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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dipity Sep 28. 2024

일방적이지만 외롭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20년 소풍>

황교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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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책을 선물 받아 추석 연휴 집에 내려가는 기차에서 단숨에 읽었다.

“20년”이란 기간만 빼면 마치 어린아이의 일기 제목 같은 <어머니와의 20년 소풍>이란 에세이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97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8년간 직접 돌보면서 기록한 <어머니는 소풍 중>이란 책으로 이미 세상에 한 차례 감동을 줬었다. 그 이후로도 12년을 더 간병하면서 2017년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의 기록을 더한 후속작이다. 저자는 무려 20년이라는 긴 간병의 세월을 “행복한 소풍”으로 정의하고 있다.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환자들의 다양한 죽음을 접해야 한다.


고령에 자다가 조용히 떠나 호상이라고 하는 경우부터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황망하게 가버리는 경우, 치료가 어려운 감염병으로 몇 주에서 몇 달을 고생하다가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경우, 암을 진단받아 몇 개월부터 몇 년 동안 투병하다가 가는 경우, 그리고 뇌만 손상당해 식물인간 상태에서 몇 년이고 기약 없이 누워있다가 이별하는 경우 등.


모든 경우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비극이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나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의 정도는 질병마다 다르다. 환자 가족들의 어려움 중 가장 힘든 것은 아마도 기약 없이 누워있는 환자를 간병하는 일일 것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협진을 의뢰받아 신경외과 병동에 회진을 갔을 때 콧줄을 꼽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천정을 주시하며 누워 있는 환자를 보면 확인해야 할 검사 결과만 눈에 들어올 뿐이지 환자와 감정적인 교감은 없다. 반면 좁은 환자 침대와 침대 사이 공간에서 낮고 딱딱한 보호자 침대에 누워있는 보호자들의 모습과 그 얼굴을 마주할 때면 온갖 힘듦과 짓눌림 같은 무겁고 막막한 감정들이 전이되어 몰려온다.


이렇게 많은 뇌출혈 환자들이 있고 간병하는 가족들이 있지만, 이 책의 특별함은 내가 병실에서 느꼈던 어두운 감정이 아니라 그렇게 어렵고 긴 간병 기간을 감사함으로 이겨낼 수도 있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소개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지난 했던 20년을 저자가 감사함으로 보낼 수 있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감당했던 저자일 것이다. 저자는 젖먹이 시절 어머니에 받았던 보살핌 그대로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약해진 어머니를 씻기고 어루만지며 세심하게 그 긴 세월을 돌봤다. 동시에 섬세한 관찰자로서 20여 년의 긴 간병 과정을 기록해 세상에 감동을 전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파란색 구두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세 가지 반응에 모두 감사함으로 되돌려 줬던 예처럼 특별한 감사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으나 안방 마님 마당쇠 이야기나 큰 입에 대해 영화배우들을 들이밀며 흐뭇해 하는 것을 보면 나름 유쾌하고 유머를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 의사였으면 어땠을까라고 독백하기도 하는데 뉴케어를 먹을 때 변비가 생겨 고민하다가 직접 죽을 만들어 먹임으로써 증상을 개선시킨것을 보면 의사보다도 나은 뛰어난 관찰과 실행능력을 가진 치료자로서의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책에는 아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인 간절히 기도하던 어머니가 묘사되어 있고, 그 기도의 힘이 이 모든 과정을 버티게 해 준 바탕이었다. 그리고 친구와, 교회와, 방송과, 세상 사람들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노력을 드러내는 것보다 뒤에서 든든한 백으로 받치고 있던 이 두 가지였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것들이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전문 치료사 못지 않은 간병 지식을 가졌음에도 실력이 떨어지는 요양 병원의 수준에도 화를 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게 해준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떠 올랐다.

20대에 뇌출혈로 쓰러진 남동생을 위해 수년간 간병하던 형이다. 항상 허리가 굽은 노모와 함께 동생을 긴 휠체어에 태워 병원에 왔었는데, 복벽을 통해 위에 집어넣은 급식줄을 교체하기도 하고 가끔은 폐렴이나 위장 장애로 입원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치료해 주는 동안 여동생은 결혼도 하고 나중에는 아이도 안고 같이 왔었지만, 형은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지 동생 간병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 환자의 어머니는 요양원에 입원하셨고 여전히 형이 대신 약을 타러 올 때 어머니는 잘 계시는지, 조카는 얼마나 컸는지 안부를 묻곤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보였던 것은 어머니의 치료와 간병 과정에서 만났던 다양한 의사들에 대한 저자의 감정이다.


