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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19. 2021

[뚜벅뚜벅, 다시 제주] 아름다움을 찾아서

(첫째 날 #03)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에서 홀로

비가 오면 뚜벅이는 여행하기가 꽤나 어려워진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떻게든 카메라를 덜 적시려고 용을 쓰면서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비가 올 때 가고 싶다 하는 곳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방주 교회였다.

방주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설계한 교회 건물로 인공 수조가 있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나는 비가 오는 날 해 질 녘 방주 교회를 사진으로 먼저 접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꼭 비 오는 날 해 질 녘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9.81 파크를 포함해서 코스를 짜다 보니 해 질 녘은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9.81 파크를 가면서 비가 안 오길 바랐고, 내심 전날까지 비가 왔으니 그래도 비 온 다음날의 풍경을 볼 수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제주 토양은 물이 정말 잘 빠진다.

비가 온 다음날, 날이 흐린데도 방주 교회는 화창한 모습이었다.

특히 방주 교회의 지붕이 빛을 받아 무척이나 반짝였다.

교회를 둘러싼 수조가 잔잔한 강물을 연상시킨다면 햇볕을 받은 지붕은 부서지는 파도 같았다.

내부는 안타깝게도 출입이 제한되어 둘러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교회를 몇 바퀴나 돌며 다양한 각도에서, 가까이 또는 멀리서 다시금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잘 설계된 종교 건축물을 보다 보면 수백, 수천 년 전에 종교 시설들이 왜 그토록 아름답고 거대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건축물 자체가 주는 감동이나 위압감은 글이나 설교보다 직관적이다.




아직 오늘 일정이 한참 남았다. 본태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도보로 약 십 분을 걷는데 왼편에는 한창 도로를 보수하는 중이고 오른편에는 돌담과 대나무가 있다.

십 년 전 처음 제주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제주도는 꽤나 많이 바뀌었다.

자주 난개발 논란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현무암으로 쌓은 돌담을 발견하고, 헝클어져 자라는 식물들을 보며 아직은 옛날 모습이 남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본태박물관은  '本態, 본래의 형태'라는 뜻으로 전통과 현대의 공예품을 통해 인류 본연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기 위해 2012년 설립되었다고 한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는데 직원이 안내 책자를 보여주며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전시는 제1관 ~ 제5관으로 이뤄져 있는데 제5전시관 위에 루프탑부터 시작해서 5,4,3,2,1관 순서대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제5전시관에 제임스 터렐은 코로나로 인해 관람 불가며, 불교 미술과 유교 미술은 촬영 금지라고 한다. 그 외 제4관 ~제1관은 사진 촬영이 허용된다고 한다.




루프탑에 올라서자 산방산과 박물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LOVE 조형물 (김홍석 作)이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라 이곳에서 노을 지는 풍경을 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에 제5 전시관에서 유교 미술과 불교미술을 관람했다.

유교 미술은 제사 용품, 조선시대 초상화 등이, 불교미술은 불화와 불상 등이 주를 이뤘다.

그 둘을 같은 공간에 두고 보자니 새삼 불교 미술이 그 시대의 색을 다 흡수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던 조선시대 미술작품은 산수화처럼 먹물의 농담으로 이뤄졌거나 색이 있다고 해도 은은했다.

반면 불화는 오방색으로 굉장히 화려했다. 그러면서도 문양이나 표현이 굉장히 세밀해서 놀라웠다.

문득 3년 전 이맘때 교토에서 본 불화가 생각났다. 색이 이 정도로 화려하지도 표현이 섬세하지도 않았지.

왜 그렇게 틈만 나면 미술품을 약탈해갔는지 납득이 됐다.

그리고 불교미술의 과감한 색상은 요즘 패션 트렌드와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과감한 색상과 표현이 낯설거나 부담스럽다기보다는 트렌디해 보였다.

뜻밖에 마음에 들었던 건 사자였는데 불교에서 사자는 불법을 수호하는 영물이라고 한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사자를 보고 있자니 민화 속의 호랑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해학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수백 년 전에 사자를 언제 봤다고 이렇게 그리고 조각했을까?




제4 전시관은 전통 상례와 꼭두를 전시하고 있었다.

살면서 점점 더 많은 관혼상제를 겪는다.

그중에서도 장례식은 매 번 적응하기 어렵다.


