했다가 제주시 버스 시간표를 봤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20분 정도 헤매다 K사 지도 앱을 켜고 겨우겨우 버스를 탔다.

게다가 헤매는 동안 지난 제주여행 때 지도에 저장해 두고 까먹고 있던 [올래국수]를 발견했다.

마침 숙소 가는 길에 들러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래 이게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올래국수]는 지난번 제주 여행 끝자락 공항 가는 길에 들렀는데 아쉽게도 영업시간이 끝나서 못 먹었다.

이번에는 새벽같이 출발해서 조금 헤매긴 했어도 곧장 국숫집에 가니까 분명 열었을 거다.

도착하니 멀리서 봐도 대기줄이 있다.

세상에 아침부터 대기가 있을 줄 생각도 못했는데 아침부터 붐비다니.

입구 오른쪽에 출입자 대장을 적고 1명이라고 말씀드리니 이삼십 분 정도 뒤에 오면 된다고 했다.

그 정도면 양호하다. 아무래도 비수기에 평일이라 그렇겠지?

대기줄을 보고 언제 깜짝 놀랐냐는 듯 제주 맛집은 기본 한 시간 대기인데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잠깐 동안 근방 연동을 둘러봤다


식사 후 숙소로 이동해 호텔 안내 데스크 직원에 짐을 맡기며 길을 물었다.

9.81파크에 가려는데 제주 버스를 몇 번 안 타봐서 시간표 보는 법도 잘 모르겠고 어디서 타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다행히 직원이 약도까지 주며 아주 친절하게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길을 알려줬다.

그래서 앞으로 버스 타기 전에 모르면 반드시 물어보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호기롭게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서울 토박이면서 서울 버스터미널도 몇 번 안 가본 촌뜨기가 뭘 알겠는가.

창구 직원에, 어디 어디 가려는데 뭐가 제일 빨라요? 하고는 표를 끊으려 하니

아주머니가 황당해하면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아냐고 하셨다.

심지어 표를 끊는 것도 아니었다. 티머니로 된다는 것이다.

서울말보다 빠르고 높은 톤에 약간은 혼나는 기분도 들었다.

나름 버스 여행 책도 보고 왔는데 어디 가서 명함도 못 꺼낼 일이다.

그래도 겨우 버스를 타고나니 한시름이 놓인다.

all photos taken with the X1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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