보호자들은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 내에서 의사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보호자의 감정앞에서는 변명일 수 밖에 없다.

“처음 실려갔던 응급실에서 짜증 가득한 목소리도 답하던 간호사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던 의사, 무시무시한 동의서를 받고, 수술 후 수술은 잘 됐으니 기다려보라는 짧을 말만 남긴 채 멀어져 간 신경외과 의사, 입원을 원해도 차가운 얼굴로 입원이 안된다고 하던 상급 병원에 신경외과 의사, 보호자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었던 고가의 비급여 약을 마구 투여한 의사.”


또 단순히 의사들의 조심스러운 태도만으로도 위로를 받기도 한다.

“국내 최고 병원에서 비싼 검사를 했으나 가망이 없다고 조심스레 말하던 주치의, 결핵 환자는 병원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건네주던 요양병원 의사"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환자에게 치료 외에도 뭔가를 더 해주려고 노력하는 의사도 있다.

“보험회사 진단서 요구에 별말 없이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군요하며 진단서를 써준, 무심해 보이지만 사정을 알고 도와준 신경외과 의사, 결핵에 결려 위중한 상태에 슈퍼맨처럼 달려와 위로하고 치료해 준 의사,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는 의사나 치료가능한 병원, 결핵 요양이 가능한 병원을 물색해 준 의사들, 그리고 보호자와 모자를 이해해 주던 마지막 병원의 원장과 주치의, 간호사들.”


가끔은 의사의 태도나 말 한마디에 환자나 보호자들이 위로를 받는 것처럼 의사들도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 서로가 치료자가 될 수 있는 관계이다. 요즘 이 황당한 의정 사태에서는 인위적으로 이런 긍정적인 관계를 깨면서 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 이런 불순한 의도는 서운함을 증오로 바뀌게 하고, 결국은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두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이번 비정상적인 의정 사태가 한국 사회, 좁게는 한국이 의료 현장에 미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런 선한 위로의 관계가 깨져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의사는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일방적인 조언이라고 생각했지만, 돌봄 20년 후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던, “병원에서 어머니에게 매달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사는 편이 낫다”라고 충고하던 동갑내기 주치의였다. 이 의사가 했던 말은 내가 앞서 소개한 내 환자의 형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용기는 없었다. <어머니와의 20년간 소풍>을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황작가처럼 그 보호자도 자기 인생을 사는 것만큼 그 간병의 시간이 가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필요한 조언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동갑내기 보호자에게 그런 조언을 건넨 젊은 주치의 마음이 기특하다.


책은 진즉에 읽었으나 이런 소개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휴학 중인 4학년 제자를 만나면서 여러 사람이, 특히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그 학생은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이 답답한 시기에도 소아 흉부외과를 전공하겠다면서 대학 병원의 흉부외과에 가서 참관을 하고, 수술방에도 들어가고, 심지어 해외 학회까지 다녀왔다는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 참 보기 드문 학생인데 그런 마음을 오래 가지려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이 책의 일독을 권했다. 엉뚱한 목적으로 시위하며 큰소리를 내는 무슨 단체의 목소리가 아닌 진짜 환자를 잘 돌보고 싶은 보호자들이 의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록은 매우 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해외 학회에 오는 비행기에서 제목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 설익은 이 글을 서둘러 마치는 이유는 바로  저자의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내일이라는 것.

디멘시아 뉴스의 편집장으로 일하는 황교진 작가에게는 이런 블로그 글보다는 밀린 칼럼을 빨리 써서 주는게 더 좋아할 일이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기를 바라면서 서둘러 올려본다.

아, 우선은 제자의 집주소를 좀 물어봐야겠다.

소개만 할 것이 아니고 선물을 해주는 게 맞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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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맨 뒷장은 디멘시아문학상 수상 작품이 소개되어있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아픈 자식의 입장에서, 그것도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한 부모를 모셔야 하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이런 출판사가 특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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