기억에 처음 치른 상은 외조부 상이 었다. 중학생 때 옆 방에서 주무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후 며칠 간의 장례식 기억은 오랫동안 어린 시절을 맴돌았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가깝거나 먼 사람들의 장례식장에 간다.

대부분 그들의 친지지만, 딱 한 번은 일주일 전 같이 밥을 먹은 친구의 장례였다.

장례식에 가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평소에는 너무 자연스럽던 것들 조차 알 수 없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복잡한 생각들을 떨치려 노력한다.

어쨌거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 번도 가까이 본 적 없는 상여와 꼭두를 둘러보자니 궁금해졌다.

지금은 정말 신실하게 종교를 믿고 죽음에 대해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거에 비하면 적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죽음에 대해 종교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신분제였고 종교가 훨씬 생활에 밀접하게 스며 있었으니 다르지 않았을까.

적어도 가는 길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도록 옛날 사람들은 상여를 멨을 것 같다.




제3전시관은 쿠사마 야요이 상설전이다.

쿠사마 야요이는 언젠가 정신병원에서 미술을 하는 미술계 거장으로 TV에서 본 것 같다.

그 당시 정신 질환 치유를 위해 미술을 시작한 유명한 예술가로 본 것 같은데

본태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있다고 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호박을 보자 더더욱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그는 평생 어떤 걸 보고 살았던 걸까.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에 들어가서는 소름이 돋았다.

정상이 아니다.

원리는 단순하지만 거울과 거울 사이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공간 안에 있자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




제2전시관은 현대 미술작품과 안도 타다오 상설전이다.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이 가득 들어차는데 바닥도 따뜻해서 자연히 마음이 풀어진다.

누군가의 집 안으로 들어온듯한 기분인데 한편으로는 이런 작품들을 이렇게 자연광이 비치는 곳에 둬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위층에는 백남준 작품과 안도 다다오 특별 공간이 있다.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경우 점점 예전 TV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져서 유지 보수가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몇몇 작품은 TV가 나오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금붕어를 위한 소나타]였다.

TV 브라운관을 완전히 비워내고 그 공간에는 금붕어가 있다.

살아있는 금붕어인가.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예술 작품이라고 하지만 금붕어는 혼자 외로울 것 같다.




전시관과 전시관을 이동하다 보면 담장이나 정원에 눈길이 간다.

발길이 닿는 대로 갈 뿐인데 중간중간 자리한 석상이나 정원 식물까지 모든 걸 조화롭게 두기 위한 노력을 짐작하게 된다.

특히 제2 전시관에서 제1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전통담장길을 걸으며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게 된다.

파란 하늘과 건물의 수직 수평선, 그 사이를 흐르는 물.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과 기와를 이용한 전통 담장.

아름다움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전달된다.


제1전시관에는 한국 전통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을 소반, 나무 가구, 조각보가 무척 아름답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작품들처럼 우리나라 미술사에 중요한 예술품들은 아니겠으나 그 자체로 그저 곱다.




정원으로 나오니 현대미술 작품과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는 오리 두 마리와 몇 마리의 쉬어가는 새들이 있는데,

이쯤 둘러보고 나면 그 오리조차 예사 오리로 안 보인다.

수변에 나무조차 허투루 심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이 호수에 그림 같이 하얀 오리 두 마리 역시 박물관 설계에 분명 포함했을 것 같다.

정말 소름 끼치도록 잘 정돈된 아름다움이다.


한 바퀴를 다 둘러보고 이제 다음 목적지로 떠나야 하는데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봐도 또 보고 싶을 것 같은 풍경이다.

문득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한다.


박물관 주인은 심미안이 뛰어나고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안도 다다오를 찾아가 의뢰하기를,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소.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건축물을 원하오.”

안도 다다오는 몇 번이고 박물관이 지어질 터에 와서 스케치를 하고 고뇌를 거듭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길 바라며 모든 건물과 길, 정원에 나무, 그리고 오리 두 마리까지 구상한다.

박물관이 완공되고 박물관 주인은 어떤 전시를 할지 전시 기획자와 논의한다.

박물관의 그 어떤 것도 허투루 둘 수 없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수많은 작품을 재고 또 잰 끝에 본태박물관이 완성된다.



all photos taken with the X1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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