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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로잉맘 Jul 06. 2021

진료실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with 세 살 아이

수호의 세 번째 초여름 어느 날.

아이는 비염 증상에서 시작해 고열이 잡히지 않고, 기침이 심했다.


동네 소아과에서 차도가 보이지 않자, 옆 동네 개원한 인기 많은 A 이비인후과에 가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남편이 병원 문이 열기 전에 이비인후과 줄을 서 접수를 했고, 나와 수호를 데리러 왔다. 시간 맞춰 간 병원은 새 병원답게 깔끔했고 의료진도 무척 친절했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울고 보챘지만, 친절하기로 소문난 의사 선생님답게 편안하게 진료를 봐주셨다. 동네 소아과에서 진료실에 앉기가 무섭게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조급함 없이 아이의 상태와 복용했던 약까지 편안히 설명할 수 있어 무척 마음이 놓였다. 의사 선생님은 검진 후 폐렴 초기라며, 아이의 귀지까지 빼주며 입원이 가능한 대학 병원의 입원을 소견서와 함께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긴장된 마음으로 대학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입원 수속을 밟았다. 간단히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보고, 병실로 올라가란 지시가 내려졌다. 병동 간호사는 검사를 위해 채혈을 해야 한다며 우리를 처치실로 불렀고, 부모는 밖에서 기다리라며 들어갔다. 엄마가 곁에서 잡아주고 싶다고 하니, 아이가 부모가 있으면 더 오래 걸리고 제대로 처치를 할 수 없다며 커튼을 닫아버렸다.     


“엄마~!!!”

“으앙~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악!!!!’


홀로 낯선 곳에서 아이는 간호 선생님들에게 강압적으로 눌려져 자신을 구해 달라고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커튼 한 장 뒤에서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져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참 뒤 아이는 채혈과 수액을 맞기 위해 큰 바늘을 손등에 꽂고 움직이지 못하게 보조대와 붕대로 칭칭 감고 나왔다.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에 퉁퉁 붓고 벌겋게 되어 기진맥진해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자석처럼 몸을 붙이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이번 울음소리는 좀 전과 다른 서러움과 원망, 그리고 안도가 더해져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들 괜찮아~"


아들을 온몸에 밀착시킨 채 꼬-옥 안아 어루만지며 안심시켰다. 놀란 아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독하다는 바이러스가 세 가지나 발견되었다. 그동안 쉽게 났지 않고 고열에 시달린 원인이었다. 이날 아침에 간 A 병원에서 이렇게 안내해 주지 않았다면 우리 아들은 더 고생했을 거라 생각하니,  A 병원 의사 선생님께 맹목적인 믿음까지 생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는 온전히 치료를 받지 못하고 두 밤을 잔 후 퇴원을 했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가 입원하며 채혈실에서 의료진의 강압적인 행동이 각인된 것이 문제였다. 아이는 해열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열을 내리고 쉬어야 하는데, 낮은 물론이고 잠을 자다가도 수시로 순회하는 의료진을 볼 때마다 깨서 미친 듯이 울어댔다. 링거 줄이 손에 달린 걸 생각할 리 없는 아이는 아무 때나 내게 달려와 안겨 위험했다. 엄마가 병실 안 화장실 가는 순간도 용납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가 편안한 것이 우선이란 판단에 아직 열이 다 내려가지 않은 아이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빠른 퇴원에도 호전을 보인 얼마 후, 신임 가득한 A 이비인후과를 다시 찾았다.      

접수 후 대기실에 잘 앉아있던 아이진료실의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내 품에서 바둥바둥 도망치려 용을 쓰며 울어댔다. 병원 입원하며 아이는 의료진에 대한 공포가 극히 심해진 것이다.

우린 겨우 진료 의자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이 입과 코와 귀를 볼 수 있도록, 간호사는 머리를, 나는 수호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아 눌렀다.      

소리조차 크게 지르지 못하며 울던 아이는 개원 한지 몇 달 되지 않은 A 병원, 새 진료 의자, 엄마 무릎에 앉아있었다. 그때, 내 허벅지에서부터 무언가 축축하게 흐르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내 축축한 기분은 진료 의자와 바닥까지 이어졌다.


‘아이가 오줌을 쌌다.’


 너무 당황하고 미안한 나머지 한 손으로는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진료 의자와 바닥의 오줌을 휴지로 닦고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내가 엄마이기에 내 아이의 실수를 직접 처리해야만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바닥에서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위를 올려보다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의 '굳은 표정'을 보았다.


"간호사에게 맡기고 나갔다 오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젖은 바지로 젖은 바지의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급히 달려 나갔다. 다행히 여벌 바지가 있던 아이는 옷을 갈아입혔다. 내 바지는 화장실 휴지로 대충 닦은 채, 울고 지친 아이를 안고 다시 진료를 받으려 대기했다.

 잊을 수 없는 진료실 장면: 드로잉맘

이어진 아이의 반복된 진료거부.


결국, 재진 없이 약 처방만 받고 약국으로 향했다. 아이는 병원 문을 나오니 이내 울음이 그쳤다. 아이 손을 잡고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와 약국으로 들어섰다. 약국은 병원과 달리 매우 한적했다. 여약사님은 친절한 미소로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이 데리고 다니기 힘드시죠?”

"네? 네! "

"흑. 흑. 흑~"

이번엔 엄마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마흔의 엄마는 아픈 아들과 몇 주를 잠 못 자며 간호하고, 마음 조리고, 체력이 바닥이 났어도 이렇게 서럽지는 않았다. 주책맞게 터진 엄마의 울음에 약사님은 아이에게 ‘비타민 사탕’을, 엄마에게는 ‘비타민 음료수’를 건네주셨다. 우린 각자의 비타민을 달게 먹었고, 젖은 바지를 입은 채 집으로 향했다.           


나는 산후 우울증도 겪지 않아 그간 엄마들의 우울증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은 정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휘몰려왔다.      


한참 동안이나 입고 있었던 오줌이 묻은 바지는 축축했다.

약국에서 해맑은 얼굴로 비타민을 찾는 아이가 미웠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의 굳은 표정은 잊히지가 않았다.   


세 살 수호랑 엄마는 그렇게 다시 못 올여름을 보냈었다.           

이 글은 3년 전의 일이다. 지금 돌아온다고 해도 여전히 끔찍한 순간인 듯하다. 그러나, 이젠 조금은 담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키우다 보면, 그런 일 저런 일 있는 법인데 남의 시선과 상황에 신경 쓰느라 내 마음과 내 아이 마음은 들여다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다 키운 부모들이 자주 하는 말을 지금 육아가 한 창인 당신과 나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럴 수 있어.